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숲 초원의 벌거벗은 여인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by 하루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는 감정적이고 예민한 존재였으며, 그의 표현주의 그림은 세상과의 예민함에 주도되었습니다. 키르히너의 (하기) 말에서 우리는 그의 삶과 경력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톰 거니Tom Gurney)


화가는 사물의 객관적 정확성이 아닌 사물의 모습을 그린다. 사실, 사물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한다. 내 작업의 목표는 항상 주변의 감각에 나 자신을 완전히 녹여내고 이를 일관된 회화적 형태로 통합하는 것. 모든 예술은 이 가시적인 세계를 필요로 하며, 앞으로도 항상 필요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세계로 가는 열쇠가 된다.


사람들은 절망 때문에 예술가가 된다. _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Ernst_Ludwig_Kirchner_Nackte_Frauen_auf_Waldwiese_1928-1.jpg Ernst Ludwig Kirchner <Nackte Frauen auf Waldwiese>, (1928)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봄, 키르히너는 독일군 포병연대 운전병이 됩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모르핀 중독자가 됩니다. 그해 겨울 강제 전역 되어 베를린에서 아내 헬레네Helene의 보살핌을 받지만 심각한 우울증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자살시도를 합니다.


2017년 보다 못한 헬레네는 강하게 요구합니다. "중립국 스위스로 이주해요. 다보스라는 도시로, 자연이 아름다워요. 어쩌면 자연이 당신을 치유해 줄지 몰라요." 키르히너는 아내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보스로 이주를 합니다. 처음 본 다보스. 원시적 자연 풍경, 강렬한 색감.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약 2년에 걸쳐 통근 치료와 운동을 통해 점차 우울증이 치료되고 건강이 회복됩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항복으로 종전됩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키르히너는 화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표현주의 화가로 인기를 얻습니다. 1928년 여름,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끝내고 다보스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헬레네가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자신을 억지로 데리고 나옵니다. 함께 30여 분을 걷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한낮인데도 어두웠던 숲 속. 얼마쯤 더 들어가자 숲이 걷히고, 강렬한 햇살과 마주합니다. 동공은 서서히 수축되고 원시의 들판과 연못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숲 속. 가리어진, 원시적 풍경

연못.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수면에 헬레네와 내가 또렷이 비친다.


산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 헬레네는 저녁 준비를 시작했고, 키르히너는 작업실로 이동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연못에 비친 원시-숲-사람



&



1. 눈을 감았다 떴다. 하얀 캔버스는 사라지고, 투명한 연못 수면이 보였다. 수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나체로 서있는 두 명의 여인이 보였다. 한 사람은 머리 색이 갈색이었고, 한 사람은 파란색이었다. 얼굴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지만, 표정도,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햇살은 나체 여인의 피부를 연한 흰색으로 그림자는 연두색으로 만든다.


2. 손가락으로 수면을 건들자 파문이 생기고 파동은 중심원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파문이 사라지자 나체로 서있는 두 명의 여인이 보였다. 둘의 모습을 봤다. 갈색 머리의 여인은 한 손을 나무에 기대고 다른 한 손은 둔부 위에 올린 채 한쪽 발은 나무에 기댄다. 파란색 머리의 여인은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서있다.


3. 헬레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준비가 끝났어요. 어서 오세요." 정신을 차렸다. 하얀 캔버스가 보였다. 캔버스에는 나체로 서있는 두 명의 여인이 보였다. 아직 떠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둘의 주변은 좀 전에 헬레네와 함께 걸었던 숲이었다. 잠시 숲을 응시했다. 깊은 곳, 보라색 실루엣. 찾았다.


키르히너는 저녁을 잊은 채. 밤새워 그림을 그렸다.

SE-3802678b-db75-42f8-a1c2-c23324280ff5.jpg?type=w466
SE-bd2356fc-ef32-494e-968b-b1f0b56c3bf7.jpg?type=w466
SE-2a0579fc-bddf-42d9-ba8e-86b523ee28ef.jpg?type=w466
SE-dac648a1-6fb6-48c9-9723-71bb8fddc6fc.jpg?type=w466
SE-0a4947d5-66ae-4cc3-b9c7-6b9df901ed39.jpg?type=w466
SE-b9370fbf-bd16-43f0-b6ed-030d78eb1753.jpg?type=w466

* 화가 -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 ~ 1938년, 독일)

+ 전기(1880-1910)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는 1880년 독일 바이에른 주의 아샤펜부르크에서 태어납니다. 1901년 드레스덴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이미 그림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1905년, 키르히너는 프리츠 블레이Fritz Bleyl, 에리히 헤켈Erich Heckel, 칼 슈미트-로틀러프Karl Schmidt-Rottluff와 함께 Die Brücke(다리)* 그룹을 결성합니다. 이 그룹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스타일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 표현 방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 Die Brücke(다리)는 1905년 6월 7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4명의 건축학도들에 의해 창립된 독일 표현주의 예술 그룹. '다리'라는 의미의 이름은 그들이 미래의 예술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키르히너의 초기 작품은 주로 스튜디오, 도시의 거리와 나이트클럽, 해변에서의 여름 여행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목판화 기법을 부활시키고, 다양한 판화 작품을 제작하며 기법과 색채 실험에 집중합니다.


