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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22. 2021

취업 문턱 앞에서 난 사주를 배웠다

평범한 30대 직장인 사주 입문 에세이

000씨는 수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겠어요?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싸. 내가 호기롭게 말한 수치는 틀린 정보였다. 아침 신문 사설에서 대강 보고 온 수치를 너무도 당당히 말했다. 


이날 6인 토론 면접에서 콘셉트를 잘못 잡은 탓이다. 원래 나였다면 불확실한 정보는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연이은 취업 실패에 나는 내게도 맞지 않는 당당함을 어필하려 했다. 도리어 자충수를 두고만 꼴이 됐다. 나는 속으로 "그래, 한 번 질러보자. 까짓 껏 면접관 중 제대로 체크하는 사람 있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었다. 


어렵게 1차 면접을 통과하고 온 2차 토론면접에서 나는 불 보듯 떨어지고 말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원래 나였다면 불확실한 정보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을 텐데. 그건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소심한 사람 이어서다. 되려 나는 나의 차분함을 밀고 논리 정연한 말로 설득했어야 했다. 취업 준비를 2년 반씩 하면서 정상적인 멘털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며 자위했다. 


곱씹을수록 내 마음의 상처만 아파져 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이어진 도서관의 생활 속에 나는 지쳐갔다. 또다시 서류를 넣고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서류 상 토익이나 한국어 능력시험의 인증 기한이 만료되기라도 하면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매 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났 수 있을까를 매번 생각했다. 


불현듯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면접 자리에서 말을 내뱉은 것은 아닐까. 너무 순진하게 접근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가진 고유의 색깔이 맞는 회사라면 당연히 나를 데려갈 텐데. 억지로 맞지도 않는 옷을 구겨 입고 잘 보여달라고 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있는 모든 성격 테스트를 해보기 시작했다. OOO 교수가 운영하는 유료의 심리테스트도 해봤다. 인기가 엄청난 MBTI도 해봤다. 그중에 내게 가장 잘 맞는 게 '명리(사주)'였다. 내가 명리를 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 당시 명리를 접목한 인문학 칼럼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음악 평론가 강헌과 인문학자 고미숙 씨가 쓴 글을 읽을 때면 명리가 궁금해졌다. 이들이 내놓은 책들을 보며 나를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나를 시작으로 가족, 친구, 지인 등으로 사주 임상 실험을 넓혀갔다. 


역시나 나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꼭 확인받은 기분이어서 나는 마냥 좋았다. 내가 왜 걱정을 많이 하는지, 누구보다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등이 그저 내가 가진 사주 속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적임보단 정적임, 활발함보단 차분함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다음번 면접에선 내 모습을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어쭙잖은 수치를 말하느라 기본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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