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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by 하루키

《메두사 호의 뗏목》(프랑스어: Le Radeau de la Méduse)은 테오도르 제리코가 1819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루브르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당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구도는 당시 평면적 전개를 피하고 피라미드형 구조인데, 희망과 감동의 초점을 멋지고 힘차게 그렸다. _Wikipedia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1582px-JEAN_LOUIS_THÉODORE_GÉRICAULT_-_La_Balsa_de_la_Medusa_(Museo_del_Louv.jpg Théodore Géricault <Le Radeau de la Méduse>, (1819)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납니다. 1791년 파리에서 떨어진 도시 루앙에서 테오도르 제리코가 태어납니다. 제리코 가족은 1797년 파리로 이사했고, 1808년(17세)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1799년 ~ 1804년) 프랑스 통령정부 제1통령 나폴레옹의 집권에서 프랑스 제1공화국(1804년 ~ 1814년까지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해 통치한 시기)으로 이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제리코는 혼돈에 빠진 프랑스를 구한 영웅 나폴레옹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고, 20대 청년기에는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독재자 나폴레옹의 몰락을 목도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반신반인 나폴레옹의 변절과 몰락은 제리코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리코는 권력과 야망은 실체 없는 신기루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인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1815년 나폴레옹의 복귀로 잠시 권력을 회복했지만 워털루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합니다. 프랑스 전체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갑니다. 1816년, 제리코는 후배 외젠 들라크루아와 함께 몽마르트 거리를 걷다 가판대에 놓인 신문의 1면을 보게 됩니다. 가판대의 모든 신문이 같은 제목,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대형 범선 메두사 호가 식민지로 향해 가는 관원(官員) 약 4백 명을 태우고 출발했으나 암초에 걸려 메두사 호는 침몰했다. 살아있던 149명의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승무원들은 거대한 뗏목을 만들어 함께 탈출했다. 대양을 항해하던 도중 밧줄이 끊어져 뗏목 위 물과 음식들이 대부분 바다에 빠졌고, 뗏목에 탄 사람들은 물과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참사가 벌어졌다. 구조선이 나타났을 당시 생존자는 15명이었고, 모두 빈사 상태였다. _라 가제트 1816년 xx 월 xx 일 "


제리코는 답답했습니다. 이미지 없이 빼곡히 글자만 적힌 신문이. 제리코는 신문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기자를 만나 생존자들의 연락처를 알아냅니다. 제리코는 한 생존자와 어렵게 만났고 충격을 받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머리카락은 반쯤 빠져 있었고, 손가락엔 손톱이 없습니다. 생존자는 인터뷰를 할 때 말을 심하게 더듬었고, 이빨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진 곳은 눈이었습니다. 어둠 속 기이한 안광이 뿜어져 나온. 살아있는 송장 같습니다.


제리코: 살아서 귀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뗏목에서의 생존기를 솔직히 이야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야만적인지 교양, 교육, 도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도 괜찮겠습니까?

생존자: (침묵)

제리코: ... (기다림)

생존자: 살려주세요~



&



1. 제리코는 생존자 15명 전원의 연락처를 확보해 연락을 합니다. 구조된 후 얼마 안돼 죽은 5명의 생존자들의 시체를 스케치하였고, 정신 이상자가 된 5명은 얼굴을 최대한 집중해 기억했습니다. 대화가 가능한 정상인 5명과의 인터뷰에서 그림보다는 당시 이야기에 집중해 메모를 했습니다.


이상한 건, 5명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


2. 약 2년에 걸쳐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제리코의 목표는 파리 살롱전 출품.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 가장 밑바닥. 생존의 기로에 선 날것의 인간


3. 바다, 뗏목과 돛, 인간 군상을 그립니다.


▶ 바다 - 마치 현재의 프랑스 같다. 어쩌면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 유럽은 거대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것일지 모른다. 망망대해 위의 뗏목. 프랑스인이다.


▶ 뗏목과 돛 - 뗏목은 마치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 같다. 작게는 가족, 크게는 친구, 사회, 더 크게는 국가다. 유럽 속 프랑스, 프랑스인. 이 뗏목(운명 공동체)에는 돛이 달려 있다. 돛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뗏목을 이동시킨다. 인간의 신념, 목적, 의도와는 상관없는 곳으로도 이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


▶ 인간 군상 - 15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죽은 자와 산자. 희망을 보는 자와 절망하는 자. 수평선에 빛이 보인다. 높은 파도도 보인다. 한 명의 남자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 천을 쥔 손을 높이 흔든다.


4. 그림을 완성합니다. 《메두사 호의 뗏목》. 희망이란 불꽃을 향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희망은 보고 싶은 자의 환상.

생존은 살아 있음의 설명.

시체는 유한. 지금, 바로 여기의 무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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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 ~ 1824, 프랑스)

+ 전기(1791-1811)


테오도르 제리코는 1791년 9월 26일 프랑스 루앙에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보였던 제리코는 파리로 이주한 후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1808년, 17세의 나이로 카를 베르네의 화실에서 수학합니다. 베르네는 당시 유명한 말 그림 화가였으며, 제리코는 그의 지도 아래 말 해부학과 동작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기릅니다. 이는 후에 제리코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역동적인 말 그림의 기초가 됩니다.


