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계절
가을이다. 햇살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낙엽 하나를 집어 들고 그 색의 세계로 빠져든다.
내가 계절의 변화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이 끌림이란 작용 때문일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원래 지구에는 두 개의 계절 밖에 없었다. 춥거나 덥거나. 그런데 가스 상태의 지구가 돌면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떨어나갔다. 그것이 달이 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떨어져 나간 달이 지구를 잡아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엄마에서 떨어져 나간 딸이 엄마를 잡아당기듯이. 결국 엄마는 마지못해 23.5도 기울어지게 되었다. 얼마나 감동적인 스토리인가. 지구가 기울어지니 두 개밖에 없던 계절에서 4계절이 생겨났다. 차갑거나 뜨거운 표정으로 정색만 하던 엄마가 좀 삐딱해지더니 따뜻하고 때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엄마의 몸에 있는 물을 잡아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냈다. 풍요한 바다를 만들어 엄마가 먹고살기에 넉넉하게 해 준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딸이 필요한 것일까.
특히 나는 계절 중에서 가을을 좋아한다. 여름과 겨울은 너무 치열해서 싫다. 물론 봄도 좋다. 봄이나 가을이나 치열한 겨울과 여름을 견뎌서 나온 존재이다. 대견한 계절이다. 그러나 봄은 치장을 많이 한다. 또 다른 나를 잇기 위해 갖은 교태를 부려야 하고 안쓰러운 분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을은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이제 마음을 비우는 계절이다. 죽지 않으려고 싸웠던 시간을 지나 이제 편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선사의 모습이다. 녹색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엽록소 공장을 마무리하면 아무런 힘도 들어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편안한 색이 나온다. 젊음이 기울어가는 색이면서 돌아온 자연 어딘가로 기우는 색이다.
오늘도 나는 흙색 바지에 녹색 재킷을 걸쳐 입고 나왔다. 노란 은행잎색의 목도리를 하고.
살아내기 위해 한여름 매미처럼 징징거리던 나였다. 그런 인물을 끌어당겨 자연 같은 안식을 주던 그 사람. 나를 조금은 삐딱하게 만들어 세상을 남과 다르게 바라보게 해 준 그 사람. 그 사람과 가을 한 잔을 나누고 싶다. 벌써 내 몸은 그에게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