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üsseldorf__뒤셀도르프
"오... 해이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해이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볼게. 과일로 만든 케이크를 좋아해? 아니면 버터크림을 넣어볼까? 네팔에서 공수해 온 차가 있는데, 차 괜찮아? 아니면 커피를 마셔? 에스프레소? 디카페인?"
알버그 박사님을 만난 건, 8.1 규모 대지진으로 네팔에서 9천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2015년 4월 말 카트만두에서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비행에서였다.
"대부분 재난으로 인해 급하게 네팔을 떠나는 승객들일 거예요. 그들이 최대한 안심하며 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기내식도, 담요도, 물도 더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승객이 있다면 충분히 제공될 수 있도록 이 비행구간에 추가로 준비되어 있어요."
비행 전 사무장의 브리핑부터 마음을 다잡게 된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몇 안 되는 승객들이 내리고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갈 탑승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앞쪽에 열려있는 비행기 문을 통해 항공기와 연결된 계단으로 잠시 나가보았다.
저 멀리 옆으로 길게 뻗은 지평선으로 붉은 저녁이 스며들어 있었고 숨을 쉬면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밑에 닿았다. 잠시나마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멀리서 비행기들이 드문드문 이착륙하는 소리만 들리는 한산한 저녁공항을 조금 더 바라보다 조용히 "아멘"하고 다시 기내로 들어왔다.
탑승권과 기내 좌석번호를 번갈아보며 자리를 찾고 계신 할아버지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목이 살짝 늘어난 옅은 회색 반팔티를 아이보리색 마재질의 고무줄바지 안에 넣어 입으셨다. 네팔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차림새가 비슷하구나... 생각하며 다가갔다.
"알버그 님(Mr. Alberg), 제가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탑승권을 건네받아 이름을 확인하고 말했다.
"저는 알버그 박사(Dr. Alberg)라고 해요. 예술을 공부하고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사’ 단어에 검지 손가락으로 허공에 강세까지 찍으며 말씀하셨다. 다정한 음성과 미소가 아니었다면, 나는 죄송하다고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 말할뻔했다.
만석은 아니었지만, 급히 네팔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유럽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두 손을 왼쪽 오른쪽으로 휘휘 저으며, 자신의 눈앞에서 가방과 신발, 물건들이 이렇게 날아다녔다고 지진 상황을 설명하던 스페인 청년, 내가 아직 살아있고 이렇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좌석에 앉자마자 기도하던 프랑스 아주머니,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기내식을 2~3개씩 더 요청해 옆에 쌓아두고 허겁지겁 식사하던 십 대로 보이는 두 아이들과 부모님이 있던 터키의 네 가족.
알버그 박사님은 기내식을 몇 숟가락 뜨는 듯 마는 듯하시며 계속 물을 마시는 것 외에 잘 드시지 않았다. 나는 2리터 물 페트병 위에 플라스틱 컵을 엎어 비어있는 박사님 옆좌석에 놓으며 말했다. "알버그 박사님(Dr. Alberg), 괜찮으세요? 목이 많이 마르셨나 봐요."
두 손가락을 보이며,
"2가지 때문이에요. 아주 오래된 네팔의 귀중한 예술품들을 가지고 가고 있어요. 연구를 위해서요. 급하게 떠나는 참이라 잘 챙겼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화물칸에 있는데 목적지인 뒤셀도르프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할 텐데 마음이 쓰이네요. 또 한 가지는 나의 네팔친구가 걱정돼요. 아직 여진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친구이야기를 하실 때는 고개를 저으시며 눈을 질끈 한번 감았다 뜨신다.
나는 목이 마르셨는지 여쭈었는데, 박사님은 나의 음성에 담긴 염려하는 마음에 답한다.
"미스 해이? 맞군요!"
우연히 알버그 박사님을 다시 뵌 건, 1년 후인 2016년 5월 뒤셀도르프 비행이었다. 박사님이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약 4,000명의 승무원, 70여 개국의 취항지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동일한 승객을 다시 만난다는 건 사막 모래밭에서 잃어버린 반지 찾기만큼이나 희박하다. 나는 오늘 쉬는 날일 수도, 근무일 이더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가를 냈을 수도 있다. 다른 나라로 비행을 갔을 수도, 박사님은 오늘이 아닌 어제나 내일 뒤셀도르프에 가실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우린 다시 만나지 못했을 터였다.
비행 내내 카트만두 비행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스에서 한 달 동안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셨고, 언제 또 뒤셀도르프 비행이 있을 때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인연이었고 초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박사님 이야기 듣는 것이 즐거웠다.
따뜻한 마호가니 색감의 나무 현관문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고, 멜빵바지를 입고 나타난 박사님과 인사했다. 우연한 뒤셀도르프 비행에서의 두 번째 만남 이후 세 달 만이다.
프렌치 타르트를 만드는 중이라고 하셨고, 이메일에서 물어보시던 케이크와 음료가 정말 종류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과일, 버터크림을 베이스로 한 케이크들, 커피, 차.....
고가의 희귀한 예술품들이 가득할 것 같았던 박사님 집은 의외로 심플했다.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주방이 보인다. 주방 왼편으로 거실, 그다음은 꽤 널찍한 발코니, 다음으로 작은 정원이 차례대로 길게 뻗은 스튜디오 구조다. 아주 넓지도, 좁지도 않은 크기다. 퇴사 후, 나도 딱 이런 심플하고 절제된 멋스러움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은 집 내부가 아닌 저 끝에 있는 작은 정원에 있다. 그리고 낮은 저상침대가 발코니에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밤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셨다. 박사님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동심(童心)"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박사님이 67살이라는 것, 대학원에서 고전예술을 가르치신 다는 것, 아침으로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드신다는 것, 가끔 집 근처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하시는 것, 현재 독일이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하며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나에게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서 비행을 그만두면 독일에 와서 살아보는 게 어떠냐는 조언, 그리고 박사님은 남자를 사랑하신 다는 것까지.
발코니 테이블에 앉아 저녁이 될 때까지 케이크 한판을 함께 비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팔을 떠날 때 염려하시던 친구분의 안부를 물었을 때, 다행히 네팔에서 잘 지내고 있고, 지금도 매일 통화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박사님은 침대옆에 놓인 액자 속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네팔남자였다.
"해이, 그는 내 남자친구야! 카트만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오물거리던 과일 케이크의 딸기 덩어리가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집 근처 테이크아웃 초밥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자며 일어났다. 재킷을 걸치며 박사님은 익숙한 두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2가지! 67살이지만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하지만 2가지는 확실히 알지. 예술! 그리고 나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