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 없는

by harutada

후박나무 잎을 따로 모아서 차양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두껍기도 하고 모양도 독특하고 색도 좀 파스텔톤으로 예쁘기도 하고 말이야, 하고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 셔츠와 치마를 입고 나무 그늘 아래 느슨하게 앉아있었고, 남자는 여자에게서 나무 한 그루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허름하지만 단정한 티셔츠와 면반바지 차림으로 뙤약볕에서 밭일을 하는 중이었다.

호박은 이파리가 얄팍하고 비를 막기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고 남자는 한참 뒤에 말했는데 여자는 그의 대답을 정정하려다가 땅 속의 일에 집중한 그의 모습을 보고 그만 두었다.

여자는 붉고 검은 흙을 한 줌 쥐었다 힘없이 거머쥔 주먹 사이로 흙의 낱알들을 떨어뜨렸는데, 햇볕에 잘 마른 흙들이 바람을 따라 남자쪽으로 날렸다.

제비 두어 마리가 차례대로 날아와 흙을 쪼는동안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얼마 뒤 남자는 테가 헤진 밀짚모자로 엉덩이를 털며 여자에게 다가왔다.

언젠가 널 보고 후박나무를 닮았다고 했는데, 너는 그걸 잘못 알아듣고 삐쳐서는 그대로 집엘 간 적이 있어, 하고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정확히 뭐라고 해야할지는 몰라 성긴 새털구름을 등지고선 그를 쳐다만 봤다.

남자는 나무 건너편으로 가서 얽힌 호박덩굴을 쳐서 끊어냈는데, 부드러운 호박덩굴과 이파리들이 단단한 후박나무 껍질을 꽤나 갉아대고 있었던지 덩굴을 제거하자 매끈한 나무의 속살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 후박 같다는게 어떤 뜻이었는데, 가만히 남자의 등을 바라보던 여자가 물었다.

덥지만 맑은 날이었고, 곰곰히 생각하던 남자가 나무둥치 너머에서 여자의 말에 아주 긴 대답을 하는동안 헤쳐진 나무껍질과 덩굴들은 바람과 볕에 엉겨붙어 가만하게 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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