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만 Oct 23. 2024

이번 열차는 치유행

#8

2020.9월


아이들의 한 학기가 흘러가고 부부상담은 마지막 회차가 되었다. 그때까지 늘 평탄한 삶은 아니었고  간간히 전과 같은 갈등들이 생기기도 했다. 가령 회식을 해서 잠시 연락두절이 된다던지, 출장 가서 술에 취한 채 전화를 못 받는다던지 하는 문제였는데, 신기한 것은 내가 남편과 연락이 끊기고 나면 단 1분 만에 불안에 휩싸이면서 과거의 상처와 딱 맞아떨어지는 상상의 나래를 즉각 펼쳤다는 것이다. 이건 내 의지가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그냥 자동버튼이 눌러져 실행이 돼버린다는 게 더 맞는 듯하다. 이제야 돌아보면 그 당시 남편이 노력은 했지만 때론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던 옛 습성에 끌려가기도 했기에 더 나를 자극하고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락이 끊어지면 불안해서 못 산다니 그게 말이 되냐는 거다.

"너나 나나 이렇게 불쌍하게 살 바엔 그냥 다 때려치우자!"

새파랗게 질린 채 불안에 절은 모습으로 남편의 숨통을 조으는 나 자신이 나도 너무 싫어서 일부러 더 악다구니를 써 댔던 거 같다.

"그냥 죽자 죽어. 아니, 내가 먼저 죽어줄게."

이 말은 왜 안 나왔겠나. 지금 이 말을 들으면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그 당시엔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남편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네가 책임져야지. 어디 나 몰라야!"

눈이 뒤집혀서 이런 말들도 막 던졌더랬다.


힘들었다. 정말 영혼이 파 먹힌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내게 보이는 불안증세는 가혹했고 때론 쓰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길에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주말엔 차가 막혀 아무 데도 안 간다던 남편매주 가족들과 주말나들이를 계획했고, 나는 내 안에 차인 상한 감정들을 빼내는데 집중했다. 나는 가끔 내가 무섭게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깜짝 놀라며 광대를 최대한 끌어올려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며 숨을 쉬었고, 깜깜한 밤이 옛 상처들을 불러내며 날 유혹할 때면 글로 그 분노를 쏟아내는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글을 쓰며 아픔을 달래는 시간들이 점차 늘어갔다.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의 노력도 곁들여졌는데 둘이서만 드라이브한 적이 언젠지, 서로의 기호가 사는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같이 공유하고 웃을 거리가 어떤 게 있는지 등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부분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일들을 빼곡히 채워갔다. 함께 있는 게 처음에는 역겹고 지옥 같았는데 조금씩 교집합이 보이기 시작하자 '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다양한 즐거움의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젯밤에는 급작스럽게 강원도로 왔다. 마이삭 태풍이 동해로 빠진다고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굳이 우린 이곳에 왔다. 아직도 가끔씩 현실도피가 필요했다.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괴롭고 버거울 때는 한 번씩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떠나와야만 숨이 쉬어졌다. 남편과 나는 기질이나 생활방식이 참 많이 다른데 훌쩍 떠나는 것만은 서로 닮아서 이럴 땐 죽이 잘 맞았다.


이제 태풍이 강원도에도 상륙했는지 비바람이 몰아다. 침대방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산새를 알아볼 수 없게 모든 것이 희뿌였다. 하늘에서 누가 땅에 물이라도 주는 것처럼 거센 물줄기가 바람을 타고 흩뿌려진다. 

"우두두두두"

그러다 돌풍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새벽에 들이닥친 돌풍이 숙소를 뒤흔드니 가구부터 창문까지 살아있다는 듯 삐걱대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은 잘만 자는데 나는 그 소리에 눈은 감았어도 잠들지 못하고 결국 거실을 배회하다 커튼을 젖히고 소파에 앉았다. 이제 그 바람소리는 사라지고 비가 내린다.

