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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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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n 06. 2024

02. 초록잎이 떨어졌다

(7)

“걔가 2학년 때 내 개구리 우산을 뒤에서 발로 차서 찢었어. 난 그 우산을 쓰려고 비 오는 날을 이주일이나 기다렸었거든. 그리고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어. 그게 이유야.”


“… 그... 초록색... 개구리 우산?”


“응. 그런데 사실은 난 성적표 때문에 우울하던 날... 떡볶이도 사주고 자기 3단 우산도 준 그날... 사실 나는 좀 고마왔거든... 걔한테... 그래서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는데 말하지 못했어. 하긴 뜬금없이 ‘이한주. 난 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는 것도 어이없는 짓이긴 하지만... 그냥 좀 이상해. 이제 걔랑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왜 갑자기 난 걔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잔뜩 생각났는지 모르겠어.”


수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수헌이 입을 닫자 윤조도 다시 어떤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그 우산 말야...”


“… 응?”


한참만에 수헌이 입을 뗐을 그때였다. 갑자기 쇠문이 굉음을 내며 양쪽으로 열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에 둘은 황급히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일어섰다.


“안에 누구야! 아니 지금 수업 시작한 지가 언젠데... 것도 남학생이랑 여학생 단 둘이서... 지금  뭐하는 거얏!!!! 이리 나왓!!! 어느 놈들이야? 몇 학년 몇 반!!”


얼떨떨하게 일어선 둘은 별관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퍼지는 체육 선생의 고함에 서둘러 밖을 향했다. 별관에서 매트를 꺼내려고 체육 선생과 석수, 종호, 지웅이 서 있었다.


“오... 얌전한 고양이들이 부뚜막에서 댄스 한다더니... 전교 1등이랑 2등이 대낮에 별관에서 데이트를? 공부도 잘하는 것들이 연애도 야무지게 하고 있네.”


하도 근신을 자주 받아서 학생인지 이 학교 인부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인 종호가 둘이 선생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자 얄밉게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너희 둘! 안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 오후 수업 시작한 지가 언젠데 수업은 왜 안 들어갔고!! 아니... 멀쩡한 놈들이 뭔 일 이래?”


“쌤. 저것들이 뭔 짓을 할 만한 간이나 가진 것들입니까. 그냥 얼른 꺼지라고 하시죠.”


무뚝뚝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던 석수가 한 마디 했다.


“흠.. 일단 학생 주임 선생이랑 담임들한테 말은 해야겠는데? 수업시간 무단이탈에다가 남녀 학생이 풍기문란스럽게 별관 같은 한적하고 음침한 곳에 둘이 있었다는 게... 이게 이게 그냥 넘어갈 만한 것 같진 않은데... 너네 둘이... 연애하냐?”


다혈질에 고혈압이라 늘 얼굴이 빨간 풍선처럼 달아올라 있는 체육선생은 난감하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선생님. 저와 윤조는 같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어젯밤에 저희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 성봉고 이한주가 자살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서 조용한 곳을 찾았는데 우연히 같은 곳을 찾았을 뿐이에요.”


수헌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아.... 그 학생.... 같은... 학교... 동창... 아.... 그래.... 딴생각하지 말고... 얼른 교실로... 얼른얼른... “


체육 선생은 분명 아침 교무회의에서 옆 학교 1등의 자살 소식을 전달받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반나절 후 아이의 입으로 다시 듣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소하게 느껴져 스스로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도 분명 적지 않은 사명감을 가지고 선생이 되고자 했었다. 이십여 년이 지난 후, 더 이상 피지도 못한 10대 아이가 자살한 사건쯤이 반나절만에 잊힐 만 해졌다는 것이 그는 불현듯 몹시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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