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카다레, #문학동네 #소설
[ “그들은 20년을 기다려 복수를 한 거야.
그래, 그는 전쟁에서 응당 그래야 하듯 정정당당히 싸웠건만,
상대는 비열하게도 감염이라는 어이없는 방식으로 그를 죽였구먼. “..
“적은 죽어도 적이지.” ] p211
1963년 출간된 이스마일 카다레의 첫 소설인 <죽은 군대의 장군>은 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일례로 1969년 출간된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말미에 벌어진 드레스덴 폭격을 다루고 있다. 1944년 출간된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는 1940년 2차 세계대전 중인 동부전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1954년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 세계대전 말미의 러시아 전선을 배경으로 한다. 이들 작품들 대부분이 전시상황(戰時常況)의 참상과 그 안에서 발발되는 사건과 인간애를 다루는 반면 <죽은 군대의 장군>에서는 유해발굴이라는 작업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작품 속 20년 전에 알바니아에서 전사한 자국 군인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처럼 현재 감을 상실했던 전쟁의 진실이 현재로 복원된다.
[ 다른 장군들이 무수히 많은 병사들을 패배와 절멸로 이끌었다면,
자신은 남겨진 이들을 망각과 죽음으로부터 구하러 왔다.
이 묘지 저 묘지를 뛰어다니며 전장을 전부 뒤져
실종된 자들을 찾아낼 것이었다.
흙더미에 맞선 이 싸움에서 패배란 없을 터였다.
정확한 통계가 부여하는 마력을 갖춘 그가 아니던가. ] p17
유해발굴을 신성한 임무로 받아들인 장군은 알바니아에서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발굴 과정 속에서 아직도 자신을 적국의 장군으로 바라보는 알바니아 현지인들의 시선과 발굴 과정에서의 각종 사건과 사고는 장군의 발굴작업에 대한 소명감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장군은 이미 전장에 묻혀서 안식을 취한 자국 병사들을 발굴하는 것이 과연 그 병사를 위한 일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되고 이후 발굴작업은 장군에게는 죽은 군대를 다시 소집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 “그래도 제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의 관이 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 우리의 죽음이
그들의 삶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줄 작정이었죠.
~맨 먼저 자부심이 사라졌고, ~그리고 마지막 환상들이 깨졌죠.
이제 우린 전쟁이 낳은 불쌍한 어릿광대가 되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야유의 시선을 받으며 떠돌고 있어요.” ] p170
급기야 자국에서 신화적 존재인 전쟁영웅으로 미화된 Z대령의 실체를 알게 된 장군은 발굴작업에 대한 회의감 속에 집으로의 귀환만을 소망하게 된다.
[ “전쟁의 망령이 우릴 굴복시킨 겁니다..
전쟁 자체에 굴복했다면 어땠을까요?”
“전쟁에요?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 모르죠.” ] p291
발굴작업을 위해 알바니아로 출국하기 전 그에게 찾아오는 발굴 대상자들의 가족과 알바니아에서 장군에게 저주를 퍼붓는 니체 할멈 등은 모두 전쟁이 끝났지만 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는 저주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장치이다.
지금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쟁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전쟁을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지구 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언제든 발발할 수 있는 지뢰와 같다. 하지만 전장에서 죽음을 맞아 땅에 묻힌 지 20년이 지나 유해를 발굴하는 순간 발휘되는 독성처럼 잠재된 전쟁을 통해 우리는 발굴 작업 중 독성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은 기사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이야기를 작가는 우리에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2차 세계대전 말미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을 괴멸시킨 미 해군을 다룬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가 전쟁이 지닌 서사의 힘을 이용하여 볼거리와 휴머니티를 상업화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에 나는 개인적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전쟁은 독사과를 먹었지만 왕자님이 구해주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 우리 앞에 실제가 될 수 있는 인류의 태생적 저주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