"타닥타닥 타다다다다"

온 산을 뒤덮으며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바람결대로 흩날리는 물줄기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잠을 설친 바람에 일찍 깼지만 새벽부터 통창너머로 펼쳐지는 지상 물쇼는 가히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언제 또 이런 걸 감상할 일이 있으랴. 커튼만 젖히면 아파트 벽들로 둘러쳐진 서울 집에선 당최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내 인생에도 아직 이런 돌풍이 불고 있다. 아니 이제는 조금씩 비켜나가려는 중이다. 쏴아하고 세차게 내리치는 빗소리처럼 내게도 맞으면 너무 아플 것 같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가 점점 약해져 다행히 이제는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가 되고 있다.


모든 게 태풍이 지나가는 과정 속인 게다. 제일 강한 돌풍이 불 때 두려움에 떨며 알지 못하는 결말로 향한 발을 떼기가 어려웠던 그 순간부터 확실치는 않지만 조금씩 잦아드는 빗소리에 점차 희망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는 그 전체의 과정말이다.

끝없이 쏟아지던 이 빗줄기를 뚫고 뛰어나가면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쉴 새없이 때려붓던 마이삭 태풍의 빗줄기도 서서히 약해져간다.


아이들을 불러 다 같이 식탁에 앉았다.

"자 지금부터 가족회의를 하도록 하겠어요."

엄마가 무슨 아나운서처럼 진행을 하니 까불고 장난치던 아들 두 명은 무슨 일인가 싶어 입을 쳐다보며 집중했다.

"얘들아, 엄마 아빠가 싸웠을 때 있잖아. 그때 많이 놀랐지?"

둘째가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응"하고 크게 대답했다.

"너무 무서웠. 고함소리가 너무 싫어서 방에 들어가서 귀를 막고 있었어. 형은.. 형은 말린다고 거실로 뛰쳐나갔는데 난 못 그랬어.. 히잉 형.. 미안해."

둘째가 대답하다 말고 갑자기 미안한지 입을 어디까지 내밀고는 형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하다. 엄마아빠가 그렇게 다투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싸우지 않으려고 해. 오늘 가족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나갈 생각이야."

"이야~그거 너무 멋진데. 그럼 약속 꼭 지켜야 해요."

눈치가 빠른 첫째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숙한 가족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모양으로 장난스럽게 박수를 쳐댔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팅 한번 할까?"

남편의 말에 아이들이 먼저 손바닥을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내 손, 남편손을 차곡히 쌓은 뒤 우리는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우리 가족 파이팅 어때요?"

"그래, 그러자."

하나, 둘, 셋, 우리 가족 파이팅!

큰 소리로 외치니 마음 깊은데서부터 무언가 뜨거워지고 충만함이 퍼진다. 웃으며 눈빛교환을 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새롭게 느껴졌다.






부부상담을 끝내며 우리 가족은 주말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자연에서의 힐링을 체험했던 우리 가족은 근교에 있는 작은 교회를 출석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작은 시골교회는 20~30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코로나라 예배 후 다 같이 식사는 어려웠는데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도시락 나눔이 있었다. 교회분들이 직접 요리를 해서 음식을 나누는 봉사였다.

"원래 섬기시던 분이 허리 수술을 하시는 바람에 지금 일할 사람이 없어요."

주방은 작은 교회에 비해 꽤 널찍했다.

고기 굽기는 자신 있던 신랑이 대뜸 말했다.

"반찬은 어떤 걸 하나요?"

"정해진 건 없고 요리하는 사람 마음이에요."

"고기반찬 다들 좋아하시지 않나요?"

"고기는 예산이 많이 들어서 자주는 못해요. 일반적인 밑반찬을 주로 만들어요."

고기 없는 밥은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발끈하며 말했다.

"그러면 안 되죠. 나이 드신 분들이 꼭 단백질을 챙겨드셔야 하는데.."


그 말을 듣자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성에 찰 때까지 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거기 사람 몇 명 된다고. 일단 내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기반찬을 하나 넣어야겠어."

분명 시작은 고기반찬 하나였다.


 

이전 07화 북두칠성이 되면 좋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