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 10년이 넘어가는 부부들은 누구나 한 번쯤 권태기를 겪어봤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설렘이 사라지고 편안하고 익숙하다 못해 이젠 지루해지기 시작한 때 말이다. 하지만 지루함이 꼭 사랑의 결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단조롭고 반복되는 패턴의 삶으로 인해 정체된 상태이며, 업무나 육아로 인해 우선순위가 바뀐 채 각자의 영역에서 고립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때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이 딴 길로 빠져 도파민을 터뜨릴지도 모르니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여보, 우리 살사댄스 배워볼래?"
나는 어설프게 발동작을 해 보이며 남편에게 다가가 물었다.
"헉, 얘들아 도망가자. 엄마가 이상하다."
사실 나도 춤에 소질이 있는 편도 아니지만, 나이가 드니 원래 나와는 다른 페르소나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렬한 색의 등이 확 파인 드레스도 마음에 들고, 파트너와 한 호흡으로 맞추는 발동작과 춤사위가 카리스마 있고 정열적이다. 저런 멋진 퍼포먼스가 나올지는 상당히 의문스럽지만, 배우는 시간 동안 끈적한 눈 맞춤과 은근한 스킨십이 결혼생활 15년이 된 부부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같이 배우면 새롭고 재미있지 않을까?"
"그러다 서로 발 밟고 네가 틀렸니 내가 틀렸니 하며 싸울걸?"
생각해 보니 동갑내기 우리에겐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상상 속에서만 아름다운 걸로 하고 살사는 빠르게 포기했다.
무모하고 무리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삶에서 약간의 변형이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잔잔한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날, 그럴 때 우리 부부는 매번 먹던 스타일의 음식 말고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한다. 쇼핑도 하지 않는 우리지만 새로운 레시피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에 따른 재료를 사러 가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을 부린다.
한 번은 "푹 쉬면 다행이야"라는 예능프로에서 머구리들이 족족 전복을 따는 것을 봤다. 자연산 전복의 크기는 머구리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는데 그때 전복에 필을 꽂힌 우리는 다음날 바로 마트에서 세일하는 전복을 구입하게 됐다. 전복회, 전복죽, 전복장 할 수 있는 게 다양했지만 남편이 전복버터구이를 하신단다.
'아, 그건 엄청나게 새롭진 않은데..'
속으로 좀 더 획기적인 요리가 없을까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데 실행력하나는 끝내주는 남편께서 다른 아이디어를 낼 새도 없이 손질을 순식간에 마치셨다. 그리고 보조인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
"버터 좀 가져와줘."
"예. 쉡!"
마늘과 함께 전복을 넣고 볶아주는데 버터의 고소함이 코를 찌른다. 머구리들의 자연산 전복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자잘한 전복들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간장 넣어야지?"
"아니. 이번에는 간장 없이 해보려고."
'아, 아이들은 간장조림 버터구이를 좋아하는데. 그게 더 맛있을 텐데..'
내심 걱정이 되지만은 웍질에 총력을 다하는 남편의 뒷모습에 입을 닫는다. 그러고는 버터향에 꼬였는지, 전복이 너무 먹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게 남편 등 뒤로 가 그를 껴안고 말았다.
"요리하는데 왜 이래."
타박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를 놓지 않고 대답했다.
"버터도 가득 들어가 느끼한데, 우리도 좀 느끼해져 보자고."
나도 말해놓고는 깜짝 놀란다. 나 느끼한 거 좋아했니?
무슨 소리야, 느끼한 아저씨들 제일 싫어했지. 근데 나이 들어서 가끔 부부끼리 느끼해져도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