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30대 직장인 사주 입문 에세이
강원도 깡시골 정선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7차 교육과정이 들어섰던 1999년,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에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가 쓰여있는 교과서가 보급됐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 영어란 배우기 어려운게 현실이었다. 선생님은 교과서 관련 비디오를 틀어놓고 잠을 자기 일쑤였다. 학년이 바뀐다고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영어 전담 교사가 없던 시절, 담임선생님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가 윤선생영어교실이었다. 정선 지역에도 윤선생영어교실이 들어와 일부 아이들이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 엄마의 앞선 행동에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래도 한때 영어를 좋아하며 접했던 것은 엄마의 선견지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같은 지역에 살던 친구 2명과 함께 윤선생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 한 명과 나를 포함한 3명이 한 팀이 되어 한 달마다 한 번 대면 방식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매일 테이프로 공부하고 다음날 아침 선생님이 전화하고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이게 윤선생영어교실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줄곧 울곤했다. 파닉스를 배우는데 챈트(동요)를 외우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A로 들어가는 사과(Apple), 개미(Ant) 등의 단어를 나열해 리듬에 붙였을 뿐인데. 나 빼곤 친구 두 녀석은 잘만 불렀다. 서러웠다.
나에 대한 실망감을 극복하고자 내가 선택한 것은 오직 연습 뿐이었다. 일종의 규칙을 정하고 반복적으로 하는 일엔 어릴적부터 도사였다. 대게 어린 아이들이 지루해 하는 것과 달리 내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규칙되어 있는 일을 차근차근 해내는 것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거 같다. 윤선생영어 수업을 맡은 선생님의 숙제도, 챈트를 외부는 일도 군말 없이 했었다. 어느 순간 저절로 부르던 챈트가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명리학에는 오행이 있다. 목, 화, 토, 금, 수가 그 속성이다. 그 중 나처럼 '금'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들은 규칙, 반복, 루틴과 같은 말이 편하다. 외려 창의성, 창조, 새로움와 같은 말이 스트레스로 들린다. 금을 가진 사람들은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꾸고 다듬는 것들을 잘한다. 혁명보단 개혁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목을 기본으로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앞서 나간다. 일을 해도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하는 일에 특화됐다. 그래서 한 조직 안에는 목과 금이 공존해야 한다. 목과 같은 아무개가 선빵 때리듯이 치고 나가면, 그걸 뒤에서 빗자루 들고 쓸고 가는 금같은 사람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금은 항시 '고인물은 썩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칙과 반복, 루틴도 좋지만 내 삶의 다채로움을 위해서 말이다. 언제까지 일상의 평안함만을 외칠 수 없으니까. 가끔 퇴근길에도 즉흥적으로 다른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새로움을 부여하려 노력한다. 즉흥성을 오히려 만들고 "한 번 해봐?"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주말에 즉흥여행으로 산행을 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게 그렇게 또 다른 내 삶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뭐든 고이면 썩듯이,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