+ 중기(1911-1916)


1911년 키르히너는 베를린으로 이주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베를린의 현대적인 도시 생활을 담은 유명한 거리 풍경화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전기 조명 아래 기괴하게 비친 얼굴들과 날카로운 각도의 도로를 묘사하며, 현대 도시의 긴장감과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1913년 Die Brücke(다리) 그룹이 해체되면서 키르히너는 독자적인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키르히너는 자원입대하지만, 곧 정신적 붕괴를 겪고 제대합니다. 이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15년 작 <Self-Portrait as a Soldier>에서 키르히너의 트라우마를 강렬히 표현합니다.


+ 후기(1917-1938)


1917년 키르히너는 건강 회복을 위해 스위스 다보스로 이주합니다. 1918년부터는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풍경화를 많이 그립니다. 이 시기 작품은 '새로운 스타일'로 불리며, 추상적 형태, 윤곽선이 뚜렷한 색면, 강렬한 대비가 특징입니다.


1920년대 키르히너의 명성은 높아져 스위스와 독일에서 전시회를 열고, 1931년에는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키르히너의 작품이 '퇴폐 미술'로 낙인찍힙니다. 1937년에는 600점 이상의 작품이 독일 미술관에서 몰수되어 파괴되거나 팔려나갑니다.


박해와 건강 악화로 인해 키르히너는 1938년 6월, 스위스 다보스 근처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 비평적 관점

키르히너는 항상 다른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가 키르히너 스타일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포비즘(Fauvism; 야수파)이 그의 색채 사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마인드맵.png



* * *


+ 주요 특징


1. 초기 Die Brücke(다리) 시기


이 시기 키르히너 스타일은 강렬하고 비자연적인 색채 사용, 단순화된 형태, 원시주의의 영향, 누드와 스튜디오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이 특징입니다. 인체에 관심이 많아 누드 작업도 많이 합니다.


2. 베를린 시기


베를린으로 이주한 키르히너는 도시 생활을 주요 주제로 삼았으며, 왜곡된 원근법과 기울어진 구도를 통해 도시의 긴장감과 소외를 표현합니다. 특히 거리 풍경화 시리즈를 통해 현대 도시의 불안과 에너지를 포착합니다.


3. 후기 스위스 시기


스위스 다보스로 이주한 후 키르히너는 새로운 화풍을 개발합니다. 넓은 색면들이 서로 얽혀 형태를 만드는 스타일로, 알레고리적 풍경화와 추상성이 증가한 작품들이 특징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키르히너의 왜곡된 관점, 감각을 모방하려고 합니다. 이 예술가의 기하학적이고 광란적인 선과 고도로 강조된 색 구성표는 시대를 초월한 독특함입니다. 표현주의 화가의 미래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_Wikipedia


하기 그림은 <가을의 세르티그 계곡>이란 그림입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독특한 색감이 매력적입니다.

가을의 정취와 전염성 강한 보라색이 계곡을

물들고 있습니다.


10월과 11월. 사이의 어느 날. 가을이 생각나는 풍경입니다.^^

Ernst-ludwig-kirchner-sertig-valley-in-autumn.jpg Ernst Ludwig Kirchner <sertig valley in autumn>, (1920) 출처: Wiki





"가능하다면 7분 30초 정도를 그냥 들어보시기를,

이 곡은 그냥 들어보았으면 한다." _1일 1클래식

/

첼로를 좋아하는가. 굴곡진 실루엣. 낮고 섬세하게 밀려오는 파고. 아름답다. _하루키


* 슈만은 1842년에 이 4중주를 작곡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악장 “Andante cantabile”는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이 악장은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이 특징입니다. _Wiki

Schumann, Piano Quartet in Eb Major, Op. 47, III. Andante cantabile, BCMF 2014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Ernst_Ludwig_Kirchner

[2] Wikiart: Ernst_Ludwig_Kirchner

[3] Britannica: Ernst_Ludwig_Kirchne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