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성지순례_은이 & 골배마실성지
육아에 지쳐있던 일요일. 이번엔 엄마와 남편, 아이도 함께 성지를 가게 되었다. 날씨도 좋아서 은이 & 골배마실 성지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 이름만 보고 두 성지가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은이 성지, 골배마실 성지 두 군데로 나뉘어있었다.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는 두 성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두 곳 모두 가보기로 했다.
은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이고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36년 모넹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사제성소의 열매가 맺어진 자리이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순교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현 하였다. 즉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오늘은 엄마와 아이와 함께 성모상 앞에 초를 놓고 기도를 했다.
성전 안은 촬영이 불가하여 외관만 찍었다. 성전 안에서 다 같이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받으신 장소를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기념관도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설명을 찍고 보니 기념관도 사진촬영이 불가하여 안쪽을 찍지는 못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건너편에 기도의 숲이 있어서 가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경사가 있는 곳이었는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곳이다.
남편이 견진성사 교육 중인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숙제? 미션?으로 해야 하는데 마침 기도의 숲이 있어서 기도를 드렸다.
꽤 경사가 있는 곳이었는데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골배마실 성지로 이동을 했다. 골배마실 성지는 양지 파인 리조트 안쪽에 있었다. 어릴 때 스키 타러 자주 갔었는데 성지가 안에 있는 건 처음 알았다. 근데 표지판을 지나갔는데 아무리 봐도 성지가 없었다. 길을 잘 못 들어 골프장 안까지 들어갔다. 다행히 골프장 캐디님이 길을 알려주셔서 찾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골배마실 성지 문이 항상 닫혀있다는 글을 많이 봤었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골배마실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신앙을 키워온 곳이다. 1827년경 김대건의 조부 김태혀노가 가족들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용인으로 피신하여 교인이 숨어 살던 신앙촌인 골배마실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에로부터 첩첩산중에 뱀이 많은 지역이라 뱀마을 즉 '배마실'이라 부르던 동네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골배마실'이라 불러왔다.
소년 김대건인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모방 베드로 신부로부터 산 넘어 은이공소에서 1836년 봄, 15세의 나이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고, 신항생으로 선발되었다. 또한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이 관헌에게 체포된 곳이며, 사제가 되어 오신 김대건 신부가 어머니와 첫 상봉한 장소이고, 미리내로 향하던 김신부의 유해가 어머니 고 우르술라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뭔가 지브리의 한 장면 같은 곳이었다. 다리와 나무들, 연못이 어우러진 모습이 무언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뱀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중간중간 기계가 놓여있었다. 신기하게 성지 안으로 들어오니 공기도 달랐다. 습한 듯 시원한 기운이 들었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가는 성지를 엄마, 남편, 아이와 함께 가니 너무 좋았다. 아이도 제법 잘 따라오고 성전에서 조용히 기도도 드릴 줄 알아서 좋았다. 사진을 보셨던 아빠도 나중에 꼭 같이 가자고 말씀해 주셔서 다음엔 온 가족과 함께 성지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