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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Feb 09. 2024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가장 위대한 작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 그 점을 바로 알 수 있다. _토마스 만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비하면 지금껏 내가 써 온 작품은 전부 헛된 일이었다. _기 드 모파상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근 병행 독서로 읽은 책에서 두 번 정도?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언급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읽어보지 못한 작품으로 내용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TV나 영화, 매스컴 등에서 다양하게 접한 작품.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는 삶이 멀어져 갔던 거야 (중략) 죽음만 남아 있어!(92p)  

  

이외, 『악마』 『신부 세르게이』도 함께 수록된 문예출판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읽기 시작하겠습니다.





레프 톨스토이(1828 ~ 1910)는 1886년(58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발표합니다. 그가 툴라 지방 재판소의 배심원을 맡고 있었던 당시 어느 검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게 되고, 이 사건에 착안해 쓴, ‘죽음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궁구(속속들이 깊게 연구)한 소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악마』 『신부 세르게이』 3 편의 선집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의 지방 판사였습니다. 가족에게는 능력 있는 가장으로 보이고 싶었고, 일에 있어서는 명예욕도 강했습니다. 세속적이었지만, 성실히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던 어느 날 새집을 꾸미다 옆구리를 다칩니다. 원인 모를 병에 점차, 서서히 그는 죽어갑니다.  

  

이반 일리치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가족, 일 등에서 이룬 성공이 거짓과 위선이라는 생각.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라는 인물을 통해 죽어 가는 과정, 허무, 어둠, 무관심, 때때로의 평온, 단말마까지.  

  

『악마』

톨스토이의 자전적 단편 소설로 그가 결혼 전 농부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소설입니다. 소피아를 아내로 맞이하고 속죄의 의미로 아내에게 이 소설을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질투를 하며 몹시 괴로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기의 욕망(농부의 아낙 스테파니다)과 절제된 삶(정숙한 아내 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보성향의 젊은 청년 지주 예브게니의 이야기입니다. 예브게니는 어떻게든 스테파니다를 거부하려 하지만,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의 심연 어딘가에서 욕망의 불꽃이 일어나고 점차 커집니다. 자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증유의 불가항력적 힘, 악마 같습니다. 결론은 미완성으로 두 가지의 가능성을 남기고 끝을 맺습니다. 악마는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신부 세르게이』*

총명하고 능력 있는 장교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카사츠키는 약혼녀의 불륜 사실로 파혼을 한 뒤 모든 세속적 욕망을 뒤로한 채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 세르게이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속적 욕망에 시달리자, 어렸을 적 친구인 파셴카를 만납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세속적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신부가 된 것이 아닌 또 다른 세속적 욕망이었음을,  

  

* 톨스토이의 후기작인 『신부 세르게이』는 '톨스토이주의'가 잘 나타난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 도중 3편의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 이반 일리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유를 알 수 없는 선고)에 그저 무력하게 죽어갑니다. 그렇게 그려지는 풍경이 카프카의 『소송』을 연상케 했습니다.  

▶ 이반 일리치의 창백한 모습(인간이 아닌 듯한)과 주변(가족과 직장 동료, 친구)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묘사에서는 카프카의 『변신』이 연상되었습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이르는 여정에서는 존 윌리엄스 『스토너』 같았던,  

  

톨스토이는 위대합니다. :)  


#한줄감상 - "고전이 있다는 것,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사유할 수 있다는 것, 즐거운 일이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_105p  

  

이반 일리치는 청년 게라심의 한결같은 친절함에 감동받고, 아들이 자신에게 보인 진정한 사랑에 어둠의 구멍 속에서 빛을 봅니다. 소설의 끝에 나오는 (위의) 문장, 공허함 보다는 (희망이 느껴지는) 철학적 허무가 느껴졌습니다 ...


20000 총.총.총.



§.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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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생각한 것은 그로 인해 생길 자리 이동과 승진이 전부는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 그들 역시 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죽은 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야.’  

그들 모두 생각하거나 느낀 건 이런 거였다. ‘아,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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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키제베터 〔요한 고트프리트 키제베터(1766~1819) 독일의 철학자〕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   그러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라는 논법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되며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이제껏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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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전체가 정말로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이제껏 잘못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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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가 다 거짓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었다.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어쩌면 위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었다.



#이반일리치의죽음 #레프톨스토이스토예프스키






책과 함께한 음악 디깅


▶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제4번 F단조


별거 후 이탈리아로 요양을 가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안토니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제를 시작한 부유한 미망인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에게 거액의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재정 부담도 한층 가벼워진 것이 작곡 진척에 큰 역할을 했다. 차이콥스키는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뒤 1878년 1월에 곡을 완성했다. 자필보에 프랑스어로 '나의 가장 친애하는 친구에게'라는 헌사를 담아 메크 부인에게 헌정했다. _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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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는 한쌍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에 대한 감상 중에 이런 글이 있어요. "전작들과 달리 굉장히 감정 기복이 심하고 격렬함과 우울함이 혼재되어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어울리는 클래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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