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천국인 이곳에서
10대 혹은 청소년기. 참 짧고도 긴 시기이다. 보통 우리나라 기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동안의 10년을 일컫는 말인데, 초등학교 고학년을 시작하면서부터 천천히 사회화와 자기 조절 능력을 발달시키며 '성장'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 인생의 구간이다.
슬프게도 대한민국은 몇 년째 OECD 국가에서 청소년이 가장 불행한 나라로 기록되어오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고질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만 25% 이상의 고학년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10명 중에 4명 꼴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이다. 이의 결과 중 하나로 청소년 자살률은 매번 일등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9년 연속 '자살'이다.
이에 더해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전체적인 삶의 질이 수직 하락하게 되면서 지난해 약 870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삶을 끝내는 아주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출처: 데일리 뉴스). 너무나도 슬프고 참담한 현실이다. 어른들이 나서서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법조사관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도 아동 청소년 사망 예방을 위한 사각지대 발굴 입법화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늘 존재해왔고 번번이 뉴스 사회면에서 한 번쯤은 읽게 된다. 그래서 내가 네덜란드의 뉴스 웹사이트에서 네덜란드 청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게 된 것 같다. 왜 충격을 받았나 싶어 생각해보니 한국에선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이 사회문제가 나도 알게 모르게 당연한 현상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었던 거다. 청소년기는 당연히 우울할 수밖에 없지, 라는 아주 이상한 개념을 갖고 있던 나 자신에게 너무 놀랐다.
나 또한 청소년기를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둡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맞벌이에 이혼가정이었던 부모님에게 방치 아닌 방치가 되어 학원들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생활과 선생님들과의 소통 부재, 숨이 막히는 교육 시스템을 탓하며 삶의 의미와 생존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10대 막바지엔 청소년 우울증을 진단받았었다. 아마 그래서 더욱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청소년들인 네덜란드의 10대들이라는 주제가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OECD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몇 년째 가장 행복한 아동청소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이 독특하면서도 부럽기만 한 수치에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모방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 이유와 기저를 조사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1. 네덜란드의 평등주의적(Egalitarianism)이며 관대한(tolerant) 문화.
네덜란드 문화는 전체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중요시 여긴다. 종교, 정치, 문화,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고 여겨지며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은 이를 '지지'받으며 자라 다른 사람들을 같은 방법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교내에 성평등과 성 정체성의 인정성을 고무하는 포스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선생님들과도 권위주의적인 관계보다는 이와 같은 맥락인 '수용'을 바탕으로 성립된 존중과 존경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가족을 벗어나 가장 최초로 맺게 되는 친구와 선생님과의 사회적 관계의 배경이 네덜란드의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해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정에서 불화가 일어나더라도 친구나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조금 더 수월한 상황이 이루어진다.
'관대함'의 문화가 여기에 더해져 금상첨화를 이룬다. 네덜란드 교육기관의 한 전문가 (Dr Simone de Roos)는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는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관대함의 문화가 네덜란드 사회에 잘 맞는다고 말한다. 그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이들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하면서, 그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사회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행복한 아이가 가끔은 말썽쟁이 아이인 경우도 있죠.
2. 네덜란드의 교육 시스템
네덜란드에서는 저학년 때부터 "놀이시간"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빈번하게 놀이터들과 공원에 배치되어 있는 양이나 염소 등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공간들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상점 내에도 종종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교육 전문가는 이 놀이시간들을 통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상황, 갈등, 사회적인 경우들에 대처하는 양보와 나눔 등의 방법들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고 숫자를 셀 수 없어도 상관없다. 사회화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지만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 6세가 되어야지 글자나 숫자를 배우지만 이조차도 그 누구도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즐거운 방법으로 행복하게 배울 수 있다.
