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최적화를 넘어서는 태도
그릇은 음식 등을 담는 용기를 말한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그릇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그 일을 마땅히 해낼 능력 등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나는 이 '그릇'이 요즘처럼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가치들은 각자가 주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기에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기 어렵다. 대체 그릇이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저 어려워 보이는 능력을 해내면 그게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불평불만 없이 해내는 사람이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다. 단순히 업무 능력만으로 평가하는 식의 파편적인 기준으로는 이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설명할 때 '그릇'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는 건 분명히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그릇'이 '어떤 경험이든 관계없이 그게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게 경제적인 어려움이든 시간이 걸리는 일이든 어떤 일이든 관계없이 잘 헤쳐나가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보이는 문제로 좌절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땐 충분히 걱정이 될만한 일로 보였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한 번은 걱정이 되거나 불안하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문제를 외면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게 충분히 문제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정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만한 일이라고 믿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게 '그릇'이라고 느꼈다.
문제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믿음, 그리고 그걸 해낼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그릇'까지 이야기해야 할 정도의 문제는 단시간 내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히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그릇이 큰 사람은 근본적인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히 주먹구구식의 문제 해결이 아니다. 그렇기에 100% 확실한 방법까진 사람이라 찾지 못할 수 있더라도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하지 않게 된다.
힘든 그 과정을 온전히 겪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에 이르렀으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던 건 아닐 것이다. 시도했다가 주저하기도 하고, 잘 안 되는 바람에 그만하고 싶기도 한 과정을 여러 차례 그것도 분야에 관계없이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공에 관계없이 여러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하면 무언가 배우는 게 있고 성장한다고 믿기에 계속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그릇'이 커가는 게 아닐까 한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거나, 배움의 기회가 많고 나이에 관계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다. 물론 이런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면 시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걸 고려하면 과정 없이 되는 일은 없기에 요즘처럼 효율을 생각하는 이 시기야 말로 근본적인 것들에 눈을 둬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