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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기라도 하면 음주운전중이었던 것 까지 가중되어 일이 어려워 질 것임을 직감했다.
우선 차에서 내려 수연을 살피기 전 목격자가 있는지를 빠르게 훑어보던 조여사는 셔터가 내려진 작은 분식집 코너에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본 듯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거는 척 하다 다시 그림자가 있던 곳을 살핀다.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이 그림자마저 가난한 분식집은 밤바람에 찢어진 천막을 힘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괜히 귀찮을 필요 없지…’
조여사는 직접 수연을 끌어 차에 태우고 그녀의 고객중 하나인 안 원장이 하는 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아니 조 여사. 거 그 망할 놈의 버릇 좀 고치라니까… 대체 양 기사는 어디다 두고 술 먹을 때 마다 직접 운전대를 잡는건가? 그러다 신세 망치는거 한순간이라고 내 몇 번을 말했나!”
야밤에 일처리를 하러 달려온 안 원장은 미간을 밭고랑처럼 구기고 섰다.
“원장님, 지금 그런 질책을 할 때가 아니에요.
그리고 피차 법이랑은 먼 사람끼리 이러긴가요?”
안 원장은 더 하고 싶었지만 참는 듯 입에 힘을 주었다.
이 일대에서 꽤 크게 사업을 하는 이 치고 조 여사의 힘을 빌지 않은 자는 없었다.
“대충 집안에서 다쳐 온 걸로 해주세요.
보호자는 저로 하고 제 조카인거에요.”
“차림을 보니까 동네 아이인가 본데… 흠.. 저 교복치마는 내 딸아이 것과 같은데… 어차피 당신 조카는 죽어도 아닐테고, 보호자에게는 연락해서 잡음 없도록 처리해요.”
“날 밝으면 바로 처리할거니 그건 상관마시고, 어떻게든 얼른 살려내세요.
잘 처리해주시면…
마지막 차용증은 찢어서 보내드리리다.”
조 여사는 의식을 잃은 채 응급처치를 받고 독실로 옮겨져 쓰러져 있는 수연 아니 미나를 한 번 흘끗 보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열 여덟, 꽃다운 나이의 고등학교 2학년 수연의 삶은 고단했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엄마의 얼굴, 술에 취해 풀린 애비라는 자의 눈동자, 습기 찬 반지하 방에서 항상 뿜어져 나오던 곰팡이 냄새… 이런 것들이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다.
경기도 근처의 시골 출신인 수연의 엄마 경실은 수연의 나이에 아버지가 관리를 해주던 땅 주인 장 회장네에 심부름을 갔다 그 집 운전기사였던 덕수에게 겁탈을 당해 수연을 덜컥 가지고 이후 지옥 같은 세월을 견뎌야 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디는’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경실에게 아이는 또다른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착한 사람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못되었다. 남의 집 일을 다니면서도 정직하고 성실한 그녀가 매번 일을 다니던 집을 그만두게 되는 것은 늘 같은 이유였다. 한 번씩 나타나 대낮부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덕수 때문에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경실은 매번 일을 옮겨야만 했었다.
“이 집은 어차피 오래 할 수 있는 아줌마가 거의 없었어. 어차피 아줌마 구하는 집이야 많으니까, 다닐 수 있을 때 까지만 다녀봐요. 보수는 다른 집 보다 훨씬 나은 편이니까… 주인 여자가 보통이 아니래. 워낙 까탈스러워서 하는 수 없이 수연 엄마를 추천했는데… 워낙 하려는 아줌마들이 없어서 말야.”
“네… 열심히 해볼께요.”
사실 그렇게 시작한 조 여사네 일을 관두게 된 것은 다른 아줌마들 처럼 조 여사가 자른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보름이고 한 달이고 도박판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지면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덕수가 나타나서였다.
“야 이년아, 일은 죽어라 하는 년이 돈은 왜 맨날 없어? 엇다 꼬불쳐 놓고 구라질이야!! 딸년 주려고 따로 챙겨놓은 거 내가 모를줄 알고? 또 뼈 나가기 전에 얼른 내놔!“
도베르만이 여덟 마리나 우글거리는 조 여사네 집은 차마 쳐들어올 용기가 없었던 모양 경실이 일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대문 밖에서 담배 꽁초로 탑을 쌓아가며 기다리던 덕수는 마침 일이 있어 외출하던 조 여사와 함께 나오는 중이던 경실을 낚아채 옆에 누가 있건 없건 사정없이 머리채를 끌었다.
