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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획의 마지막 단계는 '지속'이다

by 하상인

나는 쉽게 불안해하고 걱정이 많은 탓에 하루를 허망하게 보낼 때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불안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기면 여기서 파생되는 걱정으로 해야 할 일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대응책으로 자기 계발서를 본다. 항상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 그 불안에 떨어져 지금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엔 책도 거의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서도 보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걱정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내게 '의욕이 없는 눈'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사실 반박할 수 없었다.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라는 답이 없는 질문 앞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막막함을 느끼며 의욕을 잃어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에 빠져보니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평소처럼 자기 계발서라도 보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봐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라는 회의감에 그저 똑같이 사무실에 나가 서류를 보고 작업을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다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읽자는 생각에 목표 설정과 행동을 위한 내용이 담긴 책을 보았다. 그리고 여기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허탈함, 회의감을 이겨낼 좋은 단서를 찾게 됐다.


바로 묙표 달성을 위한 계획 중 마지막 단계는 '지속'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일의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순 없다. 누군가는 '100%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아마 그 말의 진짜 뜻은 '바로 안 되더라도 다시 해서 결국은 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될 때까지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세부계획을 세웠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 과정에서 초심은 사라지고 방해하는 요소는 계속 생길 것이며 마음은 점차 무너지게 된다. 나는 분명히 원했는데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며, 이러한 책임을 자기 계발서로 돌리며 '어차피 책 파는 사람만 돈 버는 구조'라거나 '다 사기다'라며 다시 목표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건 다 사기다'라는 식의 변명을 한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한들 새로운 방법이 있나? 대안이 있느냐는 말이다. 대안은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스스로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회의감이나 허탈함은 사치일 뿐이다.


우연히 본 영상에서 한 아이가 말하길, '살아있는 사람은 '평가'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죽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반전이 없으니 말이다. 살아있다면 회의감을 느끼고 허탈하다며 인생을 놓아버리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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