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 산 마르코 광장이 있다면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있습니다. 런던의 중심부, 대표 랜드마크인 트라팔가 광장에는 1844년 개장 전부터 비둘기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죠. 그렇게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어울리는 것은 트라팔가 광장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비둘기에게 칼을 뽑아 든 건 그레이터 런던 당국(GLA)의 초대 선출직 시장 켄 리빙스턴입니다. 리빙스턴은 2000년 취임 직후 광장 내 비둘기 먹이 판매 허가를 중단했습니다. 광장을 좀 더 쾌적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죠. 사람들은 곧 반발했습니다. 수 세대를 거쳐 사람들의 먹이로 살아온 비둘기들에게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몇 시민들은 모여 ‘트라팔가 광장 비둘기 보호단체(Save the Trafalgar Square Pigeon Group)’을 결성하고, GLA에 보다 인도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먹이주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단체에서 먹이를 주면 GLA에서는 청소를 하고 비둘기를 내쫓으며 엎치락뒤치락하기를 수개월, 2002년 GLA는 한발 물러서 단체와 합의를 합니다. 매일 아침 먹이를 주되, 차츰 양을 줄이며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것이죠. 다른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지 확인하고 먹이를 얼만큼씩 줄여야 하는지, 또 개체 수 감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은 트라팔가 광장 비둘기들에게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먹이를 줄이는 기간에 대한 입장이 너무나 달랐던 건데요. GLA는 몇 개월, 빠르면 6주 정도 기간을 거쳐 비둘기들이 다른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단체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 보았습니다. 동물복지에 어긋나지 않게 점진적으로 개체 수를 줄이려면 적어도 3년 이상 걸린다는 분석이 있었던 것이죠. GLA가 광장의 비둘기 무리를 다른 곳으로 흩어지게 하는 당장의 조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라면, 단체는 개체 수 감소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이런 동상이몽 속에서 법적 분쟁까지 이어졌고, 2007년 광장 주변 지역까지 비둘기 먹이주기를 금지하는 조례로 먹이주기를 원천 봉쇄하며 GLA는 단체의 요구에 귀를 닫아 버립니다.
지금 트라팔가 광장은 관리 주체에 따라 GLA 조례(광장 부분)와 웨스트민스터시 조례(영국 국립미술관 앞 및 광장 인접 지역)로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될 수 있지만 실제 집행은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 다음은 해외 사례4 #트라팔가광장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