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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Feb 08. 2023

신혼집에서 숨바꼭질

우리는 30평대의 신혼집에 처음 살았다.

방이 세 개가 있다. 


우리가 처음에 이 집에 살게 되었을 때는 집이 너무 넓다고 생각해서 숨바꼭질도 했었다. 

내가 퇴근하고 남편을 부르면서 들어오면 대답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방에 들어가면 문 뒤나 이불속에 숨어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집에는 숨을 구석이 많다. 

베란다를 통해서 손님방과 안방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몰래 잠입해서 놀라게 하기도 좋다.




나는 보통 안방에서 자는 편이다.

나머지 방 두 개는 서재와 손님방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거실과 방 3개를 다 돌아다니면서 온 집안 구석구석을 다닌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안방에만 온기가 있고 나머지 방들은 차가운데 남편이 오면 집안 전체에 훈훈한 온기가 든다. 사람이 사는 공간 같다.


손님방에서 자면 때로는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부자리만 깔려있는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끝판왕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손님방에서 자면 펜션으로 여행 온듯한 기분이 든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새파란 산이 보인다.

손님방에서 자면 산이 많은 삼국지의 촉나라가 생각나서 제갈공명 이야기나 때론 시답지 않은 시조를 읊기도 한다.


방마다의 분위기가 다 다르다. 

혼자였으면 고정된 곳에서 경직되게 살았을 것 같다.

남편이라는 랜덤한 손이 날아와서 나의 룰렛을 돌린다.

이제 어디에서 멈출지 모른다.


변화가 적었던 나의 감정에 큰 파문을 몰고 온다.

잔잔한 물가에 폭풍이 친다.


오늘은 어디에서 잘 거야? 

매일 저녁이면 두근두근 궁금해진다.


남편은 손님방에 누워있다가도 다시 안방으로 가자고 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무작위스러움이 사랑스럽다.

귀여운 변덕쟁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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