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극복하기
이집트 상형문자를 보면 참 신기하다. 새 모양, 왕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양 등 재미있는 모양의 글씨들이 참 많이 눈에 띈다. 이 하나하나의 모양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히에로글리프라고 불리는 이 상형문자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진 글자이다. 한때는 전세계 최강국의 문자 체계였지만 2,000년 전에 이집트가 로마에 병합된 이후 이 글씨는 빠르게 잊혀져 갔고 급기야는 아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19세기에 이 이집트 문자를 해독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프랑스의 샹폴리옹, 다른 한 명은 영국의 토마스 영이었다. 물론 이들 이전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해독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당시 로제타 석을 발견하여 프랑스로 가져오면서 연구를 급진전을 보게 되었다. 로제타 석은 이집트 상형문자와 그리스 문자 2개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서로 대조해가며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쉽게 풀리겠군..기대했으나 이게 왠 걸? 아무 진전이 없었다. 이 때 샹폴리옹은 발상을 전환한다.
그림으로 그려진 이집트 상형문자가 사실은 우리가 쓰는 한글처럼 표음문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샹폴리옹은 일부 표의문자도 섞여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집트 문자는 표음문자로 판단하였다.
그는 발상을 전환하여 연구를 진행했고 마침내 이집트 문자 해독에 성공하게 되었다. 2,000년 이상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집트의 역사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반면에 토마스 영은 끝내 해독에 실패하였다. 여전히 이집트 문자른 표의문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란하게 그려진 이집트 문자를 보면 누구나 각각이 뜻을 갖고 있다고 현혹되기 쉽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미 이 길을 걷고 있기에 이 방법이 맞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해온 방식에 젖어서 별 생각없이 그대로 하는 경우가 참 많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새로운 방법이 있을텐데 그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생각하더라도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이미 숙련된 방법이 있기에 굳이 귀찮게 새 방법을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로의존성(Path-dependancy)이라는 용어가 있다. 한 번 길이 형성되면 이 길에서 사람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편한 길이 있는데 굳이 옷에 흙이 묻고 험한 외진 길로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낯설고 자기가 안 해본 것에 대해서는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티비에 연결해서 즐기는 콘솔 게임이 인기였다. 컴보이, 재믹스, 겜보이 등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머니는 게임하는 내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셨다. 어머니에게는 그저 낯선 게임이 부정적으로 밖어 보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회사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근속기간이 오래된 경우, AI나 각종 앱들, 화상 회의 이 모든게 낯설 수 밖에 없다. VUCA라고 불리는 엄청난 변화 트렌드를 쫓아가기 힘든 것이다.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약하다. 눈에 닥친 문제나 어려움에만 주목할 뿐, 이걸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부분이 약하다.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을 잘했던 사람으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있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부산 유엔묘지를 방문했다.
한겨울이라 잔디가 자라지 않아 묘지는 누런 빛을 띄었다. 미군 사령부에서는 아이젠하워 방한 전, 푸르게 싹이 난 묘지를 만들고 싶어했다. 정주영 회장은 인근 보리밭을 통채로 매입한 후, 푸른 보리싹을 묘지에 심었다. 서해안을 간척할 때는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 때문에 둑 건설이 매번 실패하였다. 이 때 못쓰는 바지선을 끌고 와 메우지 못한 틈을 막도록 하였다.
푸른색만 만들어 내면 되고, 바다만 막으면 된다는 데서 다양한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사람은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 포핸드에 강점이 있는 테니스 선수는 모든 공을 포핸드로 치려고 한다. 백핸드 코스로 공이 오면 당황해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자기가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최근 기후변화 해결책으로 법률가들은 법 제정을 떠올리고, 행정가들은 단속 강화를 떠올린다. 과학자들은 기술개발을 떠올린다. 그 방법 중심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그게 곧 고정관념이 된다.
일단 변화를 직접 경험해 보자. 사람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각기 다르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만 찾는 경향이 있다.
생각을 바꿔보자.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과 영상도 경험해보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AI에 대해 깊이 파볼 수도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철학에도 관심을 파볼 수 있다. 편식이 몸에 좋지 않듯이, 한쪽으로만 치우친 지식도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 지식에 사로잡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야채를 싫어한다. 오이, 시금치, 파프리카, 당근..내가 안 먹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억지로 먹으려고 한다. 일단 식사 시간이 되면 얘네부터 먹어 치운다. 배가 부르면 가뜩이나 싫어하는 야채를 먹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맨날 읽고 보는 내 관심사 말고 다른 분야에도 눈길을 주자. 한 달에 몇 권은 철학이나 예술, IT 이런 분야를 꼭 읽는다고 생각하고 접근해 보자.
번뜩이는 생각과 창의력을 타고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상당수는 지식에서 나온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한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 쪽이 심하게 부실해지면 다리 하나 빠진 의자와 같다. 세 개의 다리는 티타늉과 황금으로 되있더라도 한 쪽 다리가 짧다면 그 의자는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고정관념 이야기하다가 편식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고정관념은 결국 내가 자신있는 분야로만 문제를 접근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생각의 힘을 키우고 발상을 전환하는 것은 말이 쉽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유대인들 하브루타 교육이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고 해서 이 나이에 그거 한다고 이미 굳은 머리가 유의미하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다양한 지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지금 AI가 장안의 화제인데 일단 뛰어들어서 혼자 챗봇도 만들어보고 그림도 그려 보자.
철학만 생각하면 머리에 철이 박히는 기분이 드는 사람이라면 철학 책에 도전해보자. 머리에 철이 박히는 것이 아니라 철모가 되어 머리를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내가 장검에 삼지창에 활에 총까지 다루면서 병법에도 능하다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당장 적군이 기습을 해와도 뭘 조합해서 싸우면 좋을지, 발상을 어떻게 전환할지 생각이 쉬워지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자! 는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섭취하는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