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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17. 2020

이 도시에서 개가 사는 법(3)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2

한국에는 개가 많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유기동물보호센터와 사설 동물보호소 모두 개를 포함해 보호해야 할 동물이 점점 늘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2011년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시작했는데, 2017년 기준 유기동물 수가 10만 마리를 넘어섰다. 2018년 한 해에만 전국 동물보호센터 298개소에서 총 12만 1천 마리를 구조하고 보호했다. 산술 평균값을 계산하면 매일 331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고, 보호소 1개소당 1년에 406마리씩을 돌본 셈이다. 이 동물들 중 일부는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고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하루 146마리 꼴로는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죽거나, 나이가 들어 죽거나, 안락사를 당했다. 이 실태조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어디선가 보호받거나 떠돌거나 죽은 동물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 와중에 끊임없이 새끼 강아지는 번식되고 있다. 몇 마리인지 모를 이 강아지들은 매일 펫숍과 온라인사이트에서 가격표를 붙이고 팔리기를 기다린다. 개가 많다. 정말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 수술을 권한다는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당면한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넘쳐나는 ‘잉여’ 개의 문제 또한 한 가지 방법만으로, 또 누구 한 명이 애쓴다고 해결할 수 없다. ‘유기견 없는 노르웨이’가 동물의 생산과 판매가 불가한 시스템, 철저한 동물등록 제도, 동물복지와 보살핌에 대한 높은 책임감과 사회인식, 인구 밀도가 낮은 생활환경 등이 맞물린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미국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권장해온 수십 년 동안 다른 여러 노력도 함께 기울였다. 우선 보호소의 규모와 환경을 많이 개선했다. 보호소를 통한 유기동물 입양을 적극 독려하면서 동물등록과 라이선스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많은 지역에서 연방정부의 규제를 넘어 번식 기준을 강화하고 상업적 목적의 펫숍을 금지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강화했다. 물론 지금 미국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조사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미국 전역의 보호소에서 한 해 약 15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안락사를 당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무분별하게 새끼를 번식하는 개 공장(puppy mill)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법적 기준 강화로 관련 산업계와 불거지는 갈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렇지만 나아지고 있다. 안락사를 당하는 유기동물 수가 수십여 년 전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보호소를 통한 유기동물 입양률이 높아졌고, 길 잃은 동물이 보호자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늘었다. 이상적인 노르웨이의 모습에서, 암담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미국의 사례에서 우리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혁구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혁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지만, 지금 혁구를 비롯한 동물들이 우리 사회와 시스템, 인간의 생활환경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을 예약하고 날짜가 다가오자 혁구를 수술대에 올린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혁구가 스트레스를 받고 몸의 변화를 느낄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수컷인 혁구는 그나마 절개 부분이 작아 다행이었다. 혁구를 병원에 데려다 놓은 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빨래를 하며 무사히 수술이 마치길 기다렸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혁구를 데리러 갔다. 혁구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터덜터덜 걸었고 어지러운 듯 잠시 멈춰서기도 했다. 그날은 종일 잠을 잤고, 다음날엔 슬슬 산책을 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돌아왔고 나흘쯤 지나니 평소 컨디션을 되찾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봉합 부위에서 딱지가 떨어지며 피가 비치는 바람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행히 잘 아물었다. 다시 열흘쯤 지나 실밥을 풀었다. 아마도 혁구의 견생에서 가장 험난한 나날이 아니었을까?


산책을 하며 가장 많이 보는 뒷모습. ⓒ bichum



참고

"개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Dogs Are Not Here for Our Convenience)".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2019.9.3).  https://www.nytimes.com/2019/09/03/opinion/dogs-spaying-neutering.html

"개의 조기 중성화 패러다임에 대한 재검토(Reexamining the early spay-neuter paradigm in dogs)". 미국 수의학전문뉴스포털 dvm360. (2019.3.1).  https://www.dvm360.com/view/reexamining-early-spay-neuter-paradigm-dogs

"개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나?(Should dogs be neutered?)". 사이언스 노르웨이(ScienceNorway). (2011.12.29).  https://sciencenorway.no/animal-welfare-forskningno-norway/should-dogs-be-neutered/1419580

"‘동물복지법(Lov om dyrevelferd)’ 원문". 노르웨이 법률데이터(Lovdata). https://lovdata.no/dokument/NL/lov/2009-06-19-97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동물관리부서(The County of Los Angeles Department of Animal Care and Control).  https://animalcare.lacounty.gov/

미국 동물보호단체 The Puppy Mill Project. https://www.thepuppymillproject.org/

"중성화 수술 의무화 법에 대한 성명문". 미국 동물보호단체 ASCPA(The America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https://www.aspca.org/position-statement-mandatory-spayneuter-la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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