사회화의 중요성은 가정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네덜란드 부모들은 rust(휴식), regelmaat(규칙성), reinheid(청결)의 3R의 규칙을 아주 중요시 여긴다. 아이들이 사회의 행복한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과, 규칙과, 위생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안정감과 그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는 영유아기를 지나 아동청소년기를 진입하면서도 여전히 유지된다. 아이들은 '규칙성'을 부여해주는 소량의 숙제를 마치자마자 매일매일 방과 후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탐방하고, 여름에는 운하에 뛰어들어 수영하며 겨울에는 얼어붙은 운하를 빙장 삼아 신나게 아이스 스케이팅을 탄다. 행복한 아이들로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에서 학문적인 지식 습득이 절대로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다. 아주 좋은 예로, 한국 청소년들 우울증의 최대 원인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인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학창 시절에 있던 한 학기당 두 번의 정규 시험들, 즉 일 년에 네 번의 내신 시험들과 내 인생을 결정지을 것만 같았던 수학능력시험의 엄청난 압박들을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쉽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만 12세가 될 때까지 그 어떤 학업적인 압박을 받지 않는다. 이 시기가 되면 초등학생 때의 수업태도, 숙제 이행,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문에 대한 흥미를 바탕으로 학부모와 선생님이 상담을 한 뒤 중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게 된다. 이 결정으로 학생이 인문계(VWO), 인문 중급계 (HAVO), 아니면 실업계(VMBO)로 진학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의 과정 (만 12~18세, 6년 과정)이 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VWO (Voorbereidende Westenschappelijk Onderwijs), HAVO (Hoger Algemeen Voorgezet Onderwijs), 그리고 VMBO (Voorbereidend Middelbaar Beropes Onderwijs)로 나뉜다 (출처: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 정현숙). 이 세 등급의 학교들 사이의 관계성은 굉장히 유동적이어서, 학생이 잘 해낸다면 하위 학교에서 상위학교로 진학이 가능하고, 반대로 유급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등급에 따른 편견이나 차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VWO는 대학 준비 과정 인문계로 학문 연구가 중심이 되어, 초등학교 성적이 상위 15% 정도인 우수한 학생들만이 진학할 수 있다. 난이도도 높고 학년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유예하여 진급할 수 없고 태도가 불량하면 유급대상이 될 수도 있다.
HAVO는 인문 중급계로, 초등학교 성적이 20~40%였던 중간 성적의 아이들이 진학하게 된다. 상위직업전문대학교 진학을 위해 이론교육을 받게 되고 5년의 과정 뒤 국가에서 실시하는 졸업 시험을 친다. 이 졸업 시험은 기자, 프로듀서, 교사 등 전문 직업전문대로의 진학을 보장해준다.
마지막으로 VMBO(=MAVO)는 중하위 실업계이다. 네덜란드의 60%의 학생들이 이곳으로 진학한다고 하니 한국에서의 실업계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 진학 없이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사회의 일원이 된다.
즉, 대부분의 네덜란드 청소년들은 본인이 정말 학문적인 연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자신의 흥미에 맞는 분야에 찾아 직업을 어린 나이부터 찾게 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길을 잃는'상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입학보다 졸업이 더 힘들다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 또한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며, 그 누구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합격증만 있으면 입학원서 제출이 가능하고, 인기가 많은 학부라면 100% "추첨"제도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공부에 대한 압박이나 스트레스가 본인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인 경우를 제외하면 네덜란드에서는 청소년기에는 '자아탐색'과 '흥미 적성 발견'이 주가 되는 교육시스템이다.
성공이나 경쟁에서 승리가 교육의 목표인 교육 시스템에서는 낙오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이 불행을 끝없이 생산해내고 청소년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행복'이며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당시에는 심각한 청소년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려서 상담도 많이 받았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몇 달 이후에서야 극복해냈지만, 지금 돌이켜보자면 사실 그때에 사귀었던 친구들이 평생 친구들이 되었고 야자시간에 키득거리던 소소한 추억들을 원동력으로 아직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지금도 종종 삶이 힘들어질 때면 "12시간 공부도 해냈었던 나"를 회상하며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생존자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향수로나마 포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각지대에는 이를 견뎌내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탑급 엘리트들을 배출해 낸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톡톡히 한몫했음을 알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보이는 이러한 사회문제들이 그만큼 희생될 가치가 있었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우울증 발병 시기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그만큼 더 심각성이 강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