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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가 하루켄 Aug 31. 2020

소설 필사가 주는 마음의 위안

어쩌다 심리


간단한 손 체조를 한 후 책상에 앉는다.  멜론 앱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미드 나이트인 파리의 테마음악 Si Tu Vois Ma Mere . 마음은 이미 12시간 비행을 시작한 듯 파리의 어느 작은 카페에 도착한다. 아이패드를 열고 애플의 워드 page를 열고 2018년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 일기로 기록을 남긴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쓰려고 하면 할수록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거 같은데 그걸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수도꼭지가 꽉 막혀 물이 나오지 못하고 압력만 높아지는 그런 답답한 느낌.팟캐스트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 방송에서 황 교수는 처음에 글 쓰기가 어려울 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라고 했다.올해 봄 3월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다이소에 가서 2천 원짜리 노트와 1000원에 2개 하는 젤 타입의 펜을 샀다. 파란색 잉크가 노트에 부드럽게 묻어난다. 첫 필사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쓰기 전에 소설을 읽어봤는데 70,80 년대 삼류영화 스토리 같은 20대 초반 젊은이의 방황기였다. 필사를 하려는데 귀찮은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시작했다. 노트에 매일 4페이지 정도  쓰기 시작했는데 며칠 지나자 쓰기 귀찮아지며 딴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 ‘뭔, 의미가 있기나 한 건가?’


3개월 ,  번째 필사를 끝마쳤다. 뿌듯함이 느껴진다.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닌데 회사 일보다도  뿌듯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이다. 필사를 하며 소설을 읽으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눈으로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충 스토리 정도 훑고 지나간 거였다.


필사를 하며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상상하며 소설에 쓰인 표현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 보는 연습을 했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맥주 대신 사케로 바꿔서 생각 해보고 남자가 여자와  방에 있는 문장을 읽을땐,   장면을 디테일하게 상상하며 방안의 인테리어를  나름대로 바꿔보는 상상도 했다. 글에는 표현  되어있는 상황을 상상하며  나름대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재미났다.


아이패드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붙여서 애플의 워드인 page에 타이핑했다. 놀라운 경험이 시작됐다. 처음 소설을 눈으로 읽은 것이 1번, 노트에 필사를 하면서 2번, 아이패드에 타이핑하면서 3번을 읽었다. 소설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필사한 책은 츠타야서점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이다. 필사를 하며 저자는 이이디얼 성향의 에이전트가 아닐까? 상상했다. 마스다 대표는 남들과 다른 차별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일을 참 잘해내는 사람이다. 나는 M자 아이디얼리스트이기에 로맨의 불안한 정서를 제외하면, 아이디얼리스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상황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변주하는  그의 남다른 모습이 좋았다. 찌질한 내 모습과 많이 대비된다.


5개월 동안 필사를 하며 글 쓰는 작업에 대한 거부감이 좀 줄었다. 8월부터 지난 과거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면 머릿속의 생각이 비비꼬이고, 꽉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맴 돌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그런 느낌. 풀어내고 싶었다. 멋지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글을 어렵고 난해하게 만들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작가처럼 폼 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멋지게 쓰지 않으면 차라리 안 쓰고 말지. 나중에 멋지게 쓸 수 있을 때 그때 쓰자. 뭐 이런 합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쓰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쓰자. 겨울 새벽 운동을 나갈 때,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 얼마나 싫은가? 딱 그런 마음이다. 글 한 줄 쓰는데도 핑계가 수천만 가지가 생각난다. 내가 뭘 안다고 글을 쓰냐? 좀 더 정리된 다음에 쓰자. 귀찮다. 로맨-매뉴얼이 작동한다는 것을 느낀다. 머리로 쓰지 말고 손으로 쓰도록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맨손체조하고, 양치질한 후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책상 앞에 앉는다.


멋진 글을 쓴다는 생각은 지웠다. 내 글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살아오며 느꼈던 이야기, 뭔가 한다고 나름 이것저것 찝적되며 살아온 내 청춘과 중년의 시간들. 그 무한 삽질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진다. 지나온 시간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의 연속선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나 같은 M자 아이디얼리스트들이 어떻게 삽질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 기록을 남기려 한다.


황심소 녹취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필사와 마찬가지로 녹취도 놀라운 경험을 제공해 준다. 심리 상담 수행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귀로 들을 때 못 느꼈던 디테일이 쿵 하며 다가온다. 녹취를 하려면 수없이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단어 하나, 토씨 하나도 대충 듣지 않게 된다. 내담자의 상황을 듣고 특정 단서를 근거로 wpi 와 연결해서 문제를 찾아내는 과정은 셜록 홈스를 연상하게 한다. 셜록 황이라는 닉네임은 황 교수와 참 잘 어울린다.


최소한 매주 팟캐스트 1개를 녹취를 하게 되면 한 달이면 4개, 1년이면 48개를 녹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욕심을 내자면 1년에 100개를 녹취할 수 있다. 100개의 팟캐스트를 녹취하게 되면 M자 아이디얼, 아이디얼리스트에 대해서는 그 패턴을 분석할 수 있을 거 같다. 로맨-매뉴얼도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황 교수는 전체 5개 타입을 모두 연구하지만, 난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는 부류, 즉 M자 아이디얼리스트만 파고 들어가 볼 생각이다.


나의 기록, 황심소 녹취라는 2가지의 과정을 꾸준히 수련하는 1년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현재 내가 생각하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8.10.10


https://youtu.be/FCS4WWCElUQ


독립서적 <어쩌다 심리> 구입처

도쿄뷰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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