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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by 하루키

프리드리히는 말합니다. “예술의 유일한 근원은 바깥 세계가 아니라 예술가 마음속 깊은 곳의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입니다.” 그러니 답은 감상하는 사람들이 각자 깊이 생각하고 느껴서 나름대로 찾는 수밖에 없겠지요. (중략)


프리드리히는 평생 자신을 덮치는 여러 불행과 싸웠습니다. 거듭되는 불운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꺾여버렸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프리드리히가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은 그가 이렇게 세상과 싸우며 몸부림쳤던 흔적입니다.


(중략) 죽음이 패배라면 우리는 모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 먼지만 한 별에서 찰나를 살다 가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한 걸음씩 발자국을 남기며 나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너무나도 무심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잔인하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그림 속에서 안개 바다를 바라보는 남자처럼요. _한국경제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일부 발췌 23.04.15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1687px-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g Caspar David Friedrich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818년 1월, 프리드리히(44세)는 드레스덴의 염색공 딸 캐롤라인 봄머Caroline Bommer(25세)와 결혼을 합니다. 봄에는 작센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안정적인 수입이 생깁니다. 1818년은 프리드리히에 있어 인생 최고의 해가 됩니다.


프리드리히는 작센 아카데미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봄머와 여행을 계획합니다. 독일 작센주와 보헤미안 지역 사이에 있는 카이저크론Kaiserkrone*. 현재 구상하고 있는 그림의 장소이자, 봄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카이저크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 안개가 끼었을 때 카이저크론Kaiserkrone 정상에서 감각할 수 있는 신성성.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 카이저크론Kaiserkrone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배경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심하게 깎이고 들쭉날쭉한 평야의 잔해로, 치르켈슈타인과 함께 독일 작센주 엘베 사암 산맥에 있는 마을 바로 외곽의 쇼나 평야 위로 솟아 있습니다. _Wiki

Kaiserkrone004.jpg?type=w966 Kaiserkrone의 전망 출처: Wiki


마차로 꼬박 하루 걸려 도착합니다. 목가적 풍경에 작은 집과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인구가 300명도 안 되는, 이곳을 제외한 근방은 사람도, 건물도, 길도 없습니다. 새소리와 벌레소리, 바람 소리, 평야, 산들이 보이고 나무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습니다.


봄머: 프리드리히 왜 이곳에 오자고 한 거야?

프리드리히: 평야 한가운데 볼록 솟은 언덕 카이저크론Kaiserkrone("황제의 왕관"을 의미)이 있어서. 안개 낀 날, 여명, 황혼에 카이저크론Kaiserkrone 정상에 서는 거야. 그리고 사방을 둘러봐. 이곳 안개는 마치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짙은 운무를 만들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지. 이세계(현실세계와 다른 세계, 평행우주) 같아. 궁금하지 봄머?

봄머: (끄떡끄떡) 보고 싶어. 오늘 볼 수 있어?

프리드리히: 볼 수 있을 거야. 여름에는 매일 볼 수 있어. 해 질 무렵 가보자. ... 정상에서 스케치 작업해도 괜찮지?



&



1. 뤼켄피거Rückenfigur(뒷모습). 프리드리히는 어렸을 적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도우려다 (물에 빠져) 죽은 동생 크리스토퍼를 매일 떠올립니다. 크리스토퍼의 눈, 목소리, 머리카락, 입고 있던 옷, 발버둥 치던 몸짓 등.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크리스토퍼에 대한 기억은 변형됩니다.


(주관적) 기억은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크리스토퍼에 대한 기억을 뒷모습만 남깁니다. 그리움, 죄책감, (삶의) 부채의식, 속죄, 미안함. 프리드리히는 결코 크리스토퍼를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2. 매일 원죄와 속죄 사이를 오가는 프리드리히. 그는 무의식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하늘에 닿고 싶습니다. 태양도 달도 별도 없는 하늘에 닿고 싶습니다.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크리스토퍼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3.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정상에서 서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소리로 말합니다.


"사방이 안개로 자욱해 형.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하늘 위에 있는지, 땅 위에 있는지 모르겠어."


크리스토퍼 어깨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운무는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르는 강처럼 보였습니다.


"형! 우리의 발아래 흐르는 안개구름은 레테(망각의 강)야 되돌이킬 수 없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크리스토퍼 나는 결코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죽어야만 풀릴 수 있는 족쇄일 거야. 미안해. 고맙고, 부디 날 용서해 줘."


프리드리히는 크리스토퍼의 얼굴을 보려고 계속 시도합니다. 크리스토퍼는 뒤돌아 보지 않습니다.


4.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는 관람객. 우리는 그림 속 방랑자의 뒷모습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관람객은 방랑자의 뒷모습을 통해 각자의 누군가를, 기억을, 솟아오르는 감정을 느낍니다. 혹은 구석에 혼자 웅크려 있는 내면아이를 발견할지도. 어쩌면 인간은 방랑자(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입니다. 내가 찾는 전부는 머리 위 하늘, 발아래 길일뿐.


방랑자The vagabond

_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중략)


조만간 바람이 불어와

나를 스쳐 가도록.

내 앞에 대지와 길이 펼쳐지기를.

부유함도, 희망도, 사랑도, 내가 찾는 건 아니지.

