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얼굴

언제까지나

by 흉터쿠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3개월이란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암 치료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과정이다.

병명을 알고 난 뒤부터 우리는 끝내 볼 수 있을지 모를 희망을 쫓아 기약 없는 항해를 떠날 결심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항해가 시작되고는 지금 이곳이 어딘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떠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버티기 위해 많은 것들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하며, 계속해서 함께 항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익숙해진다.

그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 상황을 당장 바꾸어놓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은 당혹스럽고도 허망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상이 반복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한다.

길었던 항해의 끝에 남은 게 고작 3개월의 시간일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와 수납을 하다가 엄마의 신분증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굴의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하게 색이 바랜 채 젊었을 어느 시간에 멈춰져 있는 사진을 보고 많은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돌아서본 엄마의 얼굴은 공허해 보였다. 텅 빈 얼굴을 하고서 엄마는 창밖에 하늘을 바라보며 날이 좋다고 했다.

엄마가 내뱉은 그 말이 너무 아파서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은 엄마를 그저 바라만 보는 게 나는 그걸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의 손을 잡고 인생 네 컷 사진을 찍으러 갔다.

혼란스러운 그 당시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랐고, 이유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기에 바빴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힘든 순간마다 그 사진을 꺼내어보며 마음을 다시 다 잡곤 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때, 마음이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때에도 나는 딸과 사진을 찍거나 주변을 사진으로 찍었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사진을 보면 그 당시의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던 내 감정, 상황의 형태가 손끝에 어렴풋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조금의 안도감과 함께 조금은 더 견뎌도 될 것 같은 작은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빛바랜 얼굴 속 선명한 표정과 그때의 작은 용기들을 엄마의 얼굴 위로 다시금 떠오르는 날을 그리며

비록, 텅 빈 얼굴을 하고서라도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도 되는 걸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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