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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만찬

#꼬치어묵탕

by 하루만

벌이가 시원찮아지는 겨울이 오면 나를 비롯한 두 아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필이면 다들 춥고 시린 겨울에 태어나 안 그래도 빠듯한 생활비를 더 빈약하게 한다. 생일이 없다 해도 연말과 새해의 들뜬 분위기는 케이크 하나쯤은 사게 만드는데 거기에 4개를 더 보태니 꼭 하나를 빼야만 할 것 같다.


"띠링"

친정엄마가 보낸 문자다.

"사랑하는 딸~오늘이 우리 딸 결혼기념일이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진심으로 축하해!"

2020년 남편의 외도가 들통나고 이혼을 결심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내려갔다.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시들어가는 나에게 엄마는 삼시 세끼를 정성껏 차려내시며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심장이 아파 잠 못 들던 밤, 그날 엄마는 나 몰래 거실소파에 앉아 숨죽여 울면서 한탄을 하고 계셨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딸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있다.


'어? 오늘이라고? 난 내일인 줄 알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기념일 따위를 챙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낸 우리 부부다. 쓰라리고 아픈 가정의 위기를 겪고 겨우 회복했더니 또 다른 시련이 건너지 못할 홍해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 신이시여!"

무심도 하시지. 남편을 다시 믿어주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통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설상가상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한 혼돈의 중심에 또 나를 세워두신다.


"고난은 우리 영혼의 맥박이다."


살아있음의 증거가 고난이라지만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는 압박감은 너무도 혹독하게 아프다. 남편은 그 일을 해결하겠다며 일 년동안 전국을 뛰어다녔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점차 희미해지고 길이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몇 번의 섣부른 희망과 바닥을 치는 낙심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연말과 새해를 맞이했고 그만큼 우리는 지쳐갔다. 정말이지 일상을 살아내기조차 벅찬 순간에도 우리 부부는 아이들 덕분에 한 번 더 웃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에서도 맛있게 저녁 한 끼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웬만해서는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인데 자꾸 울컥하며 잠금장치가 고장 난 수도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렇다고 애들이나 남편 앞에서 울진 못하고 혼자 방구석에서 울다 나왔다.

'이렇게 고달픈 결혼기념일이 또 있을까.'

초라한 내 상황과 처지를 탓하며 연민의 눈물이 흐른 것이리라.

'저 인간을 만나서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하라는 대로 다 따라줬는데 결국 이 꼴이라고!'

나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슬픔은 분노가 되어 남편을 볼모로 잡아 싸대기를 때린다. 삐딱한 마음이 차오르자 기념일을 이렇게 날리는 것이 더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빈곤함이 이 우울의 실체라면 가난의 풍요를 발견하면 될 일이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돈독해진 가족 관계다. 서로가 있음으로 힘이 난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4명의 완전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로가 되는지를 느꼈던 것이다. 또 다른 것은 서로를 위한 작은 희생이다. 무언가가 부족할 때 한 명이 나서서 그 결핍을 차지함으로 서로를 위한 배려와 희생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또한 힘든 시절을 함께 극복해 나간 이 추억은 젠가 아이들에게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터널을 통과하게 해주는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을 확신한다. 결국 물질의 부족이 내 속을 시커멓게 태웠지만 관계와 내면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며 소박한 즐거움을 맛보는 더 큰 충만함을 얻게 해 줬다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남편은 결혼기념일인 걸 모르는 거야? 왜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한 거야?'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무얼 준비했나? 그러자 남편이 보던 개그콘서트가 떠올랐다. <아는 노래>라는 코너인데, 뮤지컬 형식으로 한 스토리를 드라마로 연출하다가 딱 그 상황에 맞는 노래를 주인공이 부르며 감성을 차오르게 하는 코너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노래를 여러 가지 뒤져보는데 가요를 찾아듣질 않는 나라서 이 기념일에 맞는 노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냥 고하자. 나는 콘서트 무대 위로 올라가는 가수처럼 당당하게 걸어 거실로 나갔다.


"얘들아,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인데 너희 그거 몰랐지. 작년에는 너희가 케이크 사 왔었는데 말이야. 흠흠, 결혼기념일을 맞아 내가 편지를 썼어."

남편은 티브이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고 있고, 아이들은 각자의 일에 빠져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보! 내가 지금 라이브편지를 당신한테 띄운다고 하잖아. 티브이 좀 꺼줄래? 그리고 너희들도 하던 거 놔두고 집중해."


"자 시작한다. 여보, 흐흐흑..(우는 척하며) 눈물겨운 한 해를 보내며 우리 힘들었다. 그지? 정말 고생 많았어. 그 와중에 가족들 먹인다고 요리까지 해줘서 감동이었고, 아들과도 소통하며 같이 웃고 시간 보내줘서 가 참 든든해.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살자. 사랑해! "

나는 언젠가 다시 들려줄 요량으로 라이브 편지 들려줌과 동시에 녹음을 땄다.

"마지막으로.. 내가 노래 하나 준비했어."

"엥? 엄마가?"

"그거 개콘 따라 하는 거 같은데?"

눈이 휘둥그레진 아들들이 신기한 동물 보는 마냥 목을 길게 뽑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근데 내가 아는 노래가 진짜 없더라. 그냥 생각나는 거 부를게. 후훗"

마이크가 있는 것처럼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열창을 한다.

"나랑 결혼해 줄래~ 나랑 평생을 함께 살래. 우리 둘이 알콩달콩 서로 사랑하며~"

노래를 부르며 빙그르르 돌고 팔을 옆으로 펼치고 난리부르스를 떠니 소주잔을 들고 있던 신랑이 일시정지상태가 된 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이 노래는 자기가 나한테 불러줘야지!"

신나게 흥을 올리다 허여멀건 얼굴로 좋은 내색도 못하면서 날 보고 있는 남편에게 괜히 꽥 소리를 지르고는 기념일 행사를 마무리했다.


기념일만찬은 뒷날 양평의 지인댁에서 먹는 식사로 퉁치기로 한다. 만찬메뉴가 여러 가지였지만, 홍게와 홍합으로 육수를 낸 꼬치어묵탕을 이번 기념일 만찬메뉴라 칭해본다. 덜덜 떨면서 먹어야 국물맛이 제대로라는 꼬치어묵탕처럼 지나고 있는 위태위태한 길은 우리에게 깊어진 완숙미를 뽐내게 할 테지. 가파른 비탈길을 헤쳐가서 도착지에 다다르면 그때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오늘도 손 꼭 잡고 달리자!


정작 꼬치어묵을 넣고 끓이는 사진은 찍지도 못했다. 먹느라 바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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