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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맨 Jan 24. 2021

다시 시작!

He-Man's Activity 2020

2009년 첫 러닝 대회를 시작으로 러닝에 입문한 후 사실 지금까지 제대로 훈련해본 적은 없었다. 운동을 러닝만 하는 게 아니기도 했고 다양한 활동이 겹쳤다는 핑계로 상당히 게을렀었다. 겨우겨우 기량을 유지하거나 서서히 떨어져만 갔다. 첫 러닝 대회의 하프 기록이 지금까지 최고기록인 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며 해묵은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달리는 한 해로 만들기로 다짐했다.

2020년 1월 러닝 거리 200km를 채우는 걸 목표로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많이 달려봐야 150km정도 달렸던 게 전부였기에 새로운 도전이었다. 3월에 있을 동아마라톤(서울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울 생각으로 열심히 달렸다. 러닝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풀업도 목표를 잡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존 하이킹 항목까지 추가해서 매달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1월 목표를 달성하면서 훈련에 탄력을 받았고 몸 상태도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모든 대회를 취소 시켰다. 치열하게 달리 과정을 확인받을 무대가 사라지니 의욕이 떨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릴 수 있는 훈련 장소도 점점 줄더니 이내 마스크 없이는 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뒷산에서부터 시작되는 트레일 러닝 코스를 개척했다. 그렇게 매번 달리던 불광천에서 뒷산의 둘레길로 메인 러닝 코스가 옮겨졌다.

거리와 운동량 목표는 꾸준히 지키며 또 늘려갔지만, 빠르고 강해지진 못했다. 정체기가 찾아왔다. 서서히 지쳐갈 때 쯤 드디어 첫 대회가 열렸다. 몇 번의 연기 끝에 힘겹게 열린 트레일 러닝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푸르나 / Instagram @purna_yu

하지만 이후로 퍼포먼스가 점점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버트레이닝인걸까? 혹은 오랜 개인 트레이닝에 스스로 지쳐버린 걸까? 뜨거운 날씨도 한몫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있을 지리산 화대 종주 대회 훈련겸 불수사도북 러닝에 나섰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축 늘어진 채 불암산-수락산 구간만 겨우겨우 마치고 내려와 들른 편의점에서 포기해버렸다. 여름 불수사도북은 웬만하면 다신 나서지 말자는 생각을...

지리산을 달릴 때도 여전했다. 하이원 때 좋았던 컨디션을 생각하며 달렸다가 후반부 제대로 퍼져버렸다. 겨우겨우 완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기력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나홀로 달리는 것도 슬슬 지쳐갔다.

Photo from 한국산악마라톤 연맹

'운동량이 너무 많은가?' 운동 루틴은 러닝 뿐만이 아니었다. 러닝 기록에 비해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프리 웨이트도 병행해왔다. 조금씩 퍼포먼스 향상이 있었고, 스파이더얼티밋챌린지 대회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연중행사처럼 나가고 있는 대회인데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던 차였다. 올해는 다른 때보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생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완주만 겨우할 수 있었다.

2020년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라인 10K 로드 러닝대회를 달렸다. 대회 며칠 전 급작스레 추가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를 받고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신청을 해서 다녀왔다. 코로나가 점점 더 확산되면서 트레일 러닝에만 집중해왔던터라 스피드가 많이 죽어버렸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일은 역시 여전히 적응이 힘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뛰지만 거리를 두고 달리는 진행방식은 앞으로의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 뛰는 거랑 다른 게 없네?'하며 함께 호흡 혹은 경쟁하며 달리던 때가 그리워졌다. 무려 7년만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40분 이하 기록을 세우겠다는 2020년 10K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핑곗거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 바로 다음주 영남알프스 대회가 메인이니까...'

Photo by 박현우 / Instagram @malcom.l_l

하이트레일 대회는 이번에 영남알프스 9봉을 모두 오르는 123K 코스를 만들었다. 총 상승고도만 해도 에베레스트르 훌쩍넘는 높이로 가히 국내 최고 난이도의 트레일 러닝 코스라 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당연히 매년 뛰던 40K를 나가려했는데, 신청일이 다가올수록 계속 123K 생각이 났다. 안 뛰면 후회할 것만 같아 신청 오픈 1분 전 쯤 마음을 바꿔 가장 긴거리를 클릭했다.(주변에선 모두 당연히 내가 123K에 나갈 거라 생각했다는...;;) 이후 다행인건지 -아마도- 거리는 105K로 축소되었다.(기존 최장거리 기록인 제주도 110K를 바꾸지 못해 아쉬웠다.)

드디어 달리면서 두 번의 밤을 맞이하게 되는 레이스를 시작했다. 험한 주로에 족히 스무번은 넘어졌고, 스틱 한짝도 부러져버렸다. 그럼에도 내 몸은 잘 버텨주었고 멘탈 또한 단단하고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대회를 위해 급히 중고로 구한 골전도 이어폰으로 음악만 듣기에는 지루할 것 같아 동기부여 영상 듣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고통은 높은 곳으로 통하는 과정이라는 말에 큰 힘을 얻어 덕분에 끝없는 오르막을 과장 조금 보태 거침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2020년 한 해동안 쌓은 모든 것들을 그 길에서 마음껏 풀어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끝을 만났다. 역시나 나는 웃고 있었다.


정리하고보니 겨우겨우 버티며 달려온 2020년이었다.

순간순간들이 고통스러웠으나 나는 또 한 순간 한 순간 잘 버티며 넘어갔다.

그렇다고 고통과 인내 뿐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 시작도 안했을 거다.



He-Man's 2020


러닝 2693.6K(▲66,440m)

: 월 평균 러닝 거리 224.5K

(2019년 대비 204% 증가)

- 로드 러닝 : 1722.1K

(▲누적 상승고도 13,753m)

- 트레일 러닝 : 971.6K

(누적 상승고도 52,687m)


하이킹 498.1K(▲32,534m)


■ 풀업 15,623 회

(2019년 대비 165% 증가)


한꺼번에 모아보니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걸음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더 커졌다는 것. 더 큰 미소와 함께!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모든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기억되길!

Photo by 조덕래 / Instagram @dukrae.jo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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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20210115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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