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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Mar 02. 2020

출근견의 사회생활(2)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4

2019년 여름, 혁구는 테라피독 교육센터에 갔다. 테라피독 교육은 반려견들의 일반적인 사회화 교육보다 한 단계 심화한 것이다.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주위 자극에 둔감해지도록 단계적인 훈련이 진행됐다. 교육센터에서는 혁구가 교육받는 사진과 영상을 보내 주셨다. 훈련사님이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낯선 물건을 들고 움직이며 클리커 트레이닝(clicker training : 딸깍(click) 소리를 내어 동물의 행동과 결과(주로 간식을 주는 보상)의 연관성을 학습하도록 하는 훈련방법)을 했다. 훈련사님은 혁구가 다른 개에 비해 낯선 사물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편이지만, 스피츠 계열(spitz : 주둥이, 귀가 뾰족한 외양에 늑대와 유전적 형질이 유사한 계통으로 진돗개도 이에 포함된다) 치고는 유순한 성격이고 ‘앉아’, ‘엎드려’, ‘기다려’와 같은 지시어를 잘 따른다고 하셨다.


교육은 눈치껏 어느 정도 따라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걱정됐던 것은 따로 있었다. 혁구가 실내에서 대소변을 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교육센터에서는 과연 어떨지, 대소변을 참다가 건강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되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훈련사님으로부터 배변패드에 소변을 본 혁구의 사진을 받았다. 배변패드 위에 있는 혁구의 자세가 엉거주춤하고 어색해 보였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도 혁구는 여전히 밖에 나가서 대소변을 보길 원하는 것 같았다. 특히 산책 중 대변을 볼 때 배변 자세를 취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돌아선다며 좀 까다로운 편이라고 했다.


염려되었던 또 한 가지는 ‘교우’ 관계였다. 교육센터에는 혁구를 포함해 10마리가 조금 안 되는 개가 있었다. 교육센터에서 관계를 잘 정리해주실 테고 혁구가 먼저 공격하는 성향은 아니니 다른 개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고는 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개들과 그리 썩 어울려 지낼 것 같지도 않았다. 낯선 환경과 다른 개들 틈에서 혁구가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다른 개와 어울리지 않고 다가오는 개들에게 으르렁거리기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또 산책 중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개를 보고 엎드리는 자세를 취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렇게 3주쯤 지났을 때, 포메라니안같이 생긴, 혁구보다 몸집이 살짝 작은 까만 개와 놀고 있는 영상을 받았다. 교육센터에서 혁구와 친해진 첫 번째 개였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혁구는 교육센터에 있던 네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유일하게 그 개하고만 친하게 지냈다.) 혁구는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않고 출입문이 보이는 단상에 올라가 앉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영상을 보면 훈련사님에게 관심을 보이며 모여 있는 여러 마리 개 뒤편에서 혁구는 어슬렁거리거나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혁구는 아웃사이더였다.


교육센터에서는 주말마다 방문 시간을 마련해주셨다. 나는 보름 정도 후에 방문했다. 나보다 먼저 혁구를 보고 오셨던 분들에게 혁구가 살이 빠졌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꽤 적응한 듯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그 후로 한 달에 두어 번씩 사료나 약을 챙겨 혁구를 찾았다. 피부가 조금 좋지 않은 것 말고는 혁구는 여전히 씩씩했고 사람들을 열렬히 반겼다. 양치, 귀 청소를 하면서 피부 등을 확인하고 주변 산책을 하며 혁구와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나의 방문이 혁구에게는 교육에서 벗어난 ‘일탈’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사람들과 산책을 나오면 내내 들뜬 걸음으로 평소보다 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줄을 끌었고, 쉽게 진정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괜히 혁구를 교육 전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아닌지 멋쩍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산책 나왔는데 귓속을 본다고 붙들려 있으니 상당히 언짢다.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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