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격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
유명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쇼핑 카테고리에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면, 낮은 가격부터 높은 가격까지 차례로 나온다. 대부분 사람들이라면 좀 더 싼 가격의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검색한다면 어떻게 나올까?
네이버 쇼핑이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서나 책 제목을 검색해도 대부분 가격이 똑같을 것이다. 대부분 정가에서 10% 할인한 나와있다. 여기서 마일리지나 적립금을 사용하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중고책이 아닌 이상 새 책은 10% 할인된 가격으로 표시될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정가의 15퍼센트 이내에서 가격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판매할 수 있다. 이 경우 가격할인은 10퍼센트 이내로 하여야 한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제5항)
2013년까지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서 파격적인 책 할인을 했다. A서점에서 20% 할인하면, B서점에서 30%를 하는 등 10,000원의 책을 7,000원 이하로 구매할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책을 구매할 수 있으니 좋지만, 서점이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힘들었다. 한겨레 기사를 보면, 유명한 대형 서점과 출판사도 판매는 늘었지만 적자를 보았다고 하는데, 아마 동네서점은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얻었으리라 예상한다.
그래서 2014년에 적립금 5%, 가격 할인 10%로 법이 정한 할인율로 대부분 서점들이 책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현행 도서정가제가 소비자들의 선택할 권리를 제한하여 오히려 출판 생태계에 더 악영향을 줬다는 의견도 있고, 동네서점과 소규모 출판사들도 책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완전 도서정가제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찬반 토론을 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기사나 칼럼을 찾아보시면 좋겠다.
나는 책 한 권 사지 못할 형편은 아니며 매달 여러 권의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책 값은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비싼 편은 아니다. 배달을 시켜도 기본 15,000원 이상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비로 3,000원까지 합쳐 18,000원이 되니, 한 끼 식사에 책 한 권의 가격을 소비하는 셈이다. 18,000원 되는 책을 10% 할인하고 배송비가 무료면, 16,200원으로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책 가격이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책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두권 정도 가끔 구매해도 무리가 없지만, 학생이라면 책 값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책을 유통하는 데 있어 저자, 출판사, 서점의 노고가 들어가고, 책의 원료가 되는 종이 가격도 많이 올랐으니 그걸 무시하긴 어렵다. 가까이서 보면 책 값이 비싸서 부담스러운데, 멀리서 보면 출판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는 책 값을 함부로 낮추기도 어렵다. 이 글에서는 책 가격에 관한 모순된 두 가지 마음을 파악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교에 국문과 같은 영어랑 상관없는 전공으로 들어간다면, 영어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필수 교양으로 실용영어를 들어야 졸업이 가능했다. 이름은 실용영어지만 실상은 TOEIC 수업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영어를 못하는 내가 영어 관련학과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려니 토익점수가 필요했다. 토익점수 기준치가 미달되면 졸업시험을 봐야 하는데, 나는 고득점을 받고 졸업하고 싶어서 ETS에 매달마다 돈을 바쳤다.
그때 학원 강의 가격도 많이 들어갔지만 문제집 구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학생들 중에 대학입시, 취업준비로 문제집을 많이 구매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단 문제집은 한 권만 구매할 수 없다. 만약 토익을 예시로 든다면, LC 파트 기본서+실전 문제집/RC 파트 기본서+실전문제집은 기본으로 구매할 것이다. 내가 영어 초보라면? 아마 영어 문제집으로 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집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좋으나 싫으나 어떻게든 구매하게 되는 책이다. 10대 친구들은 용돈 받아 구매하니 수능을 예시로 들진 않겠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공무원 시험은 어떨까?
공무원은 과목도 다양해서 문제집도 정말 많이 나온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서경석 씨가 광고한 그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판매 1순위인 책 가격을 찾아보았다. 책의 가격은 정가 41,000원/10% 할인 36,900원이다. 내가 본 문제집이 유독 가격이 비싼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각 과목의 기본서+실전 문제집+필기노트+a… 이렇게 구매하면 책 값이 쭉쭉 올라갈 것이다.
책에 별 관심이 없고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책 값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기사처럼 현행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비싸서 독서율이 줄어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 가격도 책 가격인데, 시험에 도움 되는 책이 아닌 다른 책에는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청년들이 여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최근 공공도서관에서 작가, 출판사에게 대출 횟수에 따라 저작권료를 지급하게 하는 ‘공공대출보상제’가 발의되었다. 기사를 보면, 개정안이 나온 이유는 도서관에서는 무료로 책을 이용할 수 있어 도서 판매율이 줄어드니 출판사가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아니, 도서관이 책을 공짜로 들여오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도서관의 취지가 돈 없는 사람들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무료로 운영하는 것 아닌가? 아마 도서관 이용자들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 법에 찬성한 것일까? 책을 판매하게 되면 작가는 얼마를 받게 될까? 나는 출판과정을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한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겠다.
