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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Mar 03. 2024

네 명의 소녀

아우구스트 마케

파랑과 하양, 그리고 빨강과 노랑, 초록의 알록달록한 색과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4명의 소녀들. 아마도 학교를 마친 뒤 나무 그늘에 모여 느긋하게 휴식 같은 수다를 떠는 모양이다. 때로는 길을 걷다, 문득 목격하게 되는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액자 속 그림이 되어 위안을 주는 풍경이 되기도 한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August Macke <Four Girls>, (1912 - 14)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아우구스트 마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보병에 지원해 참전합니다. (독일 - 프랑스) 서부 전선에서 저격수의 총에 맞아 27세에 죽습니다. ㅡ 예술가로서 짧은 생애였지만, 500여 점의 회화와 3000여 점의 드로잉을 제작했고, 유화, 수채화, 파스텔, 목탄, 잉크, 콜라주, 판화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실험했습니다. ㅡ 마치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예술에 전력을 다했던 그.


그의 대표작 <네 명의 소녀> 군대에 지원하기 직전에 완성한 것으로 ㅡ 완성 시기 1912 ~ 1914 ㅡ 그림에서 뿜어져 나온 아우라와 신비함에 (독일 작가) 토마스 만(노벨문학상 수상자)은 매료됩니다. ㅡ 그의 소설 『마의 산』(1924)에서 "정원에 있는 네 명의 젊은 여성"의 "화려한 그림"이라는 문장으로 등장합니다. ㅡ 문학(문학)과 예술(아우구스트 마케)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명을 합니다.


한편, <네 명의 소녀>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비판을 합니다.


마케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변화로 점철된 시기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했고 여성 운동은 여성에게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작품 안에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목가적이고 조화로운 것만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예술은 ... ... 예술을 위한 예술인 것일까? 역사와 사회를 반영,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



1. 자매로 보이는 네 명의 소녀들. 그녀들이 있는 장소는 아마도 동베를린에 가까운 곳 같습니다. 인적이 드문 이곳, 그녀들만의 비밀 장소. 자세히 보니 이상했습니다. 소녀들의 표정. 세 명은 눈을 감고, 한 명은 뒷모습만 보입니다. 입술과 입꼬리에서 활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입을 앙물고 있는 모양, 우울빛,


2. 금발 소녀 세 명과 다크 블루 머리 색을 한 소녀. 파란, 흰, 빨간색 옷을 입은 소녀들. 마치 프랑스 국기(파랑, 하양, 빨강)* 같습니다. 소녀들은 침묵한 채. 눈을 감고. 비밀의 숲에서 베를린에 감도는 무겁고, 음침한 기운을 피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은 독프전쟁이라 할 만큼 독일과 프랑스가 치열하게 싸웠고, 이러한 전쟁의 실상을 소설로 만든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유명합니다.


3. 소녀들에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의 파동이 느껴집니다.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전염성 강한 에너지.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전염되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여성만이(어머니만이)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인류애, 자애慈愛 같습니다. 유럽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


(침묵) ... 이상합니다 ... 감은 눈 밑 그림자가 자꾸만 신경 쓰입니다 ... 불안합니다.

* 화가 - 아우구스트 로베르트 루드비히 마케August Robert Ludwig Macke (1887 – 1914, 독일)

+ 전기(1887~1909)


아우구스트 마케는 1887년 건축업자와 아마추어 예술가, 농부의 딸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납니다. 1904년부터 1906년까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회화와 드로잉의 기초를 배웁니다. 또한 프리츠 헬무트 에름케 밑에서 수업을 들었고 뒤셀도르프 뒤스필하우스에서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로도 일합니다.


1905년부터 1906년까지 이탈리아 북부,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예술적 스타일과 문화를 접합니다. 1907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독일의 저명한 인상파 화가 로비스 코린트 밑에서 수학합니다. 또한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여 인상파 화가들, 특히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1909년 친구 발터 게르하르트의 누이인 엘리자베스 게르하르트와 결혼합니다. 두 사람은 본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마케는 평생을 삽니다.  


+ 중기(1910~1913)


1909년 마케는 두 번째 파리 여행에서 발견한 앙리 마티스와 포브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발전시킵니다. 그는 밝고 선명한 색채를 넓은 붓터치로 사용하여 도시 풍경을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합니다.


1910년 뮌헨에서 프란츠 마크를 만나 친한 친구이자 예술적 파트너가 됩니다. 두 사람은 동물 모티브와 예술의 정신적 차원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공유합니다. 또한 바실리 칸딘스키로부터 영감을 받아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를 실험하기도 합니다.


1911년 마르크와 칸딘스키가 설립한 표현주의 예술가 그룹인 청기사파에 합류합니다. 마케는 이 단체의 전시회와 출판물에 참여하여 파울 클레,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가브리엘 뮨터 등 다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함께 자신의 그림을 선보입니다.


+ 후기(1914)


1914년 4월 독일로 돌아온 마케는 본에서 작업을 재개합니다. 그는 원형의 형태와 대비되는 색상을 사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내는 입체파 스타일인 들로네의 오르피즘의 일부 요소를 채택하였고, 현대 생활의 역동성과 속도를 찬양하는 미래파의 일부 측면을 통합한 작업을 합니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 복무에 자원. 보병으로 프랑스 서부 전선에 파견됩니다. 1914년 9월 26일 페르테 레스 헐루스 근처에서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는 겨우 27세.


+ 비평적 관점

마케의 작품은 표현력과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독창성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마케가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로버트 들로네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 *


+ 주요 특징


1.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마케는 1907년 처음으로 파리를 여행하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으로 가서 로비스 코린스의 스튜디오에서 몇 달을 보냅니다. 그는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생생한 색채와 빛의 유희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는 빠른 붓질과 밝은 색채로 자연과 도시 생활의 찰나적인 인상을 포착하려고 노력합니다.


2. 포비즘(야수파)

포비즘은 1905년경에 등장한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거칠고 자유분방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케는 야생 동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색채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1910년에 만난 친구 프란츠 마크를 통해 야수파를 알게 됩니다. 마르크는 영적이고 감성적인 예술을 주창한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파'의 멤버였습니다.


3. 큐비즘(입체파)

입체파는 1907년경에 등장한 프랑스의 또 다른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사물을 기하학적 형태로 분해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입체파는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묘사하고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합니다. 마케는 1912년에 만난 친구 파울 클레를 통해 입체파를 알게 됩니다. 클레는 '청기사파'의 멤버이자 다양한 예술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실험적 예술가였습니다. 클레는 마케에게 입체파의 선구자였던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다양한 화풍이 느껴집니다. 후기 인상주의, 포비즘(야수파), 큐비즘(입체파), 상징과 표현주의까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출처: Wiki





"비제가 <카르멘>을 실패작이라고 여기며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이 오페라는 1875년 오늘 초연되었고,

하층민의 삶에 관심이 없었던 평론가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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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비제가 죽은 후에야 인정받은 클래식 오페라 <카르멘> 오~ 예술가의 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_하루키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August Macke

[2] artchive: August Macke

[3] britannica: August Ma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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