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우주 Mar 09. 2020

출근견의 사회생활(3)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5

혁구가 없으니 허전했지만 무더운 여름에 산책을 하지 않아도 되어 내심 편하기도 했다. 다만 밖에 나가 걸을 일이 없으니 몸이 영 찌뿌둥해서, 몇 년 만에 일주일에 두어 번씩 따로 운동을 하게 됐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교육센터와 약속한 혁구의 예비교육 기간은 한 달이었고, 나는 당연히 혁구가 ‘테라피독 부적합’ 평가를 받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테라피독 인증 시험을 위한 교육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최종 판단을 위해 혁구가 다른 테라피독 사이에 끼어 치매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실습 겸 참여를 했는데, 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초반에는 낯선 환경에 불안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찾았다고 전해 들었다.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혁구는 둘러앉은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고, 고개를 쭉 내밀어 간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혁구가 너무 생경한 나머지 “쟤 왜 저러고 있어?”하며 실없이 웃었다. 혁구가 사람이었다면 “야, 너 진지하더라? 엄청 긴장했지?”하며 킥킥대고 놀렸을 것 같다. 그렇게 혁구는 ‘합격’ 평가를 받고 두 달 더 교육센터에 머물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1월 1일, 혁구가 교육센터로 간 지 꼭 3달을 채운 날 혁구를 포함한 세 마리 개가 테라피독 인증 시험을 치렀고 모두 사이 좋게 통과했다. 이후 혁구는 테라피독 자격으로 요양원과 대안학교 등에 몇 차례 활동을 나갔다. 그렇게 임무를 마치고 교육센터에 간지 네 달 반 만에 혁구는 혁신파크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혁구가 교육센터에 있는 동안 찾아보니 테라피독을 통한 동물매개치료(AAT, Animal-Assisted Therapy)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일반적인 개념이었다. 이전에도 치료에 동물이 도움이 된다는 관점과 그에 따른 시도가 있었지만, 현대 의학에서 분석가능한 이론으로 제시된 것은 1960년대부터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한 소아정신의학자가 사람과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개와는 어려움 없이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치료자와 환자 사이를 매개하는 동물의 역할에 주목해 펫 테라피(pet therap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이후 여러 연구가 이어졌는데 표본이나 실험·통제집단 문제에서 몇몇 결점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동물이 정서적 안정이나 관계 형성, 총체적인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론이 대부분 수용됐다. 과학적 검증을 차치한다면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통해 안정과 행복을 얻은 주관적, 경험적인 느낌을 토대로 동물의 치료 능력에 동의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개는 사회에서 여러 임무를 맡고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나 군견, 경찰견, 탐지견 등등. 이렇게 동물의 능력을 빌려올 수밖에 없는 사회적 합의가 확실한 경우에 비해서 아직 동물매개치료는 논의 거리가 남아있는 듯하다. 개는 아니지만 소통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돌고래를 만지고 함께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치료법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돌고래 포획과 수족관 사육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동물을 통한 치료에 돌고래의 고통과 맞바꿀 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개는 인간과 밀접하게 사는 반려동물로 돌고래와 다르다. 그렇지만 동물의 입장보다 치료의 필요와 사람의 판단이 우선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고, 사회적으로 그 역할을 인정해 주는 것은 참 의미 있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전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동물이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고 기여를 해야만 ‘공존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혁구도, 나도, 사실 우리 모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살면 된다, 같이.


무엇을 하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다. 혁구처럼! ⓒ bichum



참고

앙투안 F. 괴첼, 이덕임 역(2016), 동물들의 소송, 서울: 알마.

제임스 서펠, 윤영애 역(2003), 동물, 인간의 동반자, 서울: 들녁.

이전 21화 출근견의 사회생활(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