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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9화. 연계휼.

수련과 웹툰 유료연재 계약을 의논하기 위해 사무실 인근에 있는 커피숍에 들른 민혁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의자에 앉았다.  전날 밤 악몽 탓인지 몸도 머릿속도 무거웠던 그는 손으로 이마를 받친 뒤 생각에 잠겼다.


온통 주위가 안개처럼 경계가 불분명한 곳에 서 있던 그는 한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실감 없는 공간 속에서 여자를 보는 남자의 눈빛에 왜 자신이 그토록 분노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꿈에서

깨어난 민혁은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인 듯 온통 땀에 푹 젖은 채 온몸이 아파왔다.


그전에도 악몽을 꾼 적은 있었지만 기껏해야 어딘가로 떨어지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처럼 깨고 나서도 진이 빠지고 뭔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꿈은 처음이었다.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았나.'


고개를 가로저은 민혁은 진동벨이 울리는 호출버튼을 손에 들고는 주문한 커피를 탁자에 올려놓은 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털털해 보이던 백작가였지만 약속 시간을 일부러 어길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든 그는 가죽가방에서 스도쿠 책자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커피숍 출입문이 열리며 문에 매달린 종이 '딸랑'소리를 내며 울렸을 때 그는 커피숍 앞 인도 너머 나무 뒤에 서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젯밤 꿈속에서 봤던 저 눈빛!!!!! '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수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방삭의 눈빛을 본 민혁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꿈속에서 그 눈빛에 가슴이 터질 듯 분노했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순간에  깨우친 그는 서둘러 스도쿠 책을 펼쳐 시선을 집중하고는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련을 알아채지 못한 척했다.  



"편집장님 너무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수련을 본 그는 그녀에게 손짓으로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 뒤 커피숍 주문 데스크로 가서 자몽차를 주문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수련은 그가 펼쳐놓은 스도쿠 책을 보고 있었다.  



"어머.  편집장님도 스도쿠 좋아하세요?

 이건 제가 아직 못 푼 익스트림 책인데......."



그녀가 스도쿠 책자를 향해 몸을 숙였을 때 민혁은 커피숍 창문 너머로 그녀를 주시하는 남자의 눈길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 눈길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민혁이 수련을 향해 몸을 움직였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남자의 눈빛을........

그래서 민혁은 그 남자에게 보란 듯이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어 수련의 손에 쥐어주었다.  



-"백작가님스도쿠 좋아하시는 줄을 저도 몰랐네요.

  제가 조금 풀어놓은 건데 이거 한 번 해보세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춤으로써 퍼즐의 전체 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모호했던 꿈은 커피숍 밖에

있는 남자의 불타는 눈빛이 완성시켜 주었다.  



'이 여자를 저 남자에게 가지 못하게 해야겠구나.'






'동방삭을 회유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승의 권위를 실추시킨 저놈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는 없지.

일단 환승사진관에 저놈을 묶어두었으니 대외적으로는 저놈의 존재가 드러나는 시간은 일부가 될 거야.

꼭 죽어서만 지옥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수백 수천 년 동안 느끼게 해야겠다.  

그게 바로 이 염라가 너에게 내리는 형벌일지니......'


염라는 동방삭과 약속한 대로 옥염주를 목에 건 수련이 환생사진관을 찾아올 때마다 환생하는 그녀의 뒤를

동방삭이 뒤따를 수 있게 허락했지만 언제나 뒤따르는 그의 시간에 왜곡을 가했고 그녀의 시간에 맞춰 환생한 연계휼의 꿈에 나타나 동방삭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동방삭은 그때마다 뒤늦은 자신을 자책하며 그녀의 다음 환생을 기약했지만 한 번, 두 번, 그리고 열 번이 넘는 시간 동안 그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염라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고려 마지막 왕족인 공민왕의 고모인 수련공주로 태어난

그녀가 자신의 옥염주를 손녀의 목에 걸어줄 거라고는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염라는

1995년 대한민국에 태어날 수련과 연계휼의 환생인 민혁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왜곡할 수가 없었다.  

염라는 뒤늦게 민혁의 꿈에 개입해서 동방삭에 대한 경계를 심어줄 뿐이었다.  


'온 저승과 나 염라가 동방삭의 새드엔딩을 바라고 있다.  이제 연계휼을 믿을 수밖에........'


염라의 한숨소리가 염라 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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