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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24. 2020

출근견의 사회생활(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3

혁구를 돌보기 시작한 2018년 연말, 혁구가 출퇴근하는 크리킨디센터에서 ‘출근견의 사회생활’이라는 제목의 작은 포럼을 열었다. 혁구를 돌보는 사람들도 함께해 송년모임을 겸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야기를 청하며 초대한 전문가 중에 ‘테라피독(therapy dog)’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대표님도 계셨다. 테라피독은 신체적·정신적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하는 개인데, 유기견을 테라피독으로 양성해 입양을 보내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그로부터 반년쯤 후, 대표님으로부터 혁구가 테라피독 후보견으로 테스트를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고 전해 들었다. 후보견은 100일 정도 교육을 받고 관련 협회를 통해 인증 시험을 보는데, 통과하면 주로 복지관이나 요양원에 방문해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만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사람들 모임에서 몇 분이 혁구를 데리고 교육센터에 방문했다. 훈련사님은 혁구의 성향과 상황에 대해 보고 ‘부분적으로 적합’이라는 결론을 내리셨다. 테라피독 인증에 통과할 가능성은 있지만, 매번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활동을 하기에는 조금 부정적이라는 의견이었다. 교육센터에서는 내부 상의를 거친 후, 한 달간 교육센터에 머물면서 예비교육을 먼저 받아보고 본 교육으로 이어갈지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나는 혁구를 보내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 혁구가 잘 머물 수 있을지 염려가 되기도 했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봐 온 혁구는 테라피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구는 사람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고, 사람과의 스킨십도 그다지 즐기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런 혁구에 익숙해서인지 처음 만난 모든 사람들을 반기고 따라다는 개나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내 무릎에 올라앉는 개를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랍다. 혁구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개들과도 원만히 지낼만한 성격이 아닌 것 같았다. 혁구가 혁신파크를 홀로 돌아다니던 시절, 산책 나온 다른 개들을 하도 쫓아다니기에 ‘개 친구들’과 무척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다. 혁구는 다른 개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까이 가고 싶어 하고, 다른 개가 머문 자리의 냄새를 꼭 확인한다. 그런데 다른 개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아량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일단 경계태세를 보이다 상대 개가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면 냅다 으르렁거린다. 한 번쯤은 ‘난 너랑 싸울 마음 없어’ 하며 다가갈 만도 한데 말이다. 반대로 다른 개가 놀고 싶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 내키는 만큼만 받아주고는 가끔은 내가 민망할 정도로 쌩하니 지나쳐 버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혁구가 자유견 시절에 다른 개들을 따라다닌 것은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을 것이다. 그 개의 보호자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구가 교육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불현듯 혁신파크에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모은 혁구가 어떠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의견이 모였다. 혁구의 도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동물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혁구의 모습을 확인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혁구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상황에 따라 혁구가 많이 힘들어하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언제든 돌아와도 되니, 일단 한 달을 기약하고 교육센터에 머물기로 했다.


처음부터 혁구는 '앉아', '기다려' 정도는 가볍게 해냈다. 물론 간식이 있어야 했지만...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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