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만랩 Jul 08. 2024

고칠게 너무도 많은 나의 달리기

인생도 천천히 고쳐가면서 달리는 거다

달리기에 천천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1개월 차.

그냥 무작정 달리는 게 맞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달리기 유튜브 서핑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달리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을 줄은 미쳐 생각도 못해서 일단 놀랐고, 달리기에 이렇게나 많은 지식과 훈련이 있다는 데에 또 한 번 놀랐다. 그저 맘 편하게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나는 오래 달리고 싶었고, 조금 더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 단순히 거리를 오래 뛴다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적어도 1년, 길면 3년, 이후로 괜찮으면 10년 그 이상으로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달리기의 자세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참 좋아진 탓에 요즘에는 유튜브로 친절하게 전문지식을 배울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전직 마라토너부터 선수출신 코치님들의 상세한 자세교정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달리기는 비효율적이고, 부상을 당하기 쉽고, 결국 오래 달릴 수 없는 자세를 가졌구나...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척추협착이라는 진단과 함께 디스크에도 문제가 있어 한쪽 다리가 저린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재미가 생겨서 몰입할 수 있는 장난감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못하게 되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돌연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 즐거웠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난 아직 달릴 수 있고,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달리고 왔고, 약간의 통증들이 다리에 있긴 하지만 이 아픔은 근육통과 같이 점점 근육이 강화되면서 없어지는 증상일 거라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일찍 포기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럼에도 결국 그걸 이겨내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중요한 것은 나의 달리기가 비효율적이라면, 나의 달리기가 부상을 일으키기 쉬운 달리기라면, 그 위험요소들을 수정하고 바꾸는 게 먼저였다. 과연 나는 달리면 안 되는 사람인지, 달릴 수 없는 상황인지를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먼저였다. 무턱대고 불구덩이 속으로 나를 던지는 게 아닌, 나에 대한 위험 요소를 계속 점검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위험부담은 스스로 감수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예전에도 쉽게 포기했던 순간을, 위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넘겼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자세교정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치지 않도록 속도를 낮췄다. 다치지 않기 위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강화훈련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고, 폼롤러를 처음 사서 마사지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의 달리기를 위해서 고쳐야 할 부분들을 열거해 보니 대략 스무 개 남짓한 수정사항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작 이 달리기 한 번, 기껏해야 한 시간도 넘지 않는 달리기, 거리로 따지면 10km도 안 되는 - 당시에는 초보러너인 관계로 5km를 달렸지만 지금은 최대 하프까지는 달리고 있다 - 고작 그 달리기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과, 끝나고 나서도 마무리 운동에 들어가는 시간이 달리는 시간보다 더 길다는 걸 알았다. 그 많은 수정사항을 한꺼번에 바꾼다는 건 불가능했고, 고쳐나가야 할게 많기 때문에 처음에 가졌던 엄청났던 의욕은 점차 의구심과 뒤섞여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기 자체를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고쳐서라도 달려 보겠다는 심장의 뜨거운 외침이 이미 머릿속에 싹트는 걱정이나 두려움을 제압해 버린 상태였다. 고치는데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도전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도 나의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은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하다 보면 분명 잘못되어 가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된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을 수도 있고, 중간부터 단추를 헷갈려서 잘못 연결했을 수도 있다.

단추가 잘못 채워진 옷은 버리는 게 아니다. 잘못된 부분을 다시 제자리로 고쳐서 입는 것이다. 


지금도 항상 달리면서 자세가 맞는지 중간중간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러너들은 모두 아는 얘기이겠지만 달리기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미드풋으로 달려야 한다고 하고, 대부분의 선수들도 아직 힐풋 착지가 많기 때문에 힐풋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엘리트 선수들은 조금 앞쪽으로 착지하는 포어풋 형태로 달린다고 한다. 달리는 자세, 호흡법, 팔 치기 역시 비슷하긴 해도 각자 설명하는 게 조금씩 다르다. 단지, 나에게 적합한지에 따라서 달리기를 멈추는 그 순간까지 계속 고쳐나가는 것뿐이다.

오늘의 달리기가 내일의 달리기와 다르기 때문에 그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연습하고, 그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과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또 관리하고 훈련한다. 어찌 보면 뫼비우스의 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우리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제대로 한다는 건 모두가 이런 과정의 연속이고 그 과정을 단지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다.




고작 달리기 하나지만 그걸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고작의 달리기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10년 이상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면 그 마음가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본능에 의해 움직여지는 과정이 아닌, 어찌 보면 수련과도 같은 인내와 반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수련은 단지 빨라지기 위한 수련이 아니다. 오래 즐기기 위한 수련이고, 마인드를 바꾸는 수련이다.

달리기는 욕심을 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달리기는 더 빠르게 나아가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빠르고 싶다면 근육을 키우라고 얘기하고, 꾸준히 달리라고 말할 뿐이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얘기할 뿐이다.

무언가를 앞으로 계속 쳇바퀴처럼 싫든, 좋든 계속해야 하는 일이라면 마찬가지의 과정이 필요하다.

달리기는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걸 묻는 사람이 있다면 직업으로 달리는 사람일 것이다. 대신 우리의 달리기는 즐거웠는지를 묻는다. 기분이 나아졌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상쾌했는지를 묻는다.

내일도 이 달리기를 계속할 것인지를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항상 'YES'라고 답하고 있다.

그 'YES'라는 답을 내일도 하기 위해서 오늘도 나의 달리기를 조금씩 고쳐가고 있다.




인생도, 달리기도 계속 고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종목이다. 그리고 두 종목 모두 내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종목이다. 오늘을 충실히 연습하고 관리해야 내일을 달릴 수 있는 종목이다.

요행으로 잘 달릴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종목이다.

달리기에는 로또는 없다. 다만 적금만 있을 뿐이다.


난 달리기를 통해 오늘도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

이전 02화 기안84님의 달리기는 나의 달리기와 같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