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팀 동료들과 대화 중에 '고혈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 40살이 되니까 혈압이 조금씩 올라가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이러다가 드라마 속 회장님들처럼 화내다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참 고혈압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한 팀원이 입을 연다.
"예전 회사 트럭기사들 보면 기사 중에도 고혈압이 많더라고요. 기사들 일 년에 두 세 번씩은 혈압 검사 받게 하는데 왜 고혈압이 많은건지..아마도 운전을 하게 되면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기에~"
대화가 갑자기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고혈압에 대한 대화는 그걸로 끝나게 되었다.
말할 때 핀트를 잘 맞추지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이 때 핀트란 무슨 뜻일까?
핀트는 일본어 '핀토'에서 온 단어이다. 원래는 네덜란드어 brandpunt인데 일본에서 렌즈의 초점을 의미할 때 쓰는 단어로 차용하여 쓰고 있다. 초점이 정확히 맞는 상태를 의미한다.
핀트가 맞다는 것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 대화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 현재 대화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
- 논리적인 비약은 없는지
이 항목들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을 핀트가 맞게 대화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핀트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 학교에 등교시키고 회사에 출근하는 직원이 있을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세상이 흉흉해져서 아이들 상대로 범죄가 많아져서 그런가봐요"
"나 때는 그냥 혼자서 등하교 다 했었는데. 그때랑 다르구나"
"그러면 9시까지 출근하기 힘들겠네..집도 멀텐데"
그 때 한 직원이 말한다.
"각 지역마다 등교 시 보호자 동행에 대한 규정이 다 달라요. 사립 초등학교는 버스가 직접 데리고 가니까 그게 예외가 되고요"
뭔가 화제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세상이 흉흉해졌다, 등교까지 챙기고 출근하기 힘들겠다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직원은 규정이나 사립학교가 어떤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핀트가 어긋난다는건 이런 것을 의미한다. 확 벗어나는게 아니다. 약간 엇맞는 것이다. 마치 창틀에 창문을 끼울 때 들어가지기는 하는데 사이즈가 미세하게 안 맞아서 문을 열고 닫을 때 뻑뻑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는지 그것 뿐 아니라 그 당사자가 처한 상황, 다른 대화 당사자들의 세부 관심사 등을 종합해서 봐야하는 것이다.
이 직원은 아이 등하교라는 큰 주제만 봤을 뿐 등교 후 출근이 힘든 당사자의 사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할 말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등교 때문에 바래다 줘야 하고 이로 인해 출근시간을 늦춰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다는게 대화의 핵심이다. 근데 이걸 파악하지 못한다. 데려다 주는 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거기에 꽂혀 대화를 진행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 중 총에 맞은 동료 버바에게 검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이렇게 몸이 떨리고 춥지? 나 집에 가고 싶어"
"너 배에 총 맞았어"
어디에 총 맞았는지 몰라서 버바가 물어본게 아니다. 그러나 검프는 이를 잘못 이해하고 대답한다. 버바는 죽음을 앞둔 비극의 순간에 고향집이 떠올랐던 것이다. 전형적으로 핀트가 어긋난 대화의 예이다.
아이가 학교갈 때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는 부분만 듣고 말하게 된다. 한국어는 동사가 끝에 있어서 끝까지 들어봐야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끝까지 듣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나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상대방 말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경험이나 지식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끊임없이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은 꼭 이야기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강하면 지금 대화와 거리가 먼 내 지식을 이야기하면서 핀트가 어긋나게 된다.
지금 대화가 왜 시작되었는지, 대화 분위기는 어떠한지 잘 모른채 중간에 합류하다보면 대화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대화하다 보면 핀트가 어긋나기 쉽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 놀러오신 아주머니들이 너무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셔서 나도 끼려고 했다가 어머니께 혼난 적이 있다. 아주머니들 이야기에 네가 왜 끼냐고 하면서.
이 대화가 내가 낄 자리인지 아닌지 먼저 살피자. 특히나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 자리라면 굳이 대화에 낄 필요가 없다.
많은 경우에 상대방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뭐라고 말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 속에 내가 할 말에 대한 고민이 가득차 있는데 상대방 말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다. 일단 내려놓자. 그리고 경청하자.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등교할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대화를 하는 경우, 세부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들어보자.
"꼭 부모가 데리고 가야하나?"
"요즘은 그런 일만 하는 시터들이 있대요"
"그럼 한 달에 얼마씩 들어가려나?"
"한 달에 30만원 정도 하나봐요"
"그러면 한 부모 가정이나 형편 어려운 가정은 어쩌지?"
대화가 흘러가면 이 흐름에 나를 맡기면 된다. 당연히 그 다음 대화는 한 부모 가정이나 형편 어려운 가정을 위한 정부 지원 이런게 나오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아는 사람도 한 부모 가정인데 아이가 외로워 한다더라" 이런 말을 해버리면 핀트가 어긋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듣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경청이 어려운 것이다.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말에 있어서도 센스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게 핀트가 어긋나게 말하는 것이다.
먼저 대화 분위기를 살펴보자. 그리고 대화가 흘러가는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 흐름에 나를 맡기자. 어렵지 않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조금만 참고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내 타이밍에 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