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대처방안
회사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누굴까?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인게 뭔가 느낌이 쎄하다. 혹시 거래처일수도 있어 받았다.
"여보세요?"
"후원자님! 안녕하세요! 항상 저희를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2분만 시간 내줄 수 있으실까요?"
"아..네..그러시죠"
"지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소중한 집을 잃고 거리에서.."
듣고 있으면서 한숨이 나왔다. 왜 이 전화를 내가 받고 있는걸까, 상대의 말투는 1분에 1,000발 나가는 기관총처럼 빈틈을 주지 않는다. 말을 끊지 못하고 계속 듣고 말았다.
"귀한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자님의 소중한 손길이 난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리라 믿습니다"
결국 나는 한 달에 만원씩 후원에 동의하고 말았다. 2분만 시간 내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미 10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왜 나는 거절을 못해서 매번 이렇게 힘들어 하는걸까?
혹시 나도 이렇게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고 거절을 못해 힘들어하는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에코이스트(Echoist)라고 한다.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스트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을 괴롭히고 지배하는데서 지배욕을 느끼는 유형이라면, 이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지 않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다. 거절하는 것, 거절 당하는 것도 싫어한다.
일부 사람들은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스트와 반대되기에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남이 내가 정한 선을 넘는 것도 싫고, 내가 그 선을 넘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들은 착한 아이 신드롬을 갖고 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몇 가지 주된 특징들이 있다.
-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타인의 기분에 맞춰주려고 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 타인과 깊은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 타인의 평가에 의존한다. 늘 잘 보이려고 하고 혹시 나를 험담하는 사람은 없는지 조마조마해 한다.
- 나에 대해 자존감이 다소 낮다. 좋게 말하면 겸손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늘 주목받아야 하고, 내가 최고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경멸하고 무시한다. 지배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희생양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괴롭히고는 한다.
이 때 에코이스트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내가 괴롭혀도 힘들다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다. 감정 표시를 잘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 범위가 넓지 않다 보니, 내가 힘든 것을 이야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적다. 고립되어 있기에 더 타겟이 되고 마는 것이다.
회사 생활에 있어 에코이스트들은 일단 불리한 조건들을 타고났다. 인간관계로 푸는 일들이 참 많은데 이들은 인간관계에 서투르다. 감정 표시도 잘 못하고, 거절은 더더욱 못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손해보고 살 수 밖에 없다. 힘은 엄청 드는데, 잘해야 본전인 업무들이 줄곧 떨어지고는 한다.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는 순간 회사 생활의 지옥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이들은 자기 먹잇감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온갖 멸시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가스라이팅을 하게 된다.
"너 지금까지 인생 이 따위로 살아온거지?"
"사람들이 다들 왜 너 싫어하는지 알아?"
"나 만나지 않았으면 너 회사에서 더 꼬였을걸? 내가 너를 향한 비난들 다 막아주고 있는거 모르지?"
이런 비판도 계속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진짜 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머저리처럼 느껴지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 사단을 형성하기에 이들이 합동으로 공격하면 당해내기 어렵다.
착하고 친절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존재들에게는 칼을 겨눌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
한참 일하느라 바쁜데 동료가 프린터가 안된다고 자기 PC에 드라이버 좀 설치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급한 자기 일도 두고 메뉴얼 찾아가며 설치해주기 바빴겠지만 이제 그러지 말자.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이거 끝나고 해줄께"
이러면 상대방 기분도 상하지 않으면서 내 일도 우선 처리할 수 있다. 내가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은 이제 좀 버리자.
재미있지도 않은데, 기분이 좋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 이목 때문에 억지로 웃는 경우가 있다.
잘 이해되지도 않는데 이해되는 척 고개를 끄덕거리지도 말자. 외국인 (중국계 싱가포르 사람이었다) IT 개발자와 영어로 화상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상무님이 계속 고개를 끄덕이시길래 당연히 영어로 이해하신 줄 알았다. 그런데 물어보니 아무 것도 못 알아듣고 계셔서 놀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 이목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모르면 그냥 모르는 대로 있자.
인간관계가 저녁에 같이 술 마시고 점심에는 밖에서 같이 먹어야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면 큰 효과가 있다. 평소에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커피, 패션 스타일을 기억했다가 그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관심을 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헤어스타일이 살짝 바뀌셨네요!"
"어제 야근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잠 깨시라고 OO님이 좋아하시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 사왔어요!"
이렇게 소소한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절대 그 행동은 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사람은 좋아하는 행동 열 번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 한 번 하는 것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인간 취급 해주지 마라.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 팁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인간이 아니다. 사탄, 악마, 적그리스도 이 정도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대한 거리를 두자. 그레이락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회색 돌을 상대하듯이 단답형으로 꼭 필요한 것에만 짧게 대답하면 된다. 아예 얽매일 일이 없도록 접점을 최소한으로만 유지하자.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남한테 친절하고, 피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해서 항상 최선은 아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해야 하고, 선을 넘어서야 할 때도 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방식으로는 원만한 사회생활이 힘든 것이다.
에코이스트들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적기에 인간관계가 서투른 편이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인간관계 팁들은 정말 많지만 딱 이 4가지만 먼저 실천해보자.
1) 상대방이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파악하고 그거 하지 말자.
2) 종종 커피를 사자. 먹는 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3) 거절할 때는 분명하게 거절하자. 단, 대안도 같이 제시하자.
4) 나르시시스트와는 절대 가까이 지내지 말자.
건강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에코이스트가 되는 것이다. 공손하고 예의 바른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더한다면 정말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