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바로 생기는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모성애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성애가 가득한 사람인 줄 알았다.
신생아를 키우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말이 3시간 간격이지 아이가 먹고, 트림시키고 다시 재우는 일을 하다 보면 1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고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남짓이었다. 이러한 육아는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었다.
친척들을 만나거나 지인들은 만나며 아이를 보여드렸는데 만나는 분들마다 아이가 이쁘지 않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때마다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너무 힘든 것이 우선이어서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는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잠을 못 자긴 마찬가지였다.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5시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새벽 수유를 도와주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때 남편은 살면서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아이가 3살이 됐을 무렵에도 모성애는 그다지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예쁘긴 했지만 특별한 감정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의 지인 중에 외국인이 있었는데 그때 그 외국인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육아에 지쳐 아이를 데리고 전전긍긍하며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우리 부부가 지금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땐 그저 미혼의 친구가 육아를 안 해봐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 부부는 그걸 몰랐었다.
말이 조금 늦었던 아이는 4살쯤 돼서야 정확한 문장을 얘기했었다. 드디어 의사소통이 정확히 되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말이 느렸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피드백이 없고 그저 나의 일방적인 외사랑 같은 느낌이어서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고 서로 감정을 나누면서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의 우주에는 내가 가득 차게 되었다. 아직도 가끔 아이가 엄마라고 부를 때에 실감이 나질 않고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없이 부족한 엄마인 것 같은데 아이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벅찰 때도 있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서로가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감정도 모성애라고 정확히 말할 자신은 없다. 나의 사랑은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 아이의 갓난아기 때나 말도 제대로 못 했던 2,3살 때의 사진을 보면 그때 아이가 너무 그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사실은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사랑을 그 때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계속 주어도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