1810년에는 피에르-나르시스 게랭의 화실로 옮겨 신고전주의 양식을 배웁니다. 게랭의 엄격한 드로잉 훈련은 제리코의 기술적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제리코는 곧 신고전주의의 엄격함에 답답함을 느꼈고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제리코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 루벤스,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을 열심히 모사하며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킵니다. 특히 루벤스의 대담하고 역동적인 구도와 색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 중기(1812-1820)


1814년 제리코는 나폴레옹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근위기병대에서 복무합니다. 이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특히 군인과 말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영웅성을 동시에 표현하게 됩니다. 1816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 로마, 피렌체, 나폴리 등지를 돌아다니며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접하고 연구합니다. 이 여행은 제리코의 예술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1819년 '메두사 호의 뗏목'을 살롱전에 출품해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습니다. 혁신적인 주제 선택과 표현 방식으로 인해 보수적인 미술계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큰 영감을 줍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됩니다.


+ 후기(1821-1824)


1821년, 제리코는 승마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오랜 시간 병상에서 보냅니다. 이 사고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그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병상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이 탐구하였고, 인간의 고통과 불완전함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이 시기 제리코는 정신병원 환자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에 선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광인의 초상' 시리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심리학적 초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제리코는 사회의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 작품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노예 시장'(1823)에서는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예술가의 책임을 보여줍니다. 1824년, 안타깝게도 제리코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제리코가 루벤스나 미켈란젤로 등 이전 대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독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평가도 있습니다. 특히 초기 작품에서 이러한 모방의 흔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제리코는 많은 작품들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그의 조급한 성격과 짧은 생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예술가로서의 집중력과 끈기 부족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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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특징


1. 극적인 구도와 역동성


제리코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극적인 구도와 역동성입니다. 그는 대각선 구도나 나선형 구조를 자주 사용하여 화면에 긴장감과 운동감을 부여합니다. 특히 말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잘 드러납니다.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하여 강렬한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2. 강렬한 명암대비와 색채


제리코는 강렬한 명암대비(키아로스쿠로)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어두운 배경과 밝게 조명된 인물 또는 사물의 대비는 그의 작품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더합니다. 색채 사용에 있어서 대담함을 보이는데, 특히 붉은색과 갈색 계열의 풍부한 색조를 활용해 열정과 생동감을 넣습니다.


3. 심리적 깊이와 사회적 메시지


제리코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깊은 심리적 통찰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초상화 작품들, 특히 정신병원 환자들을 그린 '광인의 초상' 시리즈에서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또한 '메두사 호의 뗏목'이나 '아프리카 노예 시장' 같은 작품들에서는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다루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고, 개인의 구체적인 표정과 자세를 통해 각 인물의 개별성을 살려냅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제리코는 정신과 의학의 선구자인 친구인 에티엔-장 조르제 박사의 환자들을 그린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에 선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광인의 초상' 시리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심리학적 초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_Wikipedia


하기 초상들을 얼핏 보면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카라바조나 램브란트가 생각나는)

키아로스쿠로(강렬한 명암대비)기법이 능숙하게 사용된

제리코의 '광인의 초상' 시리즈입니다.


한참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불편합니다.

심리적 공감이나 감정의 이입이 되는 순간

불편함이 부풀어 오르다 터질 것 같습니다.


기이한 안광 때문일까요?

의도적 시선의 회피 때문일까요?

긴장감이 느껴지는 입모양 때문일까요?


무언갈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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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친 여자] 1820~24년경, 캔버스에 유채, 리용 미술관 우) [도박에 중독된 여인] 1820~24년, 캔버스에 유채, 77 x 65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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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어느 절도광의 초상] 1821~24년, 캔버스에 유채, 61,2 x 50,2 cm, 켄트 미술관 우) [광인] 1822~24년, 캔버스에 유채, 81 x 65 cm, 오스카 라인하르트 재단, 뷘터후어





"오늘, 근사한 프랑스 칵테일을 마시면서

이 곡을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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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제리코. 그의 격렬함, 광기에 도취되었을 즈음. (프랑스) 보르도 와인 같은, 에릭 사티 멜랑꼴리로 광기를 재운다. _하루키


* 엘레나 카츠-체르닌(Elena Kats-Chernin)의 *보내지 못한 사랑의 편지들: 에릭 사티에 대한 명상(Unsent Love Letters: Meditations on Erik Satie)*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삶, 성격, 그리고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26개의 피아노 미니어처 모음집입니다. 이 작품은 2017년에 발표되었으며, 사티에 대한 헌사이자 그의 유산에 대한 카츠-체르닌의 깊은 성찰을 담은 개인적인 탐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_wikipedia

Kats-Chernin: Unsent Love Letters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Théodore_Géricault

[2] NGA: Théodore_Géricault

[3] Artble: Théodore_Géri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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