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려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이 두꺼운 회색 담요처럼 무겁게 뒤덮여있다. 날카롭고 차가운 겨울공기는 대지의 생명들을 숨죽여 긴장하게 만드는 듯했고, 나 역시 몸뚱이를 집 밖으로 내놓기가 참 싫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드님의 깁스를 푸는 역사적인 날이다.
마치 못 걷던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걷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라도 한 듯 비장하다. 드디어 정형외과 A진료실로 들어간다.
"자,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 깁스하고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천천히 연습하면 돼."
안타깝게도 한 달 넘게 깁스했던 발목은 뻣뻣했고 종아리는 여자다리처럼 날씬해졌다. 당연히 당장 자연스럽게 걷진 못했지만 그래도 깁스를 풀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아들에게 오늘 저녁은 뭘 먹으면 좋을지 혼잣말하듯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첫째가 내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도 답했다.
"나는 그냥 맛있는 거 말고.."
갑자기 고릴라처럼 굵고 큰 목소리를 내며 뒤이어 말했다.
"엄~~ 청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그 소리를 들은 나는 한숨이 나온다.
"아들아, 그건 네 행복의 척도가 너무 높은 거야. 어느 정도의 맛이 되면 만족하고 감사해야지. 그렇게 욕심이 많아서 어째."
나의 잔소리가 못마땅한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사를 어필한다.
"그럼 고든램지 같은 사람은 왜 있는 거야!! 한 입 입에 넣고 맛과 향, 식감을 음미할 때 그 완성도에서 오는 기쁨을 엄마는 몰라. 오늘같이 기쁜 날은 그런 음식이 필요하다고."
행복은 주관적이며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경로 또한 다양할 테지만, 정말이지 첫째는 지애비를 똑 닮아 유독 맛있는 음식을 통해 느끼는 행복을 갈구한다. 거기다 남들보다 까다롭고 예민한 입맛을 가진 첫째 아닌가. 그런 아들에게남편왈,
"첫째야, 너는 신이 내려주신 미각이야. 네 혀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라고!"
라는 말을 할 정도니 매번 밥을 차려줘야 하는 엄마의 입장은 매 순간이 콘테스트에서 심사를 받는 기분이 드는 것이 참 별로라 할 수 있겠다. 피곤하게 추가적인 요구사항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러다 보니 아들이 작은 맛에 감사할 줄 알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나는 자족이 쉬운 사람이다. 이 말인즉, 큰 야망 한 번 꿈꿔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적당히 두루 잘하는 나와는 달리 야망이 이글거렸던 남편은 "끝내 이루리라"고 외치는 듯 한 가지에 미친 듯 집착하며 파고드는 열정이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면 '저건 내가 배워야 할 점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맛에 있어서 나는 또 "적당함"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잘생긴 LA갈비 피빼기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돌아온 다리를 위하여 행복을 가져다주는 LA갈비를 특별히 모셔왔다. 양념불고기는 자주 먹어도, 피를 빼고 양념을 해야 되는 LA갈비는 손이 더 가는 탓에 먹을 기회가 비교적 적다. 갈비를 선정할 때도 대충 고르는 법이 없는 남편이 잘생긴 아이들만 골라 담았다. 사실 양념도 중요하지만 양념고기의 맛은 누가 굽는 가가 좌우한다는 설이 우리 집에 있다. 아빠가 수분기를 날리며 웍질을 해줘야 불향 나는 고기가 된다는 말이다.
행복을 주는 맛
"얼른 와서 먹어. 네가 기다린 엄~~ 청 맛있는 음식이야."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든 아들들이 먹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맛이 어때?"
내 물음에 첫째가 갑자기 눈을 감고는 맛을 음미한다. 식탁 위의 두 손을 작은 원 그리듯 뱅글뱅글 돌리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