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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Aug 01. 2023

두려움 다루는 법

자폐와 ADHD를 가진 과학자의 인생 TIP (4)

CHAPTER4

두려움 다루는 법


빛, 굴절, 그리고 두려움



두려움을 우리를 압도하는 무언가에서 우리가 통제하고 온전히 수용할 힘으로 바꾸려면 프리즘의 분산 효과가 필요하다. (127쪽)



카밀라 팡은 자신을 덮쳐오는 두려움이 어떤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떤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 나누어 보는 일을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는 일로 비유합니다. 자폐와 ADHD로 인해 다양한 공포를 느끼는 저자는 각각의 두려움이 자폐로 인한 것인지, ADHD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고 그 성질도 분류하려 노력합니다.



'백색광 속의 다양한 색처럼, 공포와 불안 역시 각자 고유의 파장과 다양한 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짧은 순간 강렬하게 타오르는데, 이것은 저자에게 거리에서 큰 소음을 듣는 일과 비슷합니다. 다른 것들은 강도는 조금 낮을지라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더 길게 지속되는데, 이건 저자가 사람들의 눈을 마주봐야 할 때 느끼는 공포와 비슷합니다.


저 역시 청각과민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길에서 갑자기 큰 소음, 특히 오토바이 소음을 듣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의 물리적, 정신적으로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해 들어올 수 있다는 경계심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사회불안장애가 심했을 때는 2명 이상이 저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압도되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 제 옆에서 귓속말을 하며 웃으면 저를 비웃는다는 기분이 먼저 들고 제가 뭔가 잘못했을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뭉뚱그려서 보면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불쾌감, 불안, 트라우마의 플래시백, 분노 등 여러 감정이 뒤얽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쾌감과 분노는 비슷해 보이지만, 제 경우에 불쾌감은 내 영역과 안전이 침범된다는 무의식적 감각에서 나오고 분노는 이것이 인지된 뒤에 나타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지 과정에서 '내가 침범당했다'는 자동적 사고를 조절함으로써 분노는 조금 줄여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통을 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불안이 심해지는 것도 이렇게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예전에 집에서 싸우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갖게 된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이라는 것을 바로 자각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그 상황과 연결짓는 대신 개별적인 상황으로 인식하려 노력하고, 다른 상관물과 연결지어 새롭게 각인시키는 연습을 해나가면 불안의 크기도 조절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자신이 프리즘이 되어야 하고,  '불안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열어젖혀서 통과해 나간 불안을 각각의 구성 요소로 분해하고 상세하게 연구하여 불안의 본질을 이해해서 결국 불안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공포가 나를 덮쳐오는 것을 느낄 때, 상황을 파악하고 완전한 멜트다운을 피하려고 프리즘 효과를 이용했다. 누군가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거나, 큰 소리로 외치거나, 높은 톤으로 낄낄거리는 것처럼, 현재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촉발 요인, 즉 진동수가 높은 파동인가? 아니면 미래 혹은 질병에 대한 공포나 내게 건선을 가져다줄 가려운 점퍼처럼 나를 지배하는 낮은 진동수의 지속적인 생각인가? (118쪽)



저자는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하려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에 대해 투명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투명해진다는 표현은 다소 문학적이고 추상적인데, 저는 이 말을 어떤 것에 잠식되지 않고 비어있는 상태, 감정에 거리를 두고 두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렌즈를 통해 공포를 바라볼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안전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힘을 빼고 똑바로 바라봐도 내가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게 흔히 말하는 '용기'일 겁니다.


이 챕터에서 특히 좋았던 건, 두려움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외면하고 억누를수록 우리를 지배합니다. 저자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통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문단에서 '정신적인 변비'라는 표현이 참 공감됩니다.


부정은 공포보다 더 나쁘다. 그것은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종의 정신적인 변비와 같아서 결국에는 지나치게 안전하게 머무르는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불분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영원히 숨을 쉬지 않고 참는 것처럼 지속하기 어렵다. 결국 당신의 영혼은 질식할 것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바에는 두려움을 느끼는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119쪽)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통해 창의적으로 바뀌거나, 영감을 얻거나, 경이로움을 느낄 능력이 억눌리기도 한다. 당신은 한 개인으로서 배우고, 개선하고, 진화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 두려움은 우리의 일부이며 두려움을 차단하려 할수록 우리 자신의 일부 역시 차단하게 된다. 두려움에 더 잘 대응할수록 나는 두려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두려움이 없다면 얼마나 애석할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126쪽)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억지로 긍정적으로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두려움의 장점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읽은 뒤 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두려움은 막연한 장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벽을 올라 밟고 서서 점차 더 높은 장벽도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계단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삶을 좀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요.


저자의 표현대로, 두려움은 '빛을 비추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빛입니다. 그래서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듯, 두려움이 우리를 통과하도록 두어야 합니다. 힘을 빼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려움의 실체를 찬찬히, 면밀히 바라본다면, 곧 두려움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때란 내 생에서 절대 단 하루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 덕분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사실도 안다. 두려움은 '빛을 비추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 자체가 빛이며, 우리에게 함께 사는 더 나은 방법을 알려주고 심지어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심어준 공포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눈먼 특권으로 보는 이유다. (128쪽)






카밀라 팡의《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챕터별로 정리하며 후기를 적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1편을 봐 주세요.

https://brunch.co.kr/@harukauranusian/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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