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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들다

(10)

by Hazelle

“… 저 아저씨들 수업에 집중 안 해서 했던 수업만 한 세 번 했다 했지? 오늘로 보충수업 끝내게 해 줄게.”


뭘 어떻게 해준다는… 건… 지…라고 생각 중인데 강일이 오빠도 옆에 가까이 붙으면서 속삭였다.


“나도 도와줄게. 오늘로 저 아저씨들 무한반복 보충수업은 끝이야.”


이 기름집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가지고 아마 단 하루도 불평하지 않은 날이 없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핵심 프로젝트는 구축 다 했다고 끝이 아니라 운영할 인간들의 뇌까지도 장착해야 온전히 프로젝트 리더는 본사 복귀를 할 수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단체로 바보병에라도 걸렸는지 똑같은 수업만 몇 번을 해도 진도가 안 나가서 매일 밤 여는 채팅창에서건, 동네에서 마주치는 강일이 오빠에게건 수시로 하소연을 했었다.


“상무님, 저희가 어제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 인생과 아무 상관없는 이 회사 워크샵에 곁다리를 묻게 되었는데요,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 수업 참관 괜찮겠습니까?”


“… 뭐? 우리 수업? … 잠깐 있어봐라… 김 대리, 오늘 업무 수업도 같이 하나?”


“아뇨… 실 자료 대신 랜덤 데이터 사용할 예정이고, 일단 제가 짜 놓은 기본 프로그램에서 어느 부분이 유동 변경 값인지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내년 1월 말에 인수인계해서 앞으로 운영을 맡을 담당자를 뽑아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오케이, 뭐 업무 수업 없으면 대외비 사항 없으니까… 그냥 컴퓨터 수업이네. 어차피 같은 배에 올랐으니까, 거 오빠야들도 심심하면 들어오소!”


“오메.. 별나네. 안 들어도 되는 수업을 뭐 하러 억지로 들을라 카노. 가서 스키나 실컷 타재…”


안 부장은 청강생들이 생긴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 연신 혀를 찼다. 원래 어느 생태계 건 활기가 돋는 순간은 낯선 개체가 유입될 때이다.


나의 예측은 정확했다.

콘도 대회의장을 빌려서 진행하는 수업에 들어가니 세상에…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하는 이변이 일어나 있다. 아저씨들이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등을 곧추 세우고 수업 준비에 입각해 앉아 있는 모양은 참으로 적응이 안 되는 광경이다.


청강생들은 뒤편에 얌전히 자리 잡았다.

하나는 이과 전국 1등 해 본 전설의 수재고, 하나는 현직 공대생.

감성 넘치는 문과생만 바글거리는 국내 제1의 기름집 예산 프로그램 수업시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예정.


“자, 그럼 시작하지?”


상무까지 맨 뒷자리에 느긋하게 앉자 수업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업무용 노트북들을 다 열고 여기저기서 익숙한 윈도 시작음이 돌림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업무인계가 목적이므로 내가 목하 짜둔 프로그램들에서 어느 부분이 변수인지, 어느 함수를 건드려야 하는지, 매일 돌려야 하는 배치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등등이 수업 내용이다. 전반적인 프로그램 흐름을 설명하자 이미 현직 공대생과 전국구 수재는 로직을 바로 파악했다. 일 년 가까이 반복 수업을 들은 아저씨들 말고…


“지금 이 구닥다리 프로그램을 계속 쓰는 이유가 네트웍이 안되어 보안이 철통이라 그런 거지?”


현직 공대생의 날카로운 파악력.


“그렇지!! 우리 부서가 이 회사 핵심이니까, 보안이 철통이어야지.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 연동 안되니까 사내에서 뚫리지 않는 이상은 완벽히 안전하지.”


몇 번 수업 안 듣고도 제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 역시 상무다.


“음… 완벽한? 이란 건 없지요. 상무님. 작정하고 사내 호스트 유닉스를 깨면 이 프로그램까지 도달하는데 한 시간이면 족할걸요.”


물론 그런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고… 국내에 그 정도 실력 되는 인간들은 과기대에만 있는데 그 공부 잘한 수재들이 그렇게 간이 큰 경우도 잘 없고…라고 잘난 척 중인 눈치 없는 공대생에게 일침을 가하자 상무가 벌게졌던 얼굴을 가라앉힌다.


“대충 보니까 인풋 몇 개만 바뀌고 식이나 함수 같은 기본로직은 대부분 고정인데… 특히 함수가 바뀔 일은 기름집 정책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없을 거 같고… 뭐가 그리 여러 번이나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 인지?”


장 선생도 이미 파악이 끝났다.


“그럼! 이 프로그램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닌걸? 우리도 이미 다 알지만 매번 복습 중이라고.”


한 대리가 짐짓 잘난 척을 한다. 그리고 오늘은 갑자기 머리에 전기라도 꽂았나 온갖 함수며 로직을 다 이해하고 있다.

황소개구리는 로컬 개구리들을 쫄게 만들고 그들의 기량을 120프로 발휘하게 만드는 적절한 소임을 잘 수행했다.


황소개구리들의 대활약으로 생각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고, 업무 인계 부분만 저녁에 실무자들끼리 회의해서 정하면 이 워크샵의 공식적인 목적은 마무리된다.

물론 그들의 비공식적이지만 한층 더 중요한 목적 ‘스키장에서 술 마시기’는 계속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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