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나랑 잘 맞지 않는 차장님이 계셨다. 고지식하시고 FM 방식만 고집하시는 차장님은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같은 부서 동료랑 회사 메신저로 그 차장님을 한참 흉보고 있었다.
차장님 오늘도 팀장님한테 불려가서 털리고 있더라ㅋㅋ
그런데 아뿔사.. 실수로 그 메시지를 차장님께 보내고 말았다. 한참 뒤에 내 실수를 눈치채고 재빠르게 지웠지만 이미 그 차장님이 메시지를 읽은 다음이었다.
"야! 이게 뭐야? 내가 털리니까 아주 통쾌한가보네?"
그 날 이후 나는 그 차장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물론 사과는 드렸지만 그게 사과한다고 해결될 일이겠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흉 안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연예인들 가십거리가 기사로 나오면 정확한 전후사정도 모른 채 뒷담화를 하기 바쁘다.
사람들이 남을 흉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상대가 임원이나 팀장처럼 나보다 높은 사람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현실에서 입 밖에 내기 힘든 불만을 동료들과 나눔으로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화처럼 사람은 입 밖으로 내뱉어야 속에 쌓인 것이 해소되는 것이다.
남을 흉보는 것은 은밀한 일이다. 은밀한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와 친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서 동료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남을 흉보는 것의 근간에는 나는 안 그런데 저 사람은 이상하다는 우월의식이 바탕에 있다. 은연 중에 내가 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흉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 이렇게 접근하면 안되는 것이다.
흉보면 안되는 것은 '들키면 안될까봐'가 아니다. 성경 잠언 말씀은 말에 대해 '입에서 나오는 열매'라고 하였다. 즉, 내가 생각한 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미 그 사람이 싫기에 그 사람을 흉보는 것이다.
내가 흉보는 사람을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직장에서 같이 일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는데 내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무엇을 부탁하기가 껄끄러워 지는 것이다.
직장에서 남을 흉보면 안되는 것은 착하게 살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기에 이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이다. 직장 동료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굳이 필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을 흉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예 판을 깔지 않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이상하게 남 흉보는 일이 많은 모임이 있다. 그런 모임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무언가 말을 많이 하고 들었지만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자리이다. 아예 그런 자리는 피하자.
조심해서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들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되도록 남이 볼 때 이런 모습은 자제하자. 그런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은 혹시 내 얘기하는거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 위대했던 세종대왕도 노비종모법이라는 악법을 만들기도 했고, 황희 정승조차도 자식의 비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과오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충직한 신하를 죽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문제점이 없겠는가? 누구나 단점이 있다. 나 역시 많은 단점이 있다. 그 사실을 명심하자.
누구나 단점이 있다. 사실 내 단점은 잘 안 보이고 남의 단점은 크게 보이는 법이다.
착하게 살기 위해 흉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흉보는 만큼 누군가는 나를 흉보는 법이다. 그 사람을 흉보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싫은 감정이 더 커지게 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그 생각은 강화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고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늘 흉보기의 피해자가 된다. 그런 피해자가 도리어 남을 흉본다면 나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되나니 (잠언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