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극복하기
초등학교 5학년 때 미술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툭하면 화를 내고 아이들을 때리고는 했다.
한 번은 한 아이가 미술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이 녀석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으셨던 것 같다.
조금 있다가 한 아이가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왔다. 미술 선생님은 다짜고짜 그 아이에게 가더니 뺨을 내리쳤다.
"철썩!"
그 소리는 상당히 크고 묵직했다. 교실은 순간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 아이는 몸이 아파서 담임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갔다가 들어온 것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뺨부터 때렸던 것이다. 지금이야 체벌이 금지되어 있어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나 때는 체벌이 일상화되었던 시기였다.
아무튼 그 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게 문제가 되어서 맞은 아이 어머니가 학교에 항의 방문하고 교무실이 시끌시끌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았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아마 지금도 그때 기억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살다 보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인데 누명을 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사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부 전문강사 특강이 있어 그분이 자차로 사옥을 방문하게 되었다. 교육업체에서는 그분 차량 번호판을 알려주면서 꼭 등록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이 차 번호대로 총무팀 주차 담당자에게 알려줬다. 강의 당일 아무런 문제 없이 강의는 잘 시작했고, 그렇게 강의는 차질 없이 흘러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강사가 차를 타고 돌아갈 때 문제가 생겼다. 정문에서 주차 요금을 내라고 붙잡았다는 것이다. 강사는 다급하게 나에게 연락했다.
"주차 요금 사전에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요?"
응? 다 해결된 것 아니었나? 놀란 나는 1층으로 가서 확인했다. 차 번호 숫자는 2811이었는데 등록된 번호는 2812였다. 거기에서 잘못된 것이었다. 옆에 있던 팀장은 일단 나부터 혼내기 시작했다.
"주차등록 하나 똑바로 못해? 이런 것도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는 자초지종을 모르니 팀장의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이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교육업체 담당자가 틀린 것이었다. 이메일에는 분명히 2812로 되어 있었다.
나는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팀장에게 가서 이메일 온 것을 프린트해서 직접 보여주었다. 팀장이 바로 사과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였다.
"차 번호 다시 확인 안 한 너도 잘한 거 없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때 팀장에 대한 실망감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누명을 쓴 것도 억울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 더 억울했다.
어떤 경우에 누명을 쓰게 될까? 크게 세 가지 경우를 들 수 있다.
누명을 주로 쓰는 사람들은 회사에서 미운털이 박혀있거나, 눈 밖에 난 사람일 경우가 많다. 특히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타깃이 된다.
"보나 마나 재가 또 실수했겠지"
"원인 제공을 먼저 재가했으니 상대방이 화를 내는 거겠지"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다. 일단 선입견부터 갖고 보는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로마 시대 네로황제 때 로마 시내 절반을 불태운 대화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일설에는 시를 쓰던 네로황제가 시상이 떠오르지 않다 보니 불을 지르라고 시켜서 발생했다는 말도 있다.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졌다. 이때 네로황제는 당시 미움받던 기독교인에게 누명을 씌우기로 한다. 기독교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 자기는 피해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평소에 미운털이 박혀 있으면 희생양이 되기 쉽다. 이번에도 그 사람이 그러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그런 짓 하고도 남지 이런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은 질투의 표적이 된다. 이로 인해 누명을 쓰는 경우가 있다.
조선 시대 남이 장군은 불과 28세에 북방을 지키는 최고 사령관이 된다. 그만큼 당시 왕이었던 세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문무를 겸비한 보기 드문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를 시기하던 사람이 조정에 많아졌다. 특히 간신 유자광은 그를 쓰러뜨리고자 하였다.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기에 이른다. 당시는 세조가 죽고 20세였던 예종이 왕이던 시절이다. 의심 많던 예종은 유자광의 말만 믿고 남이 장군을 죽이게 되었다.
너무 잘 나가게 되면 누명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사람을 시기, 질투하여 없애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의 무서운 단면을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사회에서 유대인은 미움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 저주받은 민족, 자기들끼리 모여 살면서 부를 독점하고 똘똘 뭉쳐 자기 문화만 고수한다는 인식은 차별을 만들어냈다.
흑사병이 창궐할 때, 이슬람 세력이 유럽으로 진출할 때 등 사회적 혼란 시기마다 유대인이 타깃이 되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병균을 퍼뜨렸다 등등 누명을 씌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유럽에서 사는 유대인 800만 명 중,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 권력자들은 자기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비난의 화살을 소수 집단에 돌아가게끔 유도하고는 했다.
사회적 소통이 부족하면 오해와 편견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에 평소에 소통을 하며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누명을 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마음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고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겠지만, 이성을 찾고 아래 방법대로 해보자.
눈이 뒤집히는 그 분노의 타이밍이 있다. 이때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면 말이 꼬이게 된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논리적인 해명이 불가능하다. 조금만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응하자.
잠시 10분 정도만 산책을 하고 돌아오자. 그 사이에 대응방법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증거 싸움이다. 특히 성희롱 같이 증인이나 증거를 찾기 힘들고, 당사자 증언만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증거가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주고받은 이메일, 카톡, 단체 채팅방 메시지 이런 것들을 수집하자. 평소에 기록 관리를 잘하는 사람일 경우, 이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드디어 내 무죄가 밝혀졌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내 무죄를 인간들만 몰랐던 것이다.
반드시 사과를 요구하자. 사과를 반드시 받아야 그 사람도 죄책감을 덜고 나도 기분이 풀리게 된다.
" 이 일 때문에 저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몇 날 며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네요. OO님도 오해 때문에 저를 의심했겠지만, 이 일에 대해 정식으로 저에게 사과하셨으면 합니다"
아이 메시지(I-message)에 근거하여, 내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사과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침착해야 한다. 속상한 마음에 분통을 터뜨리다 보니 종종 선을 넘는 경우가 생긴다.
"네가 그 따위로 다른 사람 의심하고 모함하니까 다들 너를 싫어하고 피하는 거야"
"무고죄로 신고해 줄까? 너도 내가 당한 만큼 똑같이 당해봐야지?"
(아쉽게도 이때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무고죄는 이 사람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형사기관에 고발해야 성립한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자식들에게도 그 따위로 하라고 가르치시나요?"
승리의 쾌감에, 상대방을 모욕 주고 싶다는 생각에 마구 말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 이러면 미안해하던 상대방이 도리어 반발하게 되고 나에게 악감정을 갖게 된다. 가해자가 오히려 원한을 갖게 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분명히 사과는 받아내야 하지만, 상대방의 자존심까지 건드려서는 안 된다.
예전에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 동화가 기억난다. 주인공 소년 네로는 마을 풍차 방앗간에 불을 질렀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우유를 배달하며 힘겹게 사는 네로를 편드는 사람은 부잣집 딸로 네로와 친했던 아로아 밖에 없었다.
네로는 아로아의 아빠였던 코제츠가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고 누명을 벗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살아갈 힘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고프고 추운 것을 넘어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네로는 어린 나이에 루벤스 그림 앞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누명을 쓰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무도 잘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싸움은 참 힘들기만 하다. 회사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은 누명을 쓰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이번에도 또 실수했겠지", "재는 원래 저런 애니까" 이런 소리를 듣기에 내가 안 그랬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무의식 중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응하자. 필요한 정보는 다 찾아내자. 그리고 정식으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만나서 일대일로 해결하자. 이때 누명을 벗게 될 경우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그 사람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것은 삼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