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은지 씨의 소셜미디어에는 늘 그녀의 화려한 일상이 담겨 있다. 필리핀 보라카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뒤로 하고 블루 하와이 칵테일 잔을 들고 있는 모습, 두 달 전에 산 쿠페 미니 빨간 차 앞에서 찍은 사진, 남산에 있는 특급 호텔에서의 호캉스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다. 그 화려한 모습을 다 따라 해보고 싶다. 한 번 사는 인생 나도 그렇게 폼나게 살고 싶은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예쁘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고, 남학생들에게 러브레터도 종종 받던 은지 씨였다.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겨대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은지 씨였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갔는데' 그 아쉬움이 머리에 항상 남는다.
그녀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소셜미디어였다. 내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예뻐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그녀는 으쓱해진다. 그렇게 현실을 벗어나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은지 씨이다.
'타지마할(Taj Mahal)'은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무굴제국 시절이던 17세 초에 5대 황제 샤자 한에 의해 22년 만에 건축된 장엄한 건축물이다. 그는 소문한 애처가였다. 왕비였던 뭄타즈 마할을 늘 옆에 두고 다녔다.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할 때는 물론, 전쟁터까지도 왕비를 항상 데려갔다. 그의 곁에는 늘 왕비 뭄타즈 마할이 있었다. 자기 분신과도 같았던 왕비는 어느 날 산후조리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샤자 한은 슬픔에 잠겼다. 좀처럼 왕비를 잊지 못했다. 결국 그는 죽은 왕비를 기리는 장엄한 건축물을 짓기로 결심한다. 그 건축물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은 지금 봐도 흠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건축물이다. 하얀 대리석은 눈처럼 하얀색을 발하고 있고, 특히 해 뜰 녘, 해 질 녘의 타지마할은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까지 있다. 엄청난 규모도 규모거니와 최고급 자재를 전 세계에서 공수해 왔다. 중국(명나라)이나 태국(시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물론, 프랑스에까지 기술자를 초빙해 왔다.
당연히 나라 재정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 부과에 신음하고 있었다. 제국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타지마할 건축하느라 다른 국가사업 추진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국가는 빠르게 몰락해 갔다. 그럼에도 샤자 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왕비를 기리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인 권위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 대륙에 이슬람 왕국을 세워 안정화시킨 자신의 공로를 만방에 널리 드러내고 싶어 했다.
이런 혼란기에는 권력투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인기가 떨어진 권력자를 밀어내고 자기가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샤자 한도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죽을 때까지 성에 갇히고 만다. 그가 지은 타지마할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죽고 만 것이다. 자기 권위를 보여주려 화려한 건축물을 쌓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고대 7대 불가사의라는 것이 있다. 고대에 지어진 건축물들 중 도저히 그때 당시 기술로 어떻게 그런 화려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의문을 자아내게 하는 건축물 7개를 선정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이다. 구약 성경에는 네부카드네자르왕으로 잘 알려진 바빌로니아의 황제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랑하는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은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보았던 인도의 타지마할과 비슷한 면이 있다. 무려 기원전 600여 년에 높은 건축물을 지은 후 물을 위로 끌어와서 옥상에 수많은 나무와 풀이 자라는 정원을 만든 것이다.
총 7층의 건물에 맨 밑층부터 꼭대기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각 층에는 테라스가 위치해 있었으며, 테라스에는 흙을 덮은 다음 온갖 나무, 풀, 꽃을 심었다고 한다. 심지어 옥상에는 목욕탕까지 있었다고 한다. 왕비를 기리고자 건축되었다고 했지만,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이집트부터 이스라엘, 이란 지역까지 다 정복한 자기 치세를 과시하고자 건축한 것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바빌로니아는 중동 지방 최고의 대제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 말고 누가 이런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느냐고 공중정원에 올라 자주 외쳤다고 한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그는 오래지 않아 정신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기가 소라고 생각하고 옷도 다 벗어던진 채, 소처럼 들판에서 풀을 뜯게 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년이 비참했다. 그가 건설한 바빌로니아는 오래가지 못하고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바빌로니아의 공중 정원은 몇십 년 뒤 바빌로니아가 멸망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300년 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로니아 땅을 정복했을 때,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과거 바빌로니아의 공중 정원이 있던 자리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 정도로 벽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고대부터 사람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였다. 삼국 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자신들의 최전성기 때 역사서를 대대적으로 편찬하였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광개토대왕비나 진흥왕 순수비 같은 거대한 비석을 세워댔다.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수많은 지역에 자기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동남아시아 섬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자기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 지역이 바로 '필리핀'이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시선에 특히 민감하다. 본인들은 개성 있게 산다고 말하면서도 남들 시선을 엄청나게 신경 쓰며 살아간다. 남들이 일 년에 최소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자기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은 없어도 고급차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차를 장만하며, 그 차는 3년마다 바꾸고는 한다. 화려한 외양만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수입이 있는 시기에는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40대 이후이다.
이때 한 번 직장에서 밀려나면 다시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고급 기술 인력이나 전문직이 아닌 다음에야 40대를 채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에 아껴가며 모아둔 돈이라도 있다면 다행인데 툭하면 해외여행 다니고 차 사는데 돈 쓰던 사람이 모아둔 돈이 있을 턱이 없다. 수중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돈 벌 곳은 마땅치 않은데 가진 돈은 없고, 과거에 내가 추구했던 화려한 인생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얼마나 허망하고 신기루 같은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자기 탓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시전 하게 된다. 남 탓만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이라면 화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속 있게 살아가야 한다. 화려하게 사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해외여행 갈 수도 있고, 고급차 탈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자기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특히나 다른 사람처럼 나도 이 정도는 하며 살아야 돼! 이렇게 내 행복의 기준을 타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나를 과시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인도 타지마할이나 바빌로니아 공중 정원의 주인공들처럼 말년이 비참해진다. 과거에는 얼마나 대단하게 살았던 관계없이, 현재는 실속이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리더를 안 하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임원이 되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권력욕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권력욕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처럼 최악의 상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자기 자리를 사적인 욕심 채우기에 쓰기 급급하다. 건전한 권력욕에 유능함, 조직에 대해 헌신하겠다는 의지 이 삼 박자가 맞춰질 때 제대로 된 성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나 단순히 높은 자리에서 밑의 사람들을 부리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면 그건 본인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부하직원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나르시시스트 상사 밑에서 고생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것을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화려함만 추구하기보다는 내 실속을 차리자. 직장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는 나만의 기술과 역량을 갖추는데 더 집중하자. 직장이라는 곳은 일단 떠나게 되면 직위도 인맥도 한순간에 다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머릿속에 들은 지식, 몸에 밴 기술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자. 그리고 술, 담배도 끊고 단 음식 적게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하자. 40대 이후부터는 돈과 건강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내면의 화려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