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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Apr 06. 2020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2)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9

“그런데 왜 하필 개일까?” 다음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개는 늑대에서 갈라져 나온 아종이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들소나 순록 같은 동물을 사냥하며 사는 강인한 동물이다. 동화 속에서는 주로 악역을 맡는다. 예를 들면, 아기돼지 삼형제와 빨간모자 소녀를 위협하고 잡아먹는 역할이다. 사납고 무서운 느낌이다. 개는 이러한 늑대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늑대의 특성이 바탕이 되어 개는 사냥이나 목축, 경비, 심지어 서로 간의 싸움을 위해 오랜 시간 육종 되었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쫓고, 잡고, 짖으며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이 개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다. 이빨로 물고 뜯는 것이 공격수단이다 보니 사람이 개에게 물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개와 산책을 나가면 여러 사람과 마주칠 수밖에 없고, 물리적인 사고가 아니더라도 짖는 소리나 달려드는 행동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이러한 개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낯선 사람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나 비교적 순하고 몸집이 작은 토끼, 아니면 울음소리가 매우 작거나 털이 없는 파충류나 집안 어항에서 키우면 되는 물고기가 반려동물로 더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돌봄의 ‘난이도’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동물 종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연구자들이 여럿 있었던 덕분에, 반려동물로 적합한 개의 생물학적 특성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주요한 요인으로 꼽는 것은 인간과의 소통능력이다. 개에게는 계층화된 집단생활을 하는 늑대의 습성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개는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와 유대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의도를 인지하고 학습하는 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또 행동이나 소리, 스킨십 등 비언어적인 표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풍부하다. 감정을 주고받는 표정도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데, 개는 귀의 움직임과 함께 안면근육이 상당히 발달해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여러 표정을 갖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동물 종보다 더 오래, 더 긴밀하게 인간과 어울려 살아온 ‘시간’이다. 인류가 목축을 시작했다고 보는 시점보다 수천 년에서 만 년은 앞선 기원전 1만 9천 년에서 1만 5천 년 경,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개와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 여러 고고학적 자료의 분석 결과다. 처음에는 사냥을 함께했을 것이다. 늑대와 인류는 무리 지어 사냥하는 모습이 비슷했기에 협력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양이나 염소 떼를 몰거나 맹수로부터 지키는 일을 맡았다. 또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이동하는 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인간이 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확실히 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중요한 생산활동은 물론이고 인간의 삶 곳곳에서 개는 어떤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개를 곁에 두며 인간은 다양한 목적과 필요에 맞게 품종을 개량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소통하는 개의 능력이 더욱 향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가까이 지내다 보니 서로를 더 알게 되고, 친해져서 더욱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개가 자주 보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한다거나, 단순 표현을 넘어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선택적으로 표정을 짓는다는 연구 결과 등에서 그 논거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다른 무엇도 아닌 ‘개’인 것은 우연과 필연이 얽힌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자연의 섭리나 신의 뜻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류, 생명,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최초에 개와 인류가 어떠한 계기로 접촉하게 되었는지, 개로서 종이 나눠진 시점이 언제이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긴 시간이 지나면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찾게 될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비밀을 풀지 못한 채 인간 종이 절멸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그저 먼 옛날 인류와 여러 야생동물이 함께 살던 시절 개의 조상 종이 있었고, 마침 서로가 가까이 지낼 기회와 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 이후 적어도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개와 인간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긴 시간을 보냈고, 인간은 생존하는 데에 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이나 목축을 하며 먹고살지 않고, 개의 노동을 대체할 기술과 물건을 갖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도움을 받아온 개의 역할이 이제 그다지 필요없게 되었다. 오늘날 인간의 생존에 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았던 결과로 대부분의 개는 인간의 돌봄 없이 살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어쩌면, 인류와 처음 어울렸던 개의 조상이 지금 이 사회를 볼 수 있다면 “왜 인간과의 ‘악연’을 시작했을까”하며 애통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혁구는 계속 산에서 살았을까? 혼자였을까?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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