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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03. 2020

이 도시에서 개가 사는 법(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0

혁구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중성화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당시 혁구는 태어난 지 2~3년 정도 됐을 것으로 추정되었기에 일반적으로 중성화 수술을 하는 시기가 지난 후였다. 그러나 혁구에게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에 먼저 신경을 쓰다 보니 중성화 수술을 우선해서 생각하지 못했고, 혈액검사 결과 신장 기능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수술을 미루게 됐다. 병원에서 신장을 포함한 장기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 마취가 위험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6개월간 보조제와 처방사료로 신장 기능을 관리한 후 중성화 수술을 다시 문의했다. 의사 선생님은 ‘중성화 수술을 왜 하려고 해요?’라고 되물었다. 수술 비용이나 절차를 설명해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순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하냐고? 다들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애초에 왜 난 중성화 수술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머뭇거리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개가 집에 수시로 마킹(marking)을 하거나 사납게 굴거나 문제 행동을 보여서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중성화 수술을 하려는 보호자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서 보호자가 기대한 만큼 행동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혁구 행동에 문제가 있나요?


중성화 수술은 엄연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수술 후에 호르몬 작용이 변하니까, 살이 찌는 것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고요. 혁구는 이미 야생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지금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혁구는 특별한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돌아와도 넘치는 기운으로 방석을 물어뜯으며 마운팅(mounting : 짝짓기를 하듯 올라 타 엉덩이를 움직이는 행위)을 하곤 했지만 그것은 개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마운팅이 반드시 성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데다가 중성화 수술을 해도 마운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혁구의 지금 이대로가 좋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으로서 그것의 본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혁구가 짝짓기를 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강아지들의 사진을 보면서 ‘새끼일 때 혁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약 혁구의 새끼를 본다면 알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몇 마리가 될지 모르는 혁구의 새끼들을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병원에서 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중성화 수술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다.


중성화 수술은 동물의 생식 능력을 없애기 위해 성호르몬을 생성하는 생식기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컷의 경우 고환, 암컷의 경우 난소와 자궁을 적출한다. 수컷 또는 암컷이 아닌 중간적인 성격이 된다는 ‘중성화(中性化)’라는 표현이 이러한 실제 행위를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중성화’라는 말속에는 대립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뉘앙스마저 숨어있다. 오히려 수컷, 암컷이라는 성 자체를 없애는 ‘무성화(無性化)’가 더 적합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표현은 더 직접적이고 실제적이다. ‘난소를 제거하다(spay)’와 ‘거세하다(neuter)’는 뜻의 동사를 함께 사용해 ‘be spayed or neutered’ 식의 표현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한국에서 ‘중성화’라는 에두른 단어가 자리 잡은 데에는 수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감정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어찌 됐든 동물의 의사와 상관없이(의사를 확인할 길 없이) 생식 능력을 없앤다는 것이 비윤리적이고 순리에 어긋난다는 불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책 중에 힘이 들어 잠시 앉으면, 혁구는 빨리 일어나길 바라는 듯 내 행동을 살피며 서성인다. 좀 쉬자, 혁구야...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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