나를 아는 친구를 찾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찾는 전부는 머리 위 하늘, 발아래 길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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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 독일)

+ 전기(1774-1805)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1774년 (현재) 독일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납니다. (당시에는 스웨덴 령) 그의 어린 시절은 여러 비극으로 얼룩집니다.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13살 때는 동생 요한 크리스토퍼가 프리드리히 자신을 구하려다 얼음 속에 빠져 죽는 사건을 겪습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후에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1790년, 프리드리히는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의 요한 고트프리트 퀴스토르프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퀴스토르프는 학생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 스케치를 가르치는데, 이는 프리드리히가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는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신학자 루드비히 고트하르트 코제가르텐을 만나 "자연은 신의 계시"라는 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이는 프리드리히 작품 세계에 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프리드리히는 석고상 모사와 인체 드로잉을 배웠고,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 중기(1806-1820)


1805년, 프리드리히는 드레스덴 아카데미에서 열린 공모전에 출품한 '십자가의 풍경'으로 큰 주목을 받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적인 화풍인 '풍경을 통한 종교적 상징'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으로, 프리드리히의 예술 세계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1808년에 완성된 '십자가가 있는 산 위의 십자가'는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연과 종교, 인간의 관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낭만주의 화풍을 확립합니다. 181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리드리히의 명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바닷가의 수도사'(1808-10),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 등의 작품들을 통해 그는 자연의 숭고함과 인간을 대비시키는 독특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이 시기 프리드리히의 작품들은 당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독일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합니다.


1818년, 프리드리히는 캐롤라인 봄머Caroline Bommer와 결혼해 안정을 갖습니다. 이는 프리드리히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이전보다 따뜻하고 밝은 색조의 작품들을 보여줍니다.


+ 후기(1821-1840)


1820년대 들어 프리드리히의 화풍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달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1824), '해변의 달 뜨는 풍경'(1822) 등의 작품에서 그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더욱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183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리드리히의 인기는 서서히 시들어 갑니다. 새로운 미술 사조인 사실주의의 등장으로 낭만주의 화풍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의 건강도 악화돼 작품 활동이 줄어듭니다.


1835년, 프리드리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손이 마비되어 주로 수채화와 세피아 드로잉에 집중하며, 과거의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 시기 작품들은 더욱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형태를 보입니다. 1840년 5월(65세), 프리드리히는 드레스덴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지나치게 우울하며 비관적이라고 평가합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어두운 색조와 고독한 인물들, 황량한 풍경들이 이러한 비판의 근거가 됩니다. 미술사학자 베르너 호프만Werner Hofmann은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때때로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관객을 압도하고, 이는 그의 메시지 전달을 방해할 수 있다"고 비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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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요 특징


1. 숭고한 자연 표현


프리드리히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은 '숭고한 자연' 표현입니다. 이는 18세기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제시한 '숭고(Sublime)'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거대한 산맥, 끝없는 바다, 광활한 들판 등을 통해 자연의 압도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풍경 속 작은 인물을 배치하여 인간의 유한함과 자연의 무한함을 대비시킵니다.


2. 상징주의적 풍경화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요소들을 종교, 철학적 상징으로 활용하여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십자가, 달, 바위, 나무 등의 자연 요소들을 활용하여 상징적 의미를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을, 달은 부활과 희망을 상징하는 식입니다. 미술사학자 베르너 호프만Werner Hofmann은 "프리드리히의 상징주의적 풍경화는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실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3. 명상적 내면 풍경


프리드리히는 외부의 자연 풍경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연결 짓는 독특한 접근 방식입니다. 주로 실내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구도를 사용합니다. 이는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의 경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바닷가의 수도사'(1808~1810). 독일 낭만주의 회화 중 가장 대담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모든 선들이 그림 밖으로 이어지면서 그림은 무한한 세계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보는 사람은 작품 속 수도사와 함께 자신의 왜소함을 인식하며 우주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_Wikipedia


바다와 하늘 특히 하늘이 화면의 5분의 4를 차지합니다.

바다는 낮고 넓게 수평선을 만들고 하늘과의 경계를 어슴푸레 긋습니다.


한 명의 수도사는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한 채 서 있습니다.


북쪽을 보는 걸까요?

동쪽을 보는 걸까요?


언덕으로 보이는, 길이 없는 황무지

마침표같이 보이는 수도사.


작은 인간 형상, 거대 자연,의 대비

숭고Sublime의 시각화 같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Caspar David Friedrich <Zustand vor der Restaurierung>, (1808-10) 출처: Wiki





"이 곡은 베르크의 주요 작품 중 최초로 작곡된 곡으로,

넘치는 자신감과 고도의 기교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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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겨울

흔들리는, 2월

흔들리는, 소리

음표들의 떨림. _하루키


*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제자로 잘 알려진 알반 베르크(Alban Berg)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입니다. Piano Sonata, Op. 1은 1908-1909년에 완성되었고, 191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전혀 무조라고 할 수 없지만, 풍부한 화성학과 감성적 요소가 혼합된 자유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_Wiki

Berg: Piano Sonata, Op. 1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Caspar_David_Friedrich

[2] Theartstory: Caspar_David_Friedrich

[3] Artble: Caspar_David_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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