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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함이 필요할 때

#버터전복구이

by 하루만 Jan 07. 2025

결혼생활이 10년이 넘어가는 부부들은 누구나 한 번쯤 권태기를 겪어봤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설렘이 사라지고 편안하고 익숙하다 못해 이젠 지루해지기 시작한 때 말이다. 하지만 지루함이 꼭 사랑의 결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단조롭고 반복되는 패턴의 삶으로 인해 정체된 상태이며, 업무나 육아로 인해 우선순위가 바뀐 채 각자의 영역에서 고립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때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이 딴 길로 빠져 도파민을 터뜨릴지도 모르니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여보, 우리 살사댄스 배워볼래?"

나는 어설프게 발동작을 해 보이며 남편에게 다가가 물었다.

"헉, 얘들아 도망가자. 엄마가 이상하다."

사실 나도 춤에 소질이 있는 편도 아니지만, 나이가 드니 원래 나와는 다른 페르소나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렬한 색의 등이 확 파인 드레스도 마음에 들고, 파트너와 한 호흡으로 맞추는 발동작과 춤사위가 카리스마 있고 정열적이다. 저런 멋진 퍼포먼스가 나올지는 상당히 의문스럽지만, 배우는 시간 동안 끈적한 눈 맞춤과 은근한 스킨십이 결혼생활 15년이 된 부부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같이 배우면 새롭고 재미있지 않을까?"

"그러다 서로 발 밟고 네가 틀렸니 내가 틀렸니 하며 싸울걸?"

생각해 보니 동갑내기 우리에겐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상상 속에서만 아름다운 걸로 하고 살사는 빠르게 포기했다.


무모하고 무리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삶에서 약간의 변형이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잔잔한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날, 그럴 우리 부부는 매번 먹던 스타일의 음식 말고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한다. 쇼핑도 하지 않는 우리지만 새로운 레시피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에 따른 재료를 사러 가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을 부린다.


한 번은 "푹 쉬면 다행이야"라는 예능프로에서 머구리들이 족족 전복을 따는 것을 봤다. 자연산 전복의 크기는 머구리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는데 그때 전복에 필을 꽂힌 우리는 다음날 바로 마트에서 세일하는 전복을 구입하게 됐다. 전복회, 전복죽, 전복장 할 수 있는 게 다양했지만 남편이 전복버터구이를 하신단다.

'아, 그건 엄청나게 새롭진 않은데..'

속으로 좀 더 획기적인 요리가 없을까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데 실행력하나는 끝내주는 남편께서 다른 아이디어를 낼 새도 없이 손질을 순식간에 마치셨다. 그리고 보조인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

"버터 좀 가져와줘."

"예. 쉡!"

마늘과 함께 전복을 넣고 볶아주는데 버터의 고소함이 코를 찌른다. 머구리들의 자연산 전복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자잘한 전복들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간장 넣어야지?"

"아니. 이번에는 간장 없이 해보려고."

'아, 아이들은 간장조림 버터구이를 좋아하는데. 그게 더 맛있을 텐데..'

내심 걱정이 되지만은 웍질에 총력을 다하는 남편의 뒷모습에 입을 닫는다. 그러고는 버터향에 꼬였는지, 전복이 너무 먹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게 남편  뒤로 가 그를 껴안고 말았다.

"요리하는데 왜 이래."

타박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를 놓지 않고 대답했다.

"버터도 가득 들어가 느끼한데, 우리도 좀 느끼해져 보자고."


나도 말해놓고는 깜짝 놀란다. 나 느끼한 거 좋아했니?

무슨 소리야, 느끼한 아저씨들 제일 싫어했지. 근데 나이 들어서 가끔 부부끼리 느끼해져도 괜찮을 것 같아.

퍽퍽한 삶에 윤기가 번지르르하게 돌도록 내가 먼저 느끼하게 백허그. 어때?


느끼하고 고소한 버터향 가득 전복구이느끼하고 고소한 버터향 가득 전복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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