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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Feb 22. 2024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리스본은 대양에 접한, 꿈과 그리움이 조우하는 흰빛의 도시다. 페르난두 페소아보다 더욱 뛰어나게 리스본의 멜랑꼴리와 고독을 감지한 작가는 없었다. (중략) 《불안의 서》는 요약되거나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_출판사 서평


작년 여름부터 신경 쓰였던 《불안의 서》. 이유는 제목에서 느껴진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입니다. 책이든 TV든 인터넷이든 ‘불안’이라는 소리 혹은 글자를 접하면, 유령처럼 머릿속을 부유합니다. 오늘이야말로 살풀이합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열일곱 살, 리스본으로 이사와 1935년(47세) 리스본에서 일생을 마칩니다. 생전 무역통신문 번역가로 일하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1982년 출간된 유작산문집 《불안의 서》는 문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오늘날 그는 포르투갈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힙니다.


&


내용은 일기 형식으로 각각 독립된 481편의 시 같은, 에세이 같은, 환상 문학 같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크게 3개의 축으로 읽었습니다.



주인공 소아레스는 ‘꿈夢’은 궁극의 초월이며, 우주의 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삶과 죽음이기도 합니다. 둘의 차이는 꿈은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고 죽음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합니다. 모호한 세상과 나, 타인과 나를 분리해 관조와 관찰이 가능케 하는 꿈의 상태. 행복이라 말합니다.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나

끊임없이 주인공 소아레스는 스스로를 특별하지도, 유능하지도, 천부적이지도 않은, 그저 공기 같은, 먼지 같은, 모래 같은 으로 비유해 말합니다. 그렇기에 고독해질 수 있고,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으며,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글쓰기에 있어 최고의 조건이라 말합니다.


보조 회계원 소아레스

저자 페르난도 페소아는 소아레스 ㅡ 헤테로님(Heteronym, 異名)* ㅡ 를 창조합니다. 제국의 황제도 아닌, 대문호도 아닌, 대부호도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 도라도레스 거리 아파트 5층에 사는, 평범한 보조 회계원. 정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쳇바퀴 도는 삶. 혹여 외근으로 일찍 끝나도 회사로 돌아가 퇴근 시간을 채우는 그러한 소박한 인물. 그런 소아레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아의 비밀에 대한 탐구’ 등 끊임없이 사유합니다.


* 헤테로님(Heteronym, 異名) - 작가가 제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예는 흔히 있으나, 페소아의 예는 이런 일반적 경우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름들 각각에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전기와 인격과 문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저 자신을 여러 개의 인격으로 분화시킴



정확히 중간까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 고백하면 … 중간을 지나면서 고통? 스러웠습니다. 이유는 … 음악으로 비유하면 반복되는 도미솔, 도미솔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번역하신 배수아 작가님의 말에 새삼 공감했습니다.


"세상의 독자는 《불안의 서》를 읽은 독자와 읽지 않은 독자로 구분된다.”


#한줄감상 - "소아레스는 늘 꿈夢을 꾸고 싶어 한다. 미세한 숨, 찰나의 빛, 먼지 한 톨까지 관찰해 사유해 글로 쓰려 한다. 481편의 글 모음. 나의 일기이고 싶다."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로 자서전 쓰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의 서》 시작과 함께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상호 어떤 연관성도 없고 연관성을 구축하고 싶다는 소망조차 배제된 인상만을 이용하여, 나는 사실 없는 내 자서전,”


_사실 없는 자서전 中


2가지 형식으로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나와 세상, 세상과 나의 인상만을 그린 자서전입니다. 그렇기에 진짜 나일 수도, 혹은 진짜가 아닌 나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헤테로님의 나我. 페르난도 페소아에게 의문의 1패를 하였습니다 ... ㅡ 나도 생각했는데 … ㅡ


20000 총.총.총.



§.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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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영혼과 신 사이의 간극이다.


인간이 표현하고 묘사하는 모든 것은 완전히 지워진 텍스트에 딸린 주석이다. (중략) 가능한 해석은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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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안에서 여러 개성을 창조해 냈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개성들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모든 꿈이 하나하나 육신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꿈들은 나를 대신하여 계속해서 꿈을 꾼다.


창조할 수 있기 위하여 나는 나를 파괴했다. 나는 내 안에서 스스로를 지극히 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그리하여 내 안에서 오직 피상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여러 명의 배우들이 여러 편의 연극을 동시에 공연하고 있는, 텅 빈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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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갯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인간의 섬이 되어 바다의 꿈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존재의 과잉을 실은 한 척의 배가 되어, 모든 사물의 표면을 항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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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산문과 시는 낯선 이의 이해를 구하거나 그들의 의지를 설득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오직 순수하게 한 명의 독서가에 의해 소리 내어 말해지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조의 미학뿐 아니라 관조의 방법과 결과의 표현에도 마찬가지로 미학적인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이미 주관적 책 읽기를 즐기기 위한 객관적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불안의서 #페르난두페소아






책과 함께한 음악 디깅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 - Two Bones(앨범) (1958 / 비밥)


늘 전체 밴드를 조망하고자 했던 햄프턴의 시각은 지극히 트롬본 주자다운 것이었다. 현악 앙상블의 첼로와 유사한 역할을 브라스 앙상블에서 맡고 있는 트롬본은 늘 고음역의 트럼펫 선율을 주시하면서(첼로가 바이올린을 보좌하듯이) 전체 사운드를 완성하는데, _재즈 잡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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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풀러와 슬라이드 햄프턴 2명의 트롬본 연주자가 연주하는 앨범으로 트롬본 2대가 메인으로 연주되는 보기 드문 앨범입니다. 군악대 같은 느낌도 들고, 초기 재즈 느낌도 들고, 색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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