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30대 직장인 사주 입문 에세이
자녀분이 폐렴입니다. 입원을 해야겠는데요.
의사 선생님의 이 같은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수능을 2주 남겨놓고 폐렴이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감기를 참고 미련하게 공부했던 터라 그게 폐렴으로 덧났는지도 몰랐었던 것이다. 평소보다 땀이 왜 이렇게 나지를 느낄 뿐이었다. 1시간 공부하고 잠깐 일어설 때면 엉덩이에 엄청난 땀이 차이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게 폐렴 때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을 병원에서 지냈다. 열이 39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양쪽 겨드랑이에는 얼음팩을 고정해 달고 살았다.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영어 수능 문제집을 부여잡았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기 어려웠다. 진한 아쉬움과 미련이 내 손이 책을 부여잡게 만들 것일 게다.
그렇게 나는 퇴원했고 수능을 봤다. 당연히 수능은 망쳤다. 컨디션도 엉망이었고 머릿속이 캄캄했다. 다행히 수시로 어찌어찌해 서울권 대학에 오게 됐다. 내게는 감사한 일인 동시에 또 다른 콤플렉스를 남겨줬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들에게 있는 종종 있는 '학벌 콤플렉스'말이다. 대학시절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난다.
이 콤플렉스와 화해하기 시작한 것도 사주와의 인연에서부터다. 사주를 배우면 좋은 게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신 승리할 수 있다. 내 마음과 화해하는 방법이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입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네, 그럼 뭐 됐다"이렇게 툭 털어버릴 수 있는 느낌이랄까. 내게는 학벌도 그랬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터라 재수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 스텝으로 가는 편이 내게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었다.
내게 10대 시절은 '외골수'의 기질이 강하게 들어온 시절이었다. 말 그대로 앞과 뒤를 안 보고 돌진하는 전차 같은 느낌이랄까. 효율성은 없고 우직하게만 덤비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거 같다. 그게 내게는 공부였던 거 같다. 미용실을 하시는 엄마가 아픈 모습을 자주 보고 자라온 터라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탈출구가 공부였다. 그런데 외골수였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할 뿐이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열심히를 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의 경험이 내게는 교훈을 줬다. '열심'이란 키워드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뭐를 하든 열심히 하는 성격 말이다. 10대 때 경험이 30대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는 '어떻게' 열심을 생각한다. 그때의 외골수 노력을 좀 더 효과적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때론 쉬어갈 때도 알게 됐고, 때론 퉁치고 넘어가야 할 시점도 스스로 알기 시작했다.
100% 학벌 콤플렉스를 놓아주었는가라고 말하면 그렇게는 말 못 한다. 하지만 나는 사주를 배우면서 '퉁' 치고 넘어가는 법을 알게 됐다. "그래, 그럴만했네. 잘했다. 000아. 그래 수고했어. 그렇게 폐렴이 걸릴 정도로 무모했던 너의 노력을 이제는 내가 껴안아 줄게. 그동안 미안했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