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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시킨 일만 하고 끝내시나요?

일못러에서 탈출하기

by 보이저

식당에 갔다. 일행은 4명이었는데 사전 세팅된 젓가락은 3인에 맞게 비치되어 있었다.


"여기 젓가락 하나 더 주세요!"

그런데 종업원이 갖고 온 젓가락은 달랑 1개였다. 진짜 문자 그대로 젓가락 한 개를 달랑 들고 온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젓가락을 딱 한 개만 주면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그 종업원의 대답은


"젓가락 하나 달라고 하셔서 하나 드린건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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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 어디까지 하시나요?


위 사례는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젊었을 때 겪으셨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 의중을 깨닫지 못하고 딱 시킨 일만 경우겨우 하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다.

시킨 것이나 제대로 하면 된거지, 그럼 뭘 더해야 하나요?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 중의 하나는 바로 일을 시켰을 때 어느 범위까지 하느냐이다.


이전에 임원 리더십 특강이 있어 서울 시내 강의장을 확보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임원 행사이다보니 호텔 컨벤션홀 중심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딱 시킨 일만 했다. 컨벤션홀 가격, 분위기, 교통 접근성 등 팀장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들만 챙기기 바빴다.



그런데 같이 갔던 동료는 나와는 달랐다. 마이크, 스피커 상태까지 일일이 다 확인한 후, 동영상이 재생될 때 버벅거림은 없는지까지 다 체크했다. 심지어 대관료가 비쌌는데 그 자리에서 네고를 해서 원래 갸격의 20% 할인된 금액으로 최종 가격을 결정지었다.


딱 봐도 누가 더 일을 더 잘하는지 눈에 보일 것이다. 팀장이 시킨 것만 알아보던 나와, 필요한 사항을 머리속에 그려놓고 실제 행사를 하듯이 하나하나 다 체크하던 동료..그 날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필요한 것


축구에서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수는 넓은 시야를 가진 선수이다. 경기를 정확히 읽어내기에 누구에게 패스하면 될지, 상대팀 패스를 차단할 수 있는 길목은 어디인지 금방 파악한다. 자기에게 공이 오면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선수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을까? 수많은 경기를 되짚어보면서 이때는 어떻게 하고 저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메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 알기 위해서는 많이 신경쓰고 분석해야한다. 많이 신경쓰기 위해서는 그 업무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 스타크래프트가 엄청난 인기였다. 스타크래프트 단축키를 다 외우고 9드론 만들면 저글링 한 부대 뽑고 이런 공식을 빠삭하게 마스터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미친듯이 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너무나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그러나 일은 참 재미없다. 특히나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재미없다. 매일 혼나고 깨지는 일상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카레 먹다 이빨 빠지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지 않고는 일을 잘하기는 참 어렵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시야를 넓히는 방법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애머빌(Teresa M. Amabile) 교수는 창의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업무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도 이 조건들이 필요하다.


1. 전문성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 이전에 조그만 식당에 서빙로봇을 판매하러 갔다가 된통 깨진 기억이 있다면 다음에는 주의하게 된다. 학습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까 예를 들었던 행사장 대관도 몇 번 해본 경험이 생기면 이제 뭘 챙겨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강사 대기실은 어떤지도 확인하게 되고 간식은 어떻게 비치할지 등 행사 전반을 기획할 수 있게 된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많이 경험해보고 관련 기획서나 서적을 읽자. 당연히 재미는 없겠지만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2. 창의적인 사고력

창의적인 사고력이란 얼마나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대한민국에서 온전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더욱이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창의성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무슨 아이디어를 내도 무시받는게 솔직한 현실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기 보다는 맡은 일에 있어서 한, 두가지만 더 추가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자. 회식 예약을 담당한다면 식당예약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별 좌석 배치나 차를 가져온 사람을 위한 대리기사 배정까지 더 챙기는 것이다.

창의성이란 엄청난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에서 조금 더 넓은 시야로 한, 두가지를 더 챙기는 것이다.




3. 동기부여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다. 이 일이 좋고 내가 일을 통해 인정받고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면 동기가 부여되고 일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 동기부여는 참 어렵다. 중요한 일은 잘 주어지지 않고 단순 운영 업무 위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족을 느끼거나 성장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방법은 하나이다. 지금 내가 맡은 단순업무를 잘하도록 하자. 최선을 다해서 하자. 그리고 성과를 어필하자. 그렇게 내 발언권을 키운 다음에 내가 원하는 업무를 요청해보자.

만일 내 요청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계속 소외당한다면 팀을 옮기거나 다른 회사를 찾아보자. 여기서는 성장도 인정도 만족도 누릴 수 없다.




넓은 시야 예시


그렇다면 일 할 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몇 가지 예를 들면



1. 실적 보고

- 어짜피 PPT로 다 정리했으니 그 자료만 보내면 되지 (X)
- PPT 읽기 전에 이해하기 쉽도록 핵심만 요약해서 이메일에 간단히 적어서 보내자 (O)



2. 휴가 갈 때

- 회사는 다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다녀오기 (X)
- 내가 없는 동안 문제생길 건 없는지 챙기고, 미리 인수인계하고 그 뒤에 마음 편히 다녀오기 (O)



3. 보고서 프린트

- 빨리 출력해서 스테이플러 찍고 팀장에게 건네주기 (X)
- 인쇄 상태는 문제 없는지 확인하고 바인더에 끼워서 주기 (O)



4. 회의실 예약

- 빈 자리가 없으면 그냥 포기하기 (X)
- 다른 예약자들에게 확인해서 혹시 안 쓰는 곳은 없는지 확인해보기 (O)



누가 봐도 두번째 예시가 일을 더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딱 시킨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 번 더 넓게 보는 것이다. 내가 더 챙길 것은 없는지 말이다.





마무리하며


누구나 일을 하지만 그 결과물은 제각각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일을 바라보는 시야이다. 딱 시킨 일만 간신히 해내는 사람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내가 더 챙길 것은 없는지 부지런히 찾는 사람의 결과물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야구에서 외야 수비를 할 때 날아오는 공을 잡는 생각만 하는 외야수와 2루 주자를 3루로 가지 못하게 견제할 것까지 생각하고 공을 잡는 외야수는 플레이가 다르다.


딱 시킨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내가 더 챙길 것은 없는지 고민해보자.



중대한 업무는 사소한 업무에서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제 26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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