조 여사의 심복 고 비서가 간단하게 덕수를 발로 누르고 있는 사이 전혀 동요치 않던 조 여사가 천천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자 바로 코 앞에서 경실이 두드려 맞아도 아는 체 않던 동네 파출소 순경 몇이 바로 출동해 덕수를 끌고 갔다.
“저런 새끼 오래 붙들어 놓을 법이 이 나라엔 없는거 알지? 그런데 내가 도와 줄 수는 있지… 어떻게… 내가 좀 봐줘? 딸 하나 있다고 했나? 저런 말종을 애비라고 두고 계속 그 아이를 키울 생각이야? …
아줌마!! 사람이 참 답답하구만… 제 팔자 제가 만든다더니…”
열 넷에 가출한 조 여사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담금질이 될 대로 된 차가운 여자였지만 상관도 없는 남의 부부일에 온 몸이 떨릴만치 분노한 이유는 아마도 가출직전까지 매일 지겹도록 당해야 했던 주정뱅이 애비의 매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사장님… 죄송합니다…”
머리칼이 한웅큼이나 빠져 길바닥에 굴러다니는데도 경실은 ‘악’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견디고 있었고, 덕수가 끝까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경찰차에 끌려 탈 때도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고개를 돌린 채 죽은 사람 마냥 표정이 없었다. 그렇게 조 여사가 내미는 손을 무기력하게 거절한 경실은 다음 날 부터 바로 새로운 집의 일을 하러 출근했었다.
“얘, 수연아. 이번에 일 나가는 집에 중3짜리 딸이 있대. 참고서나 문제집 많이 주신댔어. 잘 되었지 뭐니.”
“이왕이면 공부 못 하는 애면 좋겠네. 책이 깨끗할테니…
그리고…
잘 되긴 뭐가 잘돼? 책도 하나 새거 못 사줘서 남이 쓰던 거지 같은거 맨날 구해다가 쓰는데… 그게 잘 된거야? 엄마 정말 사람 속터지게 하는데 뭐 있어.”
“….”
여섯 살 부터 남의 집 밭일을 나가는 엄마를 따라 일을 도왔던 경실은 오뉴월 땡볕에 잡초를 뽑느라 손이 헤어져도 또래의 주인 집 딸이 새로 산 원피스를 뽐내며 고급차에 올라 여행을 가는 것을 보아도 슬프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딸 수연은 달랐다. 애비를 닮았는지 매사 불만스러웠고, 욕심이 많았으며 자기보다 나은 처지의 모든 사람을 저주했다.
“아니… 성적표가 나왔으면 엄마한테도 보여줘야지… 이렇게나 잘했는데… 내 딸이 최고구나.”
딸이 씻으러 간 사이 방 청소를 하던 경실은 수연의 가방에서 도시락 통을 꺼내다 성적표를 보았다. 여느 때 처럼 학급 석차 2등에 전교등수는 조금 더 올라 있었다. 새벽부터 가게일에 지친 몸도 갑자기 잊을 만큼 가슴이 벅차 올라 경실은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를 띄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올리며 들어서는 딸에게 급히 말을 걸었다.
“전교등수가 더 올랐더라. 나는 무식해서 잘 모른다만 요전에 선생님이 그러시더구나. 너 정도면 경대 사범대에 장학금 받고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엄마가 얼마나 자랑...”
“뭘 알고나 말해.
내 성적이면 경대가 아니라 석문대 공대쯤은 너끈히 간다구. 그런데 왜 못가는지 알아? 거긴 생돈 내고 들어가야 하거든. 그런데 그거 알아? 대부분은 성적을 남겨서 가는게 대학이 아냐. 무조건 갈 수 있는 한 최대로 높은 곳을 일단은 개겨보는거라고. 다른 부모는 그런다고. 등록금이 문제냐? 한 계단이라도 위로 가보자. 이런다고. 그런데 엄마는 그지같이 공짜로 대학 보낼 생각하니... 아니, 공짜로 대학 다니면서 내가 알바로 돈 벌어 보탤수 있는데를 계산하니까 그딴 학교나 갖다대는거야. 그리고 사범대? 누가 선생한대! 왜 마음대로 내 진로를 정하고 지랄이야!”
퍽!
악을 쓰는 수연의 입을 다물게 하는 둔탁한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경실이 수연의 오만방자를 견딜 수 없어 딸을 한 대 때릴 법도 하지만 당연히 고2 딸에게도 꼼짝 못 하는 힘없는 경실의 짓은 아니다. 반쯤 열려 있던 가게 셔터문 밑으로 어느새 기어들어온 덕수가 술에 취해 연신 게걸음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는 와중에 수연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