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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25. 2023

겸손, 나를 낮추기? 나를 사랑하기!

부모님은 나에게 겸손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부모님 세대를 거쳐,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겸손이 미덕인 시절이었다. 겸손이 과연 좋은 걸까? 하는 고민을 해봤다. ‘자기 pr시대’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된 듯하다. 자신의 성공담, 성공 노하우,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 대세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먹기, 입기, 쇼핑하기, 운동하기, 캠핑 가기, 여행하기 등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통해 인기를 얻고, 그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겸손,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나는 겸손을 잘못 배운 게 문제였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을 ‘자기를 낮추는’으로 이해한 탓에 자꾸 나를 낮추다 보니 자존감이 낮게 고착되었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쉽게 열등감을 느꼈다. 정작 나는 존중하지 않으면서 남을 존중하는 삶, 쉽게 열등감을 느끼는 삶은 피곤했다. 나를 낮춘다는 건, 남에게나 좋은 것이지 나에게 좋은 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았다.


나를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가 불현듯 나를 드러낼 때가 있었다. 오르막에 서 있을 때면 그랬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겸손 탓에 억눌렸던 마음이 반항이라도 하는 건지. 그럴 때면 마치 또 다른 자아가 튀어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한마디로 “나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대는 내 모습은 나를 내세우는 것과 좀 달랐다. 나를 낮추려는 자아에 반발해 터져 나온 자아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를 올곧게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나 스스로를 높이려 했다. 늘 그렇듯 인생은 오르막만 있는 건 아니었고, 억지로 높아진 나는 그만큼 더 먼 거리를 추락해야 했고, 더 고통받아야 했다.

나는 내 삶의 중심이고 주체일 뿐, 타인의 삶에서도 중심일 수는 없다. 성공이나 환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찰나의 성공이나 성취가 영원할 듯한 착각에 빠져,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나대던 모습이란…

“내 일상을 말할 뿐인데, 그걸 자랑이라고 할 수 있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당시에는 정말 어리둥절했으니까) 이따위 말을 내뱉던 내 모습은 돌이켜 보면 민망해서 오돌토돌 닭살이 올라올 지경이다.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고난’의 때에 빠져 있을 때,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아, 내가 자만했구나, 나댔구나, 어리석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겸손이 미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늘 곱씹어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남을 존중하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인생이 내리막일 때 덜 고통받기 위해, 덜 상처받기 위해 나를 낮추고 또 낮춰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낮추기’를 수없이 되뇌며 겸손하기를 다짐한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법임을 이제야 알았다.

“자신을 사랑하되, 겸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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