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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한 대리님은 왜 이 방에 껴요? 저기 아저씨들 방에 가욧!!”
“그러는 경미 씨는 왜 여깄어. 기름집 처자가 왜 이런 사모임에 끼냐고. 어여 복귀하라우!”
“아 싫어요”
불청객이긴 둘 다 매 한 가지인데 스키 타고나서 카풀한 인간들끼리 오붓하게 좀 지내볼라니까 두 밉상이 패키지로 껴 있다.
“아니 솔직히, 여기 다 제 지인이잖아요?
두 분은 업무차 오셨으니까 어여 위로 올라가시지요.”
“어머… 김 대리 언니… 진짜 이러기예요? 같은 여자끼리… 흥…”
네 이년… 네가 나 있어서 이 방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남자 친구 노리려고 끼는 거 모를 줄 아느냐…
‘사실 한 대리보다 네가 더 불청객이야.’라고 말할 뻔…
“왜 이래, 김 대리. 김 대리는 한낱 여자 친구지만 난 혈연지기라고. 내가 더 가까워.”
“거기 두 남녀는 그다지 반갑진 않지만 쫓아낸다고 갈 것 같지도 않으니까 뭐 같이 계시죠.”
봐봐.
회사 사람들, 내 선배, 내 남자 친구… 이딴 식으로 애매모호한 조합이 같이 술을 마시게 될 때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일단은 공통 화제가 죽어도 없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기에도 그렇고, 수준 있는 사람들이 가십이나 연예인 이야기를 주구장창 할 것도 아니고… 그래서 수준 있는 사람들은 뭘 하게 되냐고? 이럴 때 수준 있는 사람들은 …. 게임을 해… 술 마시기 게임…
술 마시기 게임은 추리나, 서스펜스, 혹은 트릭을 쓰는 지능적인 게임이냐고? 서울대, 연대, 이대, 그리고 여상 중 최고라는 서울 여상이 모였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실망시켜 그저 죄송할 따름… 우리 모두는 수줍게 날갯짓을 시작했지. 처음에는 그래. 내가 조금 방정스러우면 이미지 망가질까 봐 아현동 사모님 톤으로 점잖게 날갯짓과 함께 시작하지만 이내 게임의 열기가 더해지면 우리 모두는 곧 날아오를 듯 힘찬 날갯짓을 하는 장닭들이 돼.
밀레니엄 국민게임….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하지만 건전한 국민들 답게 사행성은 섞지 않았다. 우리는 걸리면 팔목 맞기를 벌칙으로 내 걸고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손맛을 제대로 부리며 경미 씨의 가녀린 팔목에 와인색 줄 두 개를 긋자 경미 닭은 닭 중에서도 제일 센 닭, 장닭을 뺏긴 한 서린 과부 닭이 되어갔다. 어느새 경미와 나의 숨 막히는 복수전, 또한 괜히 서로를 미워하는 남자 셋의 솔직한 승부욕이 불타오르면서 각자 옆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팔목을 얼른 잠재워줄 시원한 빈병 하나씩을 끼고 하나 걸려 맞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1초 안에 게임을 재개하는 흥분의 도가니탕에 빠져든다. 아마 그때 우리를 우체통 천사가 구하지 않았다면 해가 뜨는지도 모르고 있다 아침 조깅에 끌려나갈 뻔했다.
“뭐야! 이러고 있을 줄 알았지.
아니 이렇게 제일 재미있는 인간들끼리 싹 사라지면, 우리는 어쩌란 거야? 이 배신자들!! 내일 밤에는 절대 이러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새벽 3시 넘었어. 얼른 자!! 내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한 바퀴 돌고 바로 아침 먹고 그러고 수업이야. 내일 수업은 상무님도 듣는대.”
대체 그새 술을 얼마나 먹은 건지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라 인간 우체통으로 변신한 안 부장이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나 시계는 다 차고 있으나 시간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알람을 알리고 사라진다.
아직도 본인의 복수는 충분치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임 참여자들은 분을 삭이며 가식적으로 굿나잇 인사를 나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술을 같이 마셔보라? 그 보다 더 확실한 것… 삼육구를 같이 제대로 떨어보라…
“오빠, 피곤할 텐데 잘 자… 내일 봐.”
보는 눈이 많아 민망치만 그래도 남자 친구에게만 건네는 굿나잇 인사였다.
“어머, 나도 해야지?! 오빠, 내일 봐용!”
결심하게 된다.
