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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SMIN Jul 19. 2018

여유, 그 공간 속으로

분석의 나눔과, 직관의 통합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속도"일 게다. 

그래서 계산 속도, 통신 속도, 이동 속도, 업무처리 속도, 배달 속도, 출력 속도... 등과 같이 속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 가치며,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좋은 것, 선한 것, 돈이 되는 것으로 대부분 등치 되고 있다. 키로, 메가, 기가, 테라처럼 얼마나 많은 양을 전송하는가를 따지는 단위와 나노, 펨토, 피코처럼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계산해 내는가를 구분 지어 표하는 접두어들이 넘쳐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을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스스로를 통제하고 조율해 나간다. 속도가 가지는 힘은 전 세계를 거의 동시성을 가지고 연결하게 되었지만, 반면 공간과 장소의 개념은 급격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키로, 메가, 기가, 테라... 나노, 펨토, 피코...

그 쉼 없고 광범위하며 위협적인 속도와 빠른 시간의 리듬 속에서 기계가 아닌 인간이 느끼게 되는 피로와 한계는 언제나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쳐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 짧은 시간 동안 거래되는 주식의 양이나 전 세계적으로 거리와 무관하게 오고 가는 수많은 정보들, 그 안에 벌어지는 수없이 많은 메시지와 연결들, 막강한 성능의 컴퓨터, 예측하고 말을 들어주는 인공지능 기기들이 우리를 좀 더 여유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시대는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라 한다. 장소를 불문하고 울리는 SNS의 알림음이, 잠시 생각의 전환을 위해 읽었던 가벼운 글 끝에 매달린 좋아요 버튼이, 열 때마다 한가득한 메일함의 스팸들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친구 추가 요구가 그나마 남아있던 여유의 공간을 침범한다.  




전 세계는 계몽을 통하여 인간의 인간됨과 가치를 충분히 높여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철학을 통한 인간 본성의 고찰이 그렇고, 오랜 시간 신장된 시민의식이 그렇고, 소위 선진국들이 추구하고 있는 복지의 가치들이 그렇다. 이처럼 구호나 계몽을 통해 얻어지거나 강화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유>란 생각이다. 


여유란 구호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우선 여유를 "가져라...!" 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간을 준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인 시간과 함께.... 마음도 따라야 하는 보다 차원이 높은 가치가 바로 여유라는 생각이다. 흔히 바쁜 와중이라면, 우리는 시간을 쪼개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투리 시간을 내가 취할 수 있는 여유라 생각한다. 쪼개어 만들어진 시간이 과연 여유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분석과 통찰이 주는 차이만큼 크다.   

분석의 기법은 잘게 쪼개고, 하나하나 타당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이론이나 법칙을 정립한다. 그 방식은 나누는 방식이므로 항목이 많다. 


반면, 통찰의 경우는 어떠한가? 

통합하고, 걸러내서 본질적은 내용만을 담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분석에 비해서 느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느슨함 속에 존재하는 공간의 크기는 분석적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나는 여유는 그런 공간 속에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을 분석하듯 쪼개어 숨 가쁘게 만들지 말고 통찰을 통해 얻어진 자신의 나아갈 바를 용기 있게 믿어보는 그런 무던함이 여유를 선사할 것이란 생각이다. 


 <빠름>의 가치가 높아가는 세상에서 상보적 가치인 <여유>는 그 의미가 크다. 기계가 아닌 이상, 인간이 늘 일정한 수준의 밀도와 긴장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빠름과 긴장의 밀도를 장기간 강요하는 소위 감정노동 직종일수록 사회 병리적 사건들이 많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분석하여 쪼개진 시간 속에는 내가 쉴 만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삶을 통찰하고 통합할 때 비로소 내가 쉴만한 여유의 공간이 확보되리라 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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