그동안 익힌 책 장사의 감각으로 볼 때 이 책의 적정 정가는 15,000원일 것 같아요. 그럼 제가 받는 인세는 권당 1,500원입니다. 1만 권이 팔리면 정말 좋겠어요. 그렇다면 저는 인세로 1,500만 원을 받을 텐데요.(노명우 256쪽)
저자의 이력으로 봤을 때 선인세(출판 계약금)를 많이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선인세는 50만 원~150만 원 사이로 지급된다고 한다. 출판사마다 어떤 방식으로 인세를 지급하는지 각기 다르지만, 인용한 글에 따르면 책 정가를 기준으로 10%의 금액이 인세가 되는 셈이다. 책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다면 인세로 많이 벌 수 있겠지만, 대다수 책들은 그렇지 않다.
출판사의 사정은 어떨까? 여기 출판과정을 잘 요약한 글이 있다. 저자는 8단계로 요약했지만, 출판 관계자라면 이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일단 출판사 지출 비용은 건물 유지비, 직원들 인건비, 인세, 해외 도서 저작권 계약 비용, 인쇄비용, 광고비용 등 다양하지만, 책을 인쇄하는 데 중요한 인쇄비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에 종이값이 엄청 올라서 이슈지만, 이전에도 종이값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종이값도 비싸지만, 제작부수가 적어 출판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 넉넉하게 찍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수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면 창고에 재고를 쌓아둘 가능성이 높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런 모험을 하기 힘들다.
정리하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책 가격은 상당히 부담될 수밖에 없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돈이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매해야지 수익이 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격을 낮추면 아무리 책이 많이 팔려도 출판사는 그만큼 수익을 얻을 수 없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입장은 어떨까? 대형 온라인 서점은 기본적으로 10% 할인을 해주고, 그보다 싼 가격으로 새 책과도 같은 중고책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동네서점은 정가 그대로 파는 경우가 많다. 동네서점 사장님들이 시장논리를 몰라서 정가로 판매하는 건 아니다. 대형서점에 비해 훨씬 작은 동네서점은 도매가를 비싸게 주고 책을 들여온다.
물론 동네서점 중에 잘 나가는 곳은 위탁판매도 하고 공급률을 낮게 받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다. 시사인 기사에서 보면, 동네서점과 같은 작은 소매점의 경우 도매가로 책 가격의 80% 정도 지급한다고 한다. 기사의 예시처럼 책 값이 10,000원이라면 동네서점은 8,000원에 들여오는 셈인데, 그 책을 판매한 수익은 2,000원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10% 할인을 한다면 2,000원보다 더 적은 가격이 들어오게 된다.
이번 글을 쓰면서 여러 기사들을 찾아봤는데, 책 값에 대해 어느 한쪽을 탓하기 힘들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우리 수입은 그대로이니, 책을 구매하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구매하는 것조차 망설일 수준이라면,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한숨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이번 글은 독자들은 책 가격이 비싸다고 느끼는데, 정작 책을 만드는 출판업계는 힘들다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서 썼다. 나는 작가도 출판사 관계자도 서점 관계자도 아닌 그냥 독자다. 그래서 책 가격에 대해 자료를 찾아도 부정확한 부분이 많을 수 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좋겠다.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김유태. "이제 8000원 짜리도 없다…종이값 인상에 시집 30% 올라". 매일경제. 2022.9.22
노명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클. 2020.
심채윤, 강하라. "‘설정샷’은 동네 책방, 구매는 대형 서점". 시사인. 2020. 7.3.
은종복. "왜 많은 나라들은 완전도서정가제를 할까". 한겨레. 2020.9.16.
이윤미. "책값 14% 올랐다...책 한 권이 2만원대". 해럴드경제. 2018. 4. 17.
임승수. “어떤 출판사와 어떤 계약을 해야 할까?”. ㅍㅍㅅㅅ. 2014. 6. 1
임종명. "컨슈머워치 “도서정가제, 소비자 후생 역행 폐지해야”". 뉴시스. 2020. 9. 15.
조규현. “출판사가 말해주지 않는 출판계약서”. 2016. 6. 29. (브런치 글)
최효정, 정현진. "“공공도서관도 작가 출판사에 저작권료 내라”… 저작권법 개정안 논란". 조선비즈. 2022. 4. 15.
한민지. “도서정가제 유지냐 페지냐… 좁혀지지 않는 갈등”. 시빅뉴스. 2020. 9. 23.
한승동. "민음사·교보문고 적자…도서 출판업계 위기 심화". 한겨레. 2014.5.18
YangSoo Seo. “한방에 이해하는 출판과정 8단계”. 『퇴근 후 글 쓰러 갑니다』. 2020. 1. 16. (브런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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