이제 체면 차리지 않고 저 기집애를 대놓고 미워하기로…
세상에 건강에 좋다는 것들이 몇 있다. 아침 혹은 새벽 조깅이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용처럼 입김을 끝도 없이 불어내면서 그에 걸맞지 않은 비루한 속도로 마지못해 뛰고 있는 저 좀비들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건강에 좋은 조깅이란 ‘전 날 술을 안 처먹은 상태의’ 라는 단서가 생략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숙취의 증상은 다 비슷하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특별히 공격당하는 곳은 다른 모양 안 부장은 만삭 임산부 부럽지 않은 술배가 빠질까 봐 걱정인지 배를 안고 뛰고 있었고, 간밤에 삼육구 블랙홀로 당첨돼서 본인도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르는 한 대리는 만삭 임산부 옆의 초기 입덧 임산부 마냥 헛구역질을 해대면서 비실비실 뛰고 있었다. 간밤의 숙적 경미 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사는 대한민국 최강이면서 숙취 없는 건강한 젊은 여인으로 유명한 경미 씨는 대체 몇 시에 일어난 것인지 풀 메이크업은 기본이요, 머리까지 제대로 볼륨 넣어서 봉긋하게 묶었다. 다려진 선이 그대로 살아 있는, 분명 오늘 개봉한 것임에 분명한 미제 랄프로렌의 새하얀 트레이닝복을 입고…
그녀의 정성스러운 미모에 비해 나의 게으른 아침 상태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지만 괜찮다. 적어도 저 오합지졸 숙취 좀비 조깅단에 내 님은 없으니까…라고 안심하며 임춘애 선수에 빙의해 운동화 끈을 야무지게 조여매고 일어서는 순간…
“하이. 굿모닝?”
이기… 뭐꼬…
어제 본네뜨 열린 것보다 더 서늘한 이 느낌적인 느낌…
대체 이 의원 선생이랑 내 선배 오빠는 기름집 워크샵과 하등 상관도 없는 주제에 왜 이 꼭두새벽에 기어 내려와서는 굳이 시키지도 않은 뜀박질에 자원하는 건지?
“오!! 장 선생!! 쪼꼼 늦긴 했지만 잘 맞춰서 내려왔네? 역시 건강 전문가다워! 우째 보노… 우리의 이 산뜻한 조깅이 숙취해소에도 분명히 도움되제?”
“글쎄요… 뛰면서 입덧 몇 번 하시고 해장국 한 사발씩 하면 정신이 좀 돌아오겠지요. 어쨌건 숙취는 원활한 배변과 시간이 해결합니다. 핫핫. 음주는 기억력 세포를 죽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아침에 화장실에서 어떤 고역을 치렀나를 몇 시간 후면 잘도 잊고 또 어제처럼 술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하. 그거 말 되는구만. 그러면 우리 한 번 같이 뛰어보세나.”
“네. 그럴라고요… 좀 잤어? 헉… 얼굴이 왜 이래?”
장 선생은 상무에게 적당히 대거리를 해주고 나를 돌아보다가 진심으로 놀래고 있었다. 이러면 참 난감하다. 나도 지금 내 얼굴 상태가 어떤지를 잘 알 때는 더욱…
“아… 아직 저런 고난도 상태를 접하기엔 얼마 안 된 관계지예? 익숙해지셔야 합니더. 일주일에 세 번은 아침에 저 꼬라지라예. 횟가루 뒤집어쓴 강시 상태로 아침나절 보내고 손가락에 힘이 좀 들어가는 오후 되면 다시 정신 차려서 얼굴에 울긋불긋 단청을 입힌다아입니꺼. 지금은 분가루만 확 뒤집어쓰고 나와서 머리도 허옇고 눈썹이랑 속눈썹도 허옇고… 뭐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게 생겼지예. 뭐 저라는 것도 좀 지나면 디게 익숙해집니더. 나중에 놀랍게 변신하는 거 보면 저 아까운 인재가 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변장 학원 이런 거 채리면 대박날끼라예. 으하하하”
저 인간을… 그 본네뜨 열리는 차에 다시 태워서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흠… 뭐 긍정적으로다가 이 여인이 할머니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미리 본다고 생각하죠 뭐. 나쁘지 않네.”
“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콩깍지 렌즈 효능을 목도하는 역사적인 순간인가예?”
“자자!! 모두 발을 맞추어서 뛰세요. 너무 빨리 뛰지 마시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제대로 뛰면 상무님 말씀대로 숙취 해소에 빠른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저기… 한 대리님! 대열 중간에 껴서 토하면 신고할 겁니다.”
전문의 선생이 진두지휘하면 헛트림과 헛구역질이 난무하는 조깅 시간이 겨우 끝났다. 스키장에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누구랄 것도 없이 해장국, 갈비탕이 주 종목인 곳으로 열을 맞춰 행진한다.
“자… 그라믄 여기 국밥 사람 수대로 하고, 도가니수육이랑… 저기 소주도…”
“안돼욧!!!”
안 부장의 주문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올해 들어 제일 큰 목소리로 버럭 하게 된다.
“아침 먹고 나서 30분 후 수업인 거 모르세요??
아침부터 무슨 술이에요!!”
“아니, 나는 다들 숙취가 심하니까 해장술로다가…”
“노노!! 잘못된 해장 방법 중 제일인 것이 그 해장술입니다. 그건 그냥 감각을 마비시키는 거지 절대 해장이 되는 게 아니에요.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초특급 지름길이기도 하고요.”
역시…
나의 백 마디 고함보다 라이센스 있는 의사 한마디에 모두 고개를 깊게 끄덕이고 난리도 아니다. 마치 50 평생 처음 